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은 한결 같이 너그럽고 관대하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사랑과 인내심으로 내면을 채운다. 지혜로움은 아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서 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젊은 법관 시절의 내 판단이 후회될 때가 있다. 그건 한 인생을 망쳐버린 범죄였을 수도 있다.


1764년의 어느 날 저녁 하버드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도서관이었던 하버드 홀(Harvard Hall)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학생들이 겪은 허망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존(John)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안절부절못했다.


전형적인 책벌레였던 존은 평소 이 도서관에서 지내는 시간을 그 어떤 시간보다 즐거워했다. 책 속에 담긴 수많은 지식과 지혜의 세계에 빠져 그의 온 정신이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가 나던 날 존은 책을 외부로 반출할 수 없다는 도서관 규칙을 어겼다. 화재가 발생한 날 도서관 문이 닫힐 시간이 되자 책에 흠뻑 빠져 있던 존은 지금 당장 끝까지 읽고 싶은 욕심에 읽고 있던 책을 몰래 들고 도서관을 나왔다. 바로 그날 밤 도서관에서 화재가 났고 소장되어 있던 책이 모조리 전소돼 버린 것이다


“이 책을 돌려주어야 할까?” 존은 며칠 동안 고민을 하다가 학장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학장님, 죄송합니다. 그날 밤 제가 도서관에 있던 책 한 권을 몰래 가지고 나왔습니다. 여기 그 책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학장은 매우 기뻐하며 그 책을 건네 받았다. “이 귀한 유산을 보관하고 있었다니 고맙군요. 일단 나가보세요.” 존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틀 후 하버드에는 공고문 하나가 붙었다. ‘존(John) 학생은 교칙을 어겼으므로 퇴학 처리함’이라는 내용이었다. 존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여러 교수와 학생들은 처벌이 너무 가혹하다며 학장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학장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존이 정직하게 책을 가져다 준 것에 대해서는 저 역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칙을 위반했으니 퇴학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하버드 대학교의 규율을 책임져야 하니까요.”


학장은 교수와 학생들에게 언제나 규율을 지키고 스스로를 단속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규칙을 지키지 못했다면 반드시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는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젊은 법관 시절의 나라면 학장과 똑같이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지금의 나라면 주저 없이 존에게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위 처사가 너무 가혹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 들수록 더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지혜로운 사람은 한결같이 너그럽고 관대하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사랑과 인내심으로 내면을 채운다. 다른 사람의 나쁜 면이나 단점을 찾아내는 대신 상대방의 이면에 감추어진 ‘마법과도 같은 특별함’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지혜로움은 아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서 온다.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는 때때로 갈림길과 마주치게 된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가장 확실하면서도 현명한 선택은 너그러운 마음과 관대한 태도를 갖는 것이다. 결코 후회가 남지 않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내면에서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며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올 때면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부드럽게 속삭여 보자. “오늘도 너그러움의 길을 따라가 볼까?” 진정한 행복을 찾고 싶으면, 너그럽고 관대해져야 한다. 너그러운 마음과 관대한 태도를 갖는 순간 세상이 달라진다.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도 우리를 대하기 때문이다. 존이 퇴학을 당해 하버드에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길을 통해 훌륭한 인물이 되길 희망하고 상상해 본다.


윤경 더리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hankookilbo.com     입력 2019.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