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과학자들이 꿀벌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는 장수말벌을 유인하는 성호르몬을 찾아냈다. 장수말벌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다른 곤충에 피해를 주지 않고 방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샌디에이고)의 제임스 나이 교수 연구진은 “장수말벌 수컷을 유인하는 성페로몬 3가지를 찾아내 실험에서 효능을 입증했다”고 14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여왕벌이 수컷 부르는 호르몬 분석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꿀벌이 줄어들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살충제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최근에는 아시아에서 온 장수말벌(Vespa mandarinia)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장수말벌은 2019년부터 북미 대륙 북서부의 미국 워싱턴주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장수말벌은 몸길이가 4.5㎝로 꿀벌의 3배나 된다. 한 마리가 벌집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연구진은 여왕벌이 수컷을 부르는 성페로몬을 추적했다. 페로몬은 곤충이 공기 중으로 방출하는 호르몬이다. 앞서 나이 교수는 장수말벌과 가까운 등검은말벌에서도 여왕벌의 성페로몬을 찾아낸 바 있다. 나이 교수는 중국 과학자들과 함께 헥산산과 옥탄산, 테칸산과 같은 유기화합물이 장수말벌 성페로몬의 주성분임을 밝혀냈다. 특히 이 물질들은 합성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연구진은 합성 유기화합물로 가짜 성페로몬을 만들어 덫에 넣고 장수말벌이 짝짓기를 하는 곳에 뒀다. 그 결과 장수말벌 수컷만 덫에 잡혔다. 실험실에서도 합성 성페로몬을 주면 장수말벌 수컷의 더듬이가 강하게 반응했다. 나이 교수는 “두 번의 현장 실험에서 장수말벌 수컷 수천마리를 가짜 성페로몬으로 유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수말벌의 친환경 방제에 도움
장수말벌은 원산지인 아시아에서도 꿀벌에게 위협적인 존재지만 북미 대륙에는 최근 등장해 그 피해가 더 크다. 북미 대륙의 꿀벌로선 처음 보는 치명적인 천적이 등장한 것이다. 꿀벌도 약하나마 장수말벌에 대항한다. 꿀벌들은 집단으로 장수말벌을 둘러싸고 날개를 비벼 열로 죽인다.
지난 2020년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은 꿀벌이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벌집에 발라 장수말벌이 공격대상으로 표시해둔 화학물질의 냄새를 가리는 전략도 쓴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로 장수말벌을 유인해 없앨 수 있는 새로운 화학무기가 마련된 셈이다.
나이 교수는 “장수말벌은 흔히 ‘살인 말벌’로 불리지만 사람에 대한 피해는 과장됐으며, 장수말벌 자체는 정말 놀라운 사회적 곤충”이라며 “그럼에도 북미 대륙에 속하지 않는 존재로 꿀벌 군집에 심각한 위협이 되므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장수말벌로 인해 꿀벌 개체수가 감소하면서 농가에 수백만달러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고 본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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