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주의자의 미식여행>
제주의 향토음식을 내는 제주시 식당 ‘낭푼밥상’의 본래 상차림. 제주의 잔치 음식을 재현한 메뉴다. 돼지고기와 순대, 두부가 놓인 가운데 접시가 제주의 잔치상에서 빠지지 않는 ‘괴기반’이다. 괴기반은 한 사람 몫의 고기 접시로 잔치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균등하게 배분됐던 공동체 음식이다.
■ 제주도에서 ‘먹으며 힐링’ <下>
- 낭푼밥상
전통 제주의 맛 ‘가문잔치정식’
- 앞뱅디 식당
콩장·멜볶음 반찬 또다른 별미
- 올레풍경
쫀득하고 칼칼 ‘고추장불고기’
- 삼대전통고기국수
국물 담백…무김치와 환상조합
사진 위부터 ‘올레풍경’의 고추장불고기, ‘삼대전통고기국수’의 고기국수, 베이커리 카페 ‘마마롱’의 밤밀푀유. ‘아라파파’의 다양한 잼.
- 아라파파
수제 잼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
제주에 도착한 날은 서귀포 일대에서, 이튿날은 섬 동쪽으로, 그리고 그다음 날은 섬 서쪽으로 해안을 여행하며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음식을 함께 즐겼다. 이제 여행의 마지막 자락이다. 제주공항에서 멀지 않은 연동을 중심으로 오래된 식당들, 향토음식점과 트렌디한 요즘 음식을 파는 곳을 방문하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다양한 음식을 즐길 예정이다. ‘편식주의자의 미식여행’의 마지막 여행지. 제주도의 두 번째 미식 이야기다.
제주의 향토음식을 선보이는 ‘낭푼밥상’이 있는 연동6길로 향했다. 낭푼밥상이란 제주의 일상식을 표현한 말로 밥을 양푼에 담아 가운데 놓고 각자 국그릇과 수저를 놓아 함께 식사하는 상차림을 일컫는 말이다. 척박한 자연환경을 개척하며 살아야 했던 모든 사람의 삶이 고만고만했던 제주에서는 손님이라고 더 대접하지 않고 그 반대라고 홀대하지 않았다. 그저 숟가락 하나 더 얹어, 있던 밥 그대로 균등하게 나눠 먹었던 공동체 식사문화가 낭푼밥상이다.
낭푼밥상의 양용진 대표가 권하는 ‘가문잔치정식’을 주문했다. “제주의 잔치는 온 동네 사람이 모여 3∼4일 동안 즐깁니다. 첫날에는 최측근만을 초대해 손님들에게 정식으로 가문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바로 ‘가문잔치’의 날이지요. 그때 베풀던 연회 음식을 재현해 낸 것이 ‘가문잔치정식’입니다.” 잔치 때 없어서는 안 될 ‘괴기반’과 ‘몸국’, 잡채 등이 나오고 나물 찬과 김치 등이 상에 오른다. ‘괴기반’이란 한 사람 몫의 고기 접시로 돼지고기 석 점, 제주식 순대 수애 한 점, 두부 한 점 등이 있다. 잔치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균등하게 배분됐던 공동체 음식이다. 방문했던 날에는 수애 대신 빙떡이 준비됐다. 몸국은 돼지의 모든 부위를 넣어 오래 끓여낸 후 메밀가루를 풀어 넣어 끓인 국물로 매우 걸쭉했다. 다진 김치로 간을 맞춰 먹는다. 그 외 새콤한 한치 무침과 잡채가 나왔는데 특히 잡채는 돼지기름으로 무쳐내 특이한 고소함이 있었다.
양 대표는 얼마 전 ‘제주식탁’이라는 제주 향토음식 요리책도 출판했다. 그는 “제주의 음식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1990년이 돼서야 제주의 음식문화와 관련된 논문이나 공식적인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모친 김지순은 제주의 첫 번째 음식명인으로, 기록이 전무하거나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제주의 향토음식을 집대성했던 음식 학자이자 교육자다. 그 역시 이번 요리책을 통해 어머니가 집대성했던 음식 중 대표 음식 64가지를 추려내 정리 및 소개했다.
사라져가는 제주의 향토음식을 식탁 위에 구현해 놓은 곳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제주의 향토음식을 발견하고 의미 있는 미식의 경험을 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앞뱅디 식당’의 제주 전통음식 멜국.
제주에서는 생멸치, 그것도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손가락 굵기만 한 멸치를 ‘멜’이라고 부른다. 멜로 만든 ‘멜국’은 오로지 제주에서만 즐길 수 있는 신선한 생선 국물이다. 멜국이 유명한 ‘앞뱅디 식당’으로 향했다. 앞뱅디는 ‘마을 앞 넓고 평평한 땅’이라는 제주 사투리다. 점심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방문하고 자리를 비웠다. 손님이 지나간 테이블을 치워낼 사이도 없이 다음 사람이 계속 꼬리를 물고 식당 내부로 이동했다. 이곳은 전국구 식당이었다.
멜은 신선할 때만 국물로 끓일 수 있다. 더러 말려두었다 구워도 먹고 간장에 풋고추 넣고 조림도 해먹고 젓갈로 담가 먹기도 한다. 5월에서 8월까지 살이 올라 기름지고 맛있다고 하니, 초여름인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다. 멜국을 주문해 국물 맛을 보았다. 맑고 깊은 맛이 시원했다. 뚝배기에 생멜과 봄배추를 뜯어 넣고 소금, 다진 마늘, 청양고추를 조금 넣고 끓여 내기만 하면 되니 만들기도 간편하고 맛은 깊고 가격 대비 만족도까지 높은 좋은 음식이다. 찬으로 나왔던 아삭한 배춧잎과 쌈장, 콩장과 멜볶음, 김치. 단출하지만 만족도 높은 찬이었다.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우선 달려가봐야 할 식당으로 추천한다.
가정식 음식으로 이름난 ‘올레풍경’이 위치한 연동 연삼로로 향했다. 이곳은 제주산 돼지고기로 만들어낸 고추장불고기백반이 맛있는 곳이다. 고추장 양념한 이후 팬에 구워낸 돼지고기는 육질이 부드럽고 돼지고기의 지방 부분이 쫄깃하고 탄력 있어 제주도 돼지고기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리고 고등어구이가 포함된 다양한 반찬이 많아 가성비 또한 좋은 맛좋은 가정식 밥상을 제공한다.
이곳의 홍성룡 대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주방기기 사업, 카페, 식당 등 외식업 경험이 풍부한 외식사업가로 제주시내에서는 ‘연분홍 치마가’라는 식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이후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다. 최근 모 배달 앱을 통해 고추장불고기가 단품으로 인기를 끌자 식당에서도 고추장불고기백반 주문량이 증가했다고 한다. 지방이 얇고 쫀득하고 칼칼함이 살아 있는 매콤한 고추장불고기로 집밥을 챙겨 먹고 싶다면 꼭 추천하는 집이다.
연동에는 제주식 고기국수로 유명한 ‘삼대전통고기국수’도 있다. 식당 간판이 이 집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3대에 걸쳐 고기국수를 판매하고 있는 곳이다. 육수 국물이 진하고 풍미가 강했다. 돼지 뼈와 고기, 내장 모두를 넣고 오래 삶아낸 후 1인분씩 따로 조리할 때 파, 배추, 계란 등으로 부드럽고 담백하게 맛을 증폭시켰다. 썰어낸 돼지고기 몇 점만 먹어 보아도 육수를 만들기 위해 흘린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깊은 맛이 감동이다. 적당하게 익은 배추김치와 무김치는 국수 한 그릇을 모두 비울 수 있게 하는 놀라운 식욕 촉매제다. 양이 매우 많으니 적당히 양을 줄여 달라고 요청하지 않으면 엄청난 양에 놀라게 된다. 제주를 다시 방문한다면 꼭 다시 먹고 싶은 맛이다.
수제 잼으로 유명한 ‘아라파파’를 가기 위해 연동 국기로로 향했다. 서울에서 베이킹 전문 잡지 편집장이었던 김은경 대표가 2011년 2월에 문을 연 베이커리 카페다. “문을 열 당시 국내 베이커리 업계는 수제 잼 등을 만들어 파는 것이 트렌드였어요. 그래서 저도 시도해 보았지요.” 이후 대학생 베이커리 ‘덕후’들 사이에서 밀크티 잼이 알려지면서 ‘아라파파 밀크티 잼 따라 만들기’가 네이버 검색으로 널리 알려질 정도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아라파파 수제 잼 맛의 차이는 결국 원재료의 차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수제 잼 중 최고 인기 메뉴인 ‘밀크티 잼’에 사용되는 생크림은 유지방 함량이 높은 것만을 사용하고 있다. 업소용 대용량 제품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얼마 전 조천읍 북촌 바닷가에 아라파파 2호점을 오픈한 그는 “프랑스어로 ‘아라파파’는 ‘한가로이, 천천히’라는 뜻”이라며 “그 뜻대로 바다의 멋진 풍광을 즐기며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여행자들의 조용한 안식처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제주에 좋은 베이킹 스쿨을 열고 싶다고 했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이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 제주에서 마지막 일정, 특산물 쇼핑을 위해 동문재래시장을 방문했다. 자리의 계절인 요즘 활기찬 생선 골목 가게들에서는 한 집 걸러 모두 자리를 팔 정도다. 그 외 은갈치, 옥돔, 반건조 고등어 등 다양한 생선을 판매하고 있었다. 젓갈 집에서는 ‘자리젓’도 구매할 수 있다. 이곳에서 구매한 후 서울로 바로 택배를 부칠 수 있으니 편리하다. 시장에 꼭 들러 쇼핑할 품목은 콩국을 끓일 때 필요한 날콩가루. 가게 찾기가 쉽지 않았다. 국물을 끓일 때 미리 개어 놓은 날콩가루를 국물이 미지근해지기 시작할 때 살살 붓는다. 국물이 팔팔 끓을 때 불을 줄여 배추나 무를 넣고 약한 불에서 오래 끓여내면 부드럽고 담백한 콩국을 즐길 수 있다. <끝>
강태안 미식여행가
■ 미식가이드
제주의 전통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는 ‘김지순의 낭푼밥상(064-799-0005)’은 제주시 연동6길 28에 위치해 있다. 향토음식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가문잔치정식’ 1만5000원. 몸국 정식 1만 원, 명인코스요리메뉴(5만5000원)와 스페셜메뉴(7만7000원)는 하루 전에 예약해야 한다. 6가지 전통주를 시음할 수 있는 시음메뉴 1만1000원. 멜국으로 이름난 ‘앞뱅디 식당(064-744-7942)’의 주소지는 제주시 연동 324-1. 멜국 8000원, 멜튀김 1만5000원, 멜조림 1만5000원. 제주산 돼지고기로 만든 풍성한 고추장불고기를 즐길 수 있는 ‘올레풍경(064-711-1791)’은 제주시 연삼로 121에 있다. 인기 메뉴 고추장불고기백반 9000원. 배달 앱을 통해 일품메뉴로도 주문할 수 있다.
제주식 고기국수로 유명한 ‘삼대전통고기국수(064-748-7558)’는 제주시 신대로5길 17에 있다. 고기국수, 고기국밥, 비빔국수 모두 7000원. 오후 6시에 영업을 종료하므로 일찍 방문해야 한다. 수제 잼으로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 ‘아라파파(064-725-8204)’ 본점 주소는 제주시 연동 1523이고 바닷가에 위치한 ‘아라파파 북촌점(064-764-8204)’은 제주시 조천읍 북촌15길 60이다. 홍차 밀크티 잼, 우도땅콩 잼, 한라봉 잼 모두 1만 원.
제주 동문시장(064-752-3001)은 제주시 관덕로14길 20에 위치해 있다. 건조 옥돔과 냉동 제주산 고등어를 구매할 수 있는 ‘싱싱옥돔(064-757-9831)’과 생콩가루뿐 아니라 다양한 곡식 생가루를 살 수 있는 ‘남안상회(010-3698-2693)’를 추천한다.
기사에서 따로 다루지는 않았으나 방문하면 좋은 곳을 덧붙인다. ‘삐꼴라쿠치나’는 제주시 애월읍 하소로 769-58에 위치해 있다. 강길수 셰프와 신혜원 소믈리에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직접 농사지은 제주의 대표 농산물과 유기농 식재료를 활용해 음식을 만들며, 사용하고 있는 식자재 및 식재료를 레스토랑에서 직접 구매할 수도 있다. 네이버에서만 예약이 가능하다. 페이스트리(케이크류)로 유명한 베이커리카페 ‘마마롱(064-747-1074)’은 제주시 애월읍 평화로 2783에 위치해 있다. 마마롱 밀푀유, 흑임자 에클레어, 마마롱 케이크 모두 7000원.
강태안 미식여행가 문화일보 입력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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