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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해암도 2019. 9. 30. 20:11

미움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면[내가 만난 名문장]     

원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헬렌 걸리 브라운 전 코즈모폴리턴 편집장 

시간만 나면 노마드(nomad·떠돌이)를 자청하며 쏘다닌다. 특히 ‘골목투어’는 마음 내키면 언제든지 가능한 나들이다. 배회하며 눈여겨보는 것은 여기저기 걸려 있는 갖가지 문자들이다. 가게 이름은 물론이고 대문 앞에 걸어둔 글씨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글 주인의 개성과 품성이 알게 모르게 드러나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종로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의 명문까지 덤으로 만날 수 있다. ‘준비에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는 종로소방서 현수막도 인상적이다.

삼청동은 언제 걸어도 편안한 골목길이 많은 곳이다. 늘 다니던 길이 아닌 건너편 골목길을 선택했다. 아름다운 길로 지정되었다는 소문만큼이나 아기자기한 풍광이 가득하다. 화분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드니 하얀 색깔로 가려진 가게 문 위로 고딕체의 다소 도발적인 문장이 한순간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더니 이런저런 댓글이 달린다. 지인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 명대사라고 한다. 누구는 짐 스타인먼 노래 제목이라고도 했다. 설사 원조가 있다고 할지라도 누구든지 가슴속의 절절한 공감으로 인하여 그 글을 인용했다면 그것은 사실 내 목소리인 것이다.  

여인들뿐만 아니라 타인의 기대에 순응하려는 착한 사람은 누구나 반복적인 자기 억압을 부르기 마련이다. 가끔 미움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면 삶의 선택 폭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불현듯 백장(百丈·720∼814) 선사의 ‘나의 선택(因)에 따른 결과(果)라면 무엇이건 괘념치 않는다(不昧)’는 인과불매(因果不昧)가 섬광처럼 스쳐 간다.


원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입력 2019-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