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일생과 생존방식 살핀 '고양이 생태의 비밀'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고요히 잠든 모습이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다. 세상의 근심·걱정을 다 떨쳐버린 듯하다. "야옹~!" 하며 우는 소리는 또 어떤가. 그 가냘픈 울음이 갓난아기의 목청처럼 애틋하다. 아름다움과 유연함, 그리고 우아함을 두루 갖춘 매력 덩어리의 생물!
사냥할 때는 먹잇감을 순식간에 제압할 만큼 날렵하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생사와 애증을 초월한 수도자처럼 저 홀로 정숙하고 근엄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쓰다듬는 그루밍 모습 역시 귀엽기 짝이 없다.
'고양이 박사'로 불리는 일본의 동물생태학자 야마네 아키히로(53) 박사가 고양이의 일생과 생존방식을 살핀 '고양이 생태의 비밀'을 펴냈다. 세이난가쿠인대학 교수인 저자는 그동안 '신비한 고양이 세계', '고양이는 대단해', '고양이 연구' 등 관련서를 잇달아 출간해왔다.
'고양이 섬'으로 불리는 아이노시마에서 7년간 현장 조사를 해온 야마네 박사는 이번 책에서 고양이라는 종이 탄생하고 가축화된 과정, 인류 역사에서 고양이가 추앙받거나 박해받으며 인간과 관계를 맺어온 과정 등을 차례로 더듬었다.
이와 함께 동물학, 생태학, 행동학, 생리학 등의 관점에서 고양이의 신비로운 매력을 규명한다. 고양이의 출생에서 청춘, 사랑, 육아, 노후, 죽음까지 오랜 기간 추적·관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고양이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자신의 경험과 함께 흥미롭게 들려준다.
인간과 고양이가 만난 건 1만 년 전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줄곧 인간과 교류해오면서도 고양이는 야생의 모습과 본능, 능력을 잃지 않고 유지해오고 있다. 이처럼 자연스럽고 독립적이며 평화롭게 인간과 관계를 맺어온 가축은 고양이가 유일하단다.
고양이의 독자적 야생성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또렷하다. 소, 말, 돼지, 닭 등의 가축은 그 원종이 강제로 가축화되며 철저히 인간에 종속됐지만, 고양이는 인간 취향에 굴복함 없이 지금까지 원종에서 거의 달라지지 않은 외모와 야생성을 그대로 유지해왔다.
쌍방의 동등한 공존이랄까, 아니면 상부상조의 계약 관계랄까? 고양이는 인간 주거지에 퍼져 있던 쥐를 잡아먹기 위해 사람 곁으로 다가왔고, 인간도 고양이의 유용성을 알아차리고 가까이 살도록 허락했다. 바로 이 덕분에 '제멋대로' 사는 고양이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유연한 행동 양식이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다. '사람'은 '사람'이고, '고양이'는 '고양이'라고 할 만큼 적당한 거리를 상호 유지하며 생활하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고양이의 습성과 생태에 관한 새로운 사실도 알려준다. 예컨대, 수고양이는 어느 정도 크면 자신이 살던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역으로 수 주일 동안 여행한다. 집고양이라 할지라도 어느 날 안락한 환경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야생의 삶을 산다. 이는 배낭 하나 둘러맨 채 긴 여행길에 오르는 방랑자 같기도 하고, 세속을 떨쳐버린 채 대자연에서 유유자적하는 출가승을 닮기도 했다.
그렇다고 일 년 사시사철 유랑생활을 하는 건 아니다. 한겨울 발정기가 되면 수컷들은 발정한 암컷을 찾아다니고 그 곁에서 몇 날 며칠 밤낮없이 구애한다. 임신한 암컷 또한 출산 후 아기 고양이에게 젖을 먹이고 나서 짬짬이 먹이를 찾아다닌다.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건강한 생활방식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고양이와 개의 비교도 재미있다. 고양잇과 동물은 기본적으로 혼자 생활하고 사냥한다. 자기가 필요한 것은 모두 스스로 결정하고 단독으로 움직인다. 인간의 눈에 고양이가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이며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비치는 이유다.
반면에 개과 동물은 집단생활을 하고 사냥할 때 역시 무리 지어 협력한다. 조직적 사냥에는 사령탑이 되는 리더가 필요하다. 사냥의 효율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서열 정리가 이뤄진다. 그래서 개 사회에서는 복종과 성실이 요구된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고양이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문제의 해결책도 언급한다. 대표적인 게 고양이 대량 살처분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10만 마리가 살처분되는데, 이는 길고양이에게 과도하게 먹이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 야마네 박사는 과도한 먹이 주기가 과도한 살처분이라는 비극을 초래한다고 안타까워한다.
고양이는 보통 1년에 한 번 발정한다. 하지만 길고양이에게 고단백·고칼로리 캣푸드를 주면 영양 상태가 지나치게 높아져 1년에 수차례씩 새끼를 계속 낳게 되고 결국 개체 수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온다.
야마네 박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람과 고양이의 본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되 적당한 거리를 상호 유지하며 공존해야 한다는 얘기. 길고양이의 환경은 집고양이보다 혹독하지만, 이는 야생동물에게 공통된 자연의 이치로, 1만 년 동안 그래왔듯이 고양이의 독자적 생존방식에 지나치게 참견·간섭하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주자고 권유한다.
저자는 이어 "동서고금에 공통된 고양이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그 존재 자체가 내뿜는 '신비로움'에 있다"며 "고양이 연구자인 내가 고양이의 신비한 베일을 하나하나 벗기려고 해도 그 비밀은 더욱더 깊어지기만 한다"고 거듭 찬탄을 보낸다.
끌레마 펴냄. 홍주영 옮김. 268쪽. 1만5천원.
연합뉴스 송고시간 |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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