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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과학자들이 생체시계를 거꾸로 돌려 중년의 생쥐를 청년으로 회춘(回春)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구가 발전해 사람에게도 같은 방법이 적용되면 노화로 인한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한 노년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소크 연구소의 후안 카를로스 이즈피수아 벨몬테 교수와 바이오기업 제넨텍의 하인리히 야스퍼 박사 연구진은 “건강한 중년의 생쥐에 장기간 세포 역분화를 시도해 피부와 장기를 젊은 생쥐와 같은 상태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노화’에 실렸다.
◇생체시계 거꾸로 돌리는 역분화
역분화는 세포의 생체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방법이다. 일본 쿄토대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쥐의 피부 세포에 네 가지 유전자 조절 단백질을 주입해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되돌렸다. 배아줄기세포는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나는 원시세포이다. 그는 이 공로로 2012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후 역분화에 쓰인 네 가지 단백질을 ‘야마나카 인자’로 부른다.
소크 연구소의 이즈피수아 벨몬테 교수는 2016년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쥐에게 야마나카 인자를 주입해 회춘시키고 수명을 3분의 1 연장했다. 늙은 세포를 역분화시켜 줄기세포까지 가지 않고 젊은 세포 상태로 만든 것이다.
이번에는 건강한 생쥐에 역분화를 시도했다. 또 앞서 연구와 달리 장기간 역분화를 진행했다. 이즈피수아 벨몬테 교수는 “정상 동물에서도 역분화로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역분화는 생쥐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생쥐를 세 그룹으로 나눠 역분화 인자를 주입했다. 한 그룹은 생후 15개월에서 22개월까지 역분화 인자를 투여했다. 사람으로 치면 50세에서 70세까지 치료를 받은 셈이다. 두 번째 그룹은 사람 나이 35세에서 70세에 해당되는 생후 12개월부터 22개월까지, 세 번째는 사람 서너살에서 80세에 이르는 생후 1개월부터 25개월까지 각각 역분화 인자를 주입했다.
실험 결과 역분화는 사람 나이 35~50세에 해당하는 중년의 생쥐에서 시작해 7~10개월간 진행하면 회춘 효과가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늙은 생쥐에게 한 달 정도 역분화 인자를 주입해서는 효과가 없었다.
장기간 역분화를 유도한 중년의 생쥐는 신장과 피부가 젊은 생쥐와 같은 상태로 바뀌었다. 나이가 들면 상처가 나도 피부세포가 잘 재생하지 않아 흉터가 생기기 쉽다. 역분화 인자를 주입한 생쥐는 피부세포 재생력이 뛰어나고 흉터도 남지 않았다. 혈액의 대사물질도 노화로 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역분화를 장기간 진행해도 생쥐에게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논문 제1저자인 소크 연구소의 프라딥 레디 박사는 “언젠가 나이든 세포의 기능과 재생 능력을 회복해 스트레스와 상처, 질병을 더 잘 견딜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이번 연구는 최소한 생쥐에서는 그 목표를 달성할 길이 열렸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제넨텍의 야스퍼 박사는 “많은 노화 관련 질병이 이번 방법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생애 모든 단계에서 충족되지 않은 의료 수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새로운 치료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조스 투자한 항노화 드림팀에 합류
연구진은 앞으로 장기간 역분화가 특정 분자나 유전자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연구할 계획이다. 그 성과는 새로 출범한 항(抗)노화 드림팀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를 이끈 소크 연구소의 이즈피수아 벨몬테 교수는 최근 바이오 기업인 앨토스 랩으로 옮겼다. 앨토스 랩은 지난 1월 1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식 출범했다. 목표는 세포와 장기의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려 인체를 회춘시키는 것이다.
엘토스 랩은 말그대로 항노화 드림팀이다. 세계 최고 부자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실리콘밸리 노벨상인 ‘브레이크스루상’을 만든 억만장자 유리 밀너가 이 회사에 30억달러(약 3조61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연구진은 세계적인 석학들이 이끈다. 앨토스 랩은 5월부터 영국 케임브리지와 미국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연구소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이즈피수아 벨몬테 교수는 샌디에이고 연구소를 이끈다. 샌프란시스코 연구소는 캘리포니아대(UCSF)의 피터 월터 교수, 영국 케임브리지 연구소는 바브라함 연구소의 볼프 레익 소장이 각각 맡는다. 과학자문위원회는 2012년 노벨상 수상자인 일본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이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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