과학

수술 없이 1회 주사로 길고양이 피임 “반려동물 복지에 이정표”

해암도 2023. 6. 7. 07:41

[사이언스카페] 

하버드 의대, 바이러스로 호르몬 유전자 전달
난소의 난포 생성 억제해 배란 막고 임신 방지

 
 
 
 
 
이번 실험에서 암컷 고양이들에게 바이러스 벡터로 난포 형성을 억제하는 항뮬러호르몬 유전자를 전달했다./신시내티 동식물원
 

수술 없이 길고양이 암컷의 불임을 유도할 수 있는 주사가 개발됐다. 다른 부작용은 없어 길고양이 개채수 조절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데이비드 페핀(David Pépin) 교수 연구진은 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암컷의 생식력을 떨어뜨리는 유전자 치료 주사로 길고양이 암컷의 불임을 장기간 유도하는 데 성공헸다”고 밝혔다.

 

◇5억마리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에 도움

 

전 세계 고양이 6억 마리 중 80%는 주인 없이 사는 길고양이이다. 길고양이 수가 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자 인위적으로 개체수를 조절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대표적인 방법이 암컷의 난소와 자궁을 제거하는 중성화 수술이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고통을 주는 수술이어서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앞서 2017년 항뮬러호르몬(AMH)으로 설치류의 불임을 유도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항뮬러호르몬은 남성 배아에서 여성의 생식기관인 물러관이 생기지 않도록 막는 물질이다. 여성의 난소에서도 이 호르몬이 분비된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소아외과연구소장인 패트리샤 도나호(Patricia K. Donahoe) 박사는 “AMH는 인간을 포함해 포유류에서 암컷의 난소와 수컷의 고환에서 생성되는 비스테로이드성 호르몬”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앞서 연구에서 항물러호르몬 수치를 일정 기준 이상으로 높이면 설치류 암컷에서 난포의 성장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난포는 난자로 자라는 세포이다. 난포 성장이 억제되면 자연 배란과 임신을 막을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에 설치류의 천적인 고양이에서도 같은 효과가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연구진은 길고양이 암컷의 AMH 수치를 높이기 위해 동물에 해가 없는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에 항물러호르몬 유전자를 끼워넣었다. 이미 이 바이러스 벡터(vector, 전달체)를 이용한 유전자 전달은 사람에도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고 입증됐으며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도 받았다.

 

◇바이러스 벡터로 불임 유전자 전달

 

페핀 교수는 “바이러스 벡터를 한 번 주사하면 난소에서만 생성되던 호르몬이 고양이의 근육에서 생성돼 전체 수치가 평소보다 100배 증가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길고양이 암컷 6마리에게 바이러스 벡터를 주사하고, 일반 암컷 3마리외 비교했다. 불임 주사를 한 번 맞은 길고양이는 2년까지 배란이 중단되고 임신을 유지시키는 여성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낮아졌다. 일반 고양이는 정상적으로 배란하고 프로게스테론 수치도 높았다.

 

연구진은 2년 동안 고양이를 추적 관착했다. 그 사이 4개월씩 두 번 수컷 고양이를 데려와 암컷과 짝짓기를 유도했다. 일반 암컷은 수컷과 여러 번 짝짓기를 하고 100% 임신했다. 새끼도 낳았다. 반면 불임 주사를 맞은 암컷은 수컷과 짝짓기 횟수가 줄었고 임신을 하지 못했다.

 

불임 주사는 난포 발달과 배란을 억제해도 에스트로겐과 같은 다른 중요한 호르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주사를 맞은 암컷에서 어떤 부작용도 관찰되지 않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불임 주사를 맞은 고양이가 번식을 하지 않고 별에 혼자 있는 모습의 삽화. 생텍쥐페리의 소살 '어린 왕자'를 모방했다./Lydia Pépin
 

이번 연구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과 신시내티 동물원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존 연구 센터, 매사추세츠 의대 유전자 치료 센터가 같이 진행했다. 연구진은 개리 미켈슨(Gary Michelson) 박사가 세운 동물복지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미켈슨 동물재단은 고양이와 개에게 1회 치료로 수술 없이 불임을 유도하는 과학자에게 2500만달러(한화 약 327억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미켈슨 박사는 “반려동물을 위한 비수술적 불임 치료는 동물 복지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불임 주사가 상용화되려면 5년 정도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길고양이 문제가 심각한 개발도상국이 감당할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특히 미켈슨 동물재단의 상금을 받으려면 반려견에서도 같은 불임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 수컷을 위한 불임 기술도 따로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논문 공동 저자인 신시내티 동물원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존 연구 센터의 윌리엄 스완슨(William Swanson) 박사는 이날 사이언스에 “연구를 한 동기는 돈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내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고양이와 개가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고 사랑스러운 가정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진정한 보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