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해 좋은 학교 나오고 머리도 좋은 것 같은데 일은 별로인 사람이 가끔 있다. 공부 잘하는 것과 ‘일머리’는 별개라는 얘기도 있다. 왜 그럴까? 궁금하지 않은가?
‘다중지능’이란 책이 있다. 인지과학과 교육심리학의 세계적인 석학, 하워드 가드너의 이론을 담은 책이다. 인간에겐 여러 종류의 지능이 있는데 각각의 지능은 동일하게 중요하며 교육을 통해 계발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그는 여덟 가지 지능을 제시한다. 언어 지능, 논리수학 지능, 음악 지능, 운동 지능, 공간 지능, 대인관계 지능, 자기성찰 지능, 자연친화 지능…. 학생 때의 공부는 나를 통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점수를 잘 받고 전체에서 몇 등을 하는가는 결과일 뿐 본질적으로 공부는 자기 자신과 하는 게임이다.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테다. 그리고 이 시절엔 언어 지능이나 논리수학 지능을 주로 쓴다. 이 지능이 높으면 좋은 점수를 받고 공부를 잘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게임의 성격이 달라진다.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성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변수가 많아진다. 일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사람을 상대로 한다. 동료와 상사뿐 아니라 고객도 상대해야 한다. 운이 좋아 죽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생각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다.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태도도 다른 이들과 섞여 일해야 한다. 싫은 사람과도 일해야 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도 함께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을 얻고 동의와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일은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고도의 게임이다.
그런데 가끔 이런 사람과 맞닥뜨린다. 어쩜 저렇게 자기밖에 모를까, 어쩜 저렇게 무책임할까, 어쩜 저렇게 ‘자뻑’(자신이 잘났다고 믿는 것)일까, 어쩜 저렇게 상식과 동떨어질 수 있을까, 어쩜 저렇게 자기가 옳다는 확신에 가득 찰 수 있을까 싶은. 당신 같으면 이런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을까? 어쩔 수 없이 같은 팀으로 일하게 될 때 과연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다른 게 보였다. 이런 사람들은 그저 성질이 나쁜 게 아니라 머리가 나쁜 게 아닐까 하는.
학생들이 중간고사를 보고 기말고사를 치르듯 직장인들도 고과를 받는다. 주니어 때는 내 고과가 궁금했지만 조직 관리를 맡은 후론 고과 피드백이 큰 스트레스였다. 다들 자기는 A라고 생각하지, B나 C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으므로. 인지상정이려니 하지만 심한 경우도 있다. 누가 봐도 A는커녕 B등급도 어려운데 왜 자신이 A가 아니냐고 따지는 거다. 자신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팩트를 보려 하지 않거나 자신은 당연히 높은 고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 여긴다.
자신에게 취해 있다고나 할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게 안 되는 사람이다. 성숙하고 독립된 개인이 만나야 사랑이 오래 지속되듯이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사람이라야 동료든 상사든 고객이든 오래도록 함께하며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함께 일하는 데도 자기 성찰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고 능력이며 지능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성찰이든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을 돌아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 그런 다음에야 일도 제대로 하게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