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행 에세이를 펴낸 김영하 작가는 ’여행과 소설은 정제된 서사라는 점에서 닮은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신작은 여행 중에 느낀 감상과 사유를 9편의 이야기로 엮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김영하(51)는 자신을 스스로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여행자였다”고 소개한다.
『살인자의 기억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쏟아낸 저자가 최근 여행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담은 에세이 『여행의 이유』(문학동네)를 펴냈다. 『오직 두 사람』 이후 2년 만에 발표된 신작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종합 상위권에 오르며 두꺼운 팬층을 확인했다.
신작 에세이집 『여행의 이유』 화제
“여행은 정제된 스토리 소설 닮아
일상 잡무 떠나 ‘지금의 나’에 집중
시각·청각 오감만족이 진짜 여행”
책은 단순한 기행문이나 감상을 늘어놓은 수필을 넘어선다. 곳곳에 여행을 통해 존재론적 탐색을 담으려 한 흔적이 엿보인다. 김영하는 “많은 사람이 여행을 좋아하지만, 왜 여행을 가는가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는다. 흔한 여행기 말고 여행에 근본적으로 다가서는 책을 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책은 저자가 여행을 다니며 느낀 감상과 사유를 아홉 편 이야기로 엮었다. 그 가운데 두 번째 글인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에서는 첫 소절부터 “나는 호텔이 좋다”는 고백이 튀어나온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안도감으로 바뀌고 또다시 떠나게 되는 반복적인 경험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7일 그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 응답 :“여행은 분명 고생스럽고 비용까지 드는 일인데 사람들이 왜 끊임없이 여행을 가려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왔다. 여행 관련 글을 본격적으로 써보자 생각해서 출연했던 tvN 예능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3’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 응답 :“여행은 일상과 달리 우리에게 특정한 서사를 경험하게 한다.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안에는 특정한 스토리가 있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는 누구나 설레고 낯설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익숙해지고 아쉬움 속에서 일상으로 귀환한다. 이렇듯 모든 여행은 비슷한 서사 구조를 갖는데 서사는 소설처럼 ‘의미’를 부여하는 힘이 있다.”
- 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행과 소설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 응답 :“그렇다. 여행처럼 소설 역시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서사를 경험하게 한다. 일상은 번잡스럽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여행은 그렇지 않다. 소설처럼 매우 정제된 계획과 스토리 선상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질의 :여행을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여기는 것과 다른 관점이다.
- 응답 :“실제로 여행은 대부분 잘 통제된 계획안에서 이뤄진다. 미리 도시를 정하고 비행기 표를 끊고 숙소를 정하고 동선을 정한다. 특히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해서 많은 정보를 미리 알고 가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일상에선 우리가 계획하지 않은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 응답 :“여행은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부분들이 최소화된다는 점에서 집중도를 높인다. 여행 중에 우리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수많은 잡무로부터 해방된다. 오롯이 지금 내가 느끼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데, 이게 여행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유다. 이와 달리 일상은 방해 요소가 많아 집중력이 떨어지고 무의미한 반복처럼 느껴진다.”
- 질의 :일상을 여행처럼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 응답 :“가장 좋은 방법은 일상에서 벗어난 스토리를 경험하는 것이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소설 읽기를 추천한다. 소설 만큼 일상과 다른 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소설로 어떤 스토리를 맛본다는 것은 여행하는 것과 같다.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분명하게 돌아보게 한다.”
- 응답 :“오감을 충분히 만족하게 하는 여행이다. 많은 사람이 여행지를 숙제하듯이 돌아다니며 사진찍기에 급급한 여행을 한다. 하지만 현지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은 시각 외에도 다양하다. 나는 여행지의 현장음을 녹음해오는 경우가 많은데, 나중에 들어보면 그때 감정과 분위기가 되살아난다. 시각뿐 아니라 촉각, 미각 등을 만족하게 하는 게 진정한 여행이다.”
- 응답 :“한 번에 모든 것을 보려 하지 않고 여러 번에 걸쳐 온전히 즐긴다. 그러다 보니 갔던 곳을 여러 번 건 적이 많다.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음식과 분위기 등이 너무 좋아서 7~8번 정도 갔다 왔다. 같은 장소에 여러 번 가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고, 성장한 내면을 깨닫기도 한다.”
이처럼 여행을 예찬하는 그의 소설에는 과거 여행지에서의 경험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검은 꽃』에는 멕시코에서 느꼈던 뜨거운 더위와 메마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는 젊은 시절 배낭여행을 하다 마주친 홍콩의 풍경이 녹아 있다. 『당신의 나무』 역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갔을 때 경험을 살려 쓴 소설이다. “여행은 내 모든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이다.
그는 새로운 장편 소설을 준비 중이다.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에 발표할 예정이다. 작가는 “원고를 쓸 때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서너 시간씩 규칙적으로 작업한다”며 “나에겐 소설 쓰기가 또 다른 여행”이라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9.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