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연구팀을 꾸렸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암호화폐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중앙은행이 기존 화폐 외에 왜 디지털화폐 발행을 고민하나요.
마이너스 금리 도입되며 논의 시작
화폐 주조·거래 비용 낮추기 용이
네덜란드·스웨덴 등 연구 본격화
민간 상업은행 존폐 위협할 수도
블록체인 등 기술 이용, 액면 금액 정한 법정화폐"
A.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Cryptocurrency)는 이제 낯선 용어가 아닙니다. 암호화폐 투자 열풍으로 수많은 암호화폐가 속속 등장하고 있죠.
암호화폐는 우리가 돈이라고 부르는 화폐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폐(은행권)와 동전(주화)으로 이뤄진 화폐는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발행합니다.
반면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민간이 개발하고 관리하는 디지털 통화입니다. 독자적인 화폐 단위를 가지고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교환 가치가 달라집니다. 24시간 거래되는 암호화폐의 특성상 가격 변동성이 큽니다.
암호화폐는 우리가 돈이라고 부르는 화폐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폐(은행권)와 동전(주화)으로 이뤄진 화폐는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발행합니다.
반면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민간이 개발하고 관리하는 디지털 통화입니다. 독자적인 화폐 단위를 가지고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교환 가치가 달라집니다. 24시간 거래되는 암호화폐의 특성상 가격 변동성이 큽니다.
때문에 화폐의 기본 조건인 교환의 매개, 가치의 척도, 가치의 저장 수단 기능은 아직 부족합니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등장은 기존 화폐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위협 요인입니다. 이미 화폐의 위기는 시작됐습니다. 신용카드나 디지털 결제 시스템이 보편화하면서 현금의 기능과 역할이 점차 줄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암호화폐가 가세하며 돈을 만들어내는 중앙은행의 영향력이 줄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감 속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CBDC)’에 대한 연구에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블록체인이나 분산원장기술 등을 이용해 전자적 형태로 저장되는 화폐입니다. 기술적 기반으로만 따지면 암호화폐와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지폐나 동전처럼 1000원 혹은 1만원 같은 액면 가격이 정해져 있고 법정 화폐로 효력이 있다는 점에서 암호화폐와는 다르죠. 중앙 통제기관이 없는 암호화폐와 달리 디지털화폐는 중앙은행이라는 강력한 기관이 통제합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논의가 본격화한 건 마이너스 금리 때문입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끌어내렸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죠.
금융회사가 중앙은행에 맡기는 돈에 이자를 지급하는 대신 수수료를 부과한 겁니다. 일반적으로 은행이나 금융회사가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돈을 물린 거죠. 돈을 중앙은행에 맡기지 말고 기업이나 개인에게 빌려주라는 취지입니다. 돈을 빌린 기업이나 개인이 투자하거나 소비하도록 유도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통화정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효과는 크지 않았습니다. 금융회사가 수수료 부담을 고객인 개인과 기업에 떠넘기자 고객은 현금을 인출해 금고 등에 쌓아놓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학자들이 생각해 낸 것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입니다. 디지털화폐 계좌에 설정된 돈에 수수료를 부과해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면 계좌에 돈을 놔둘수록 손해이기 때문에 소비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 계좌에 적용하는 금리 조절을 통해 시중은행을 거치지 않고 기업과 가계에 직접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후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주요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정상화로 방향을 틀면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위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에 대한 논의는 다소 수그러들었습니다. 오히려 암호화폐 등장으로 디지털화폐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제고되고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경제 및 금융 상황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습니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디지털화폐 발행은 화폐 주조 비용과 관리 비용을 줄이며 이익을 늘일 수 있는 방안입니다. 지폐와 동전과 같은 현금을 발행할 때 도안과 인쇄, 위조 방지를 비롯해 돈을 보관하고 운송하는 데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듭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폐기한 화폐를 대체하는 데 617억원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반면 중앙은행이 누리는 시뇨리지(화폐주조 차익)는 늘어납니다. 시뇨리지는 화폐의 액면가에서 발행 등에 들어가는 주조 비용을 제외한 것입니다. 디지털형태의 화폐를 발행하면 사실상 주조 비용은 큰 폭으로 줄게 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편리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굳이 현금이나 신용카드 등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연결된 계좌를 통해서 거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는 거죠. 거래 속도도 빨라지고 비용도 저렴해질 겁니다.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개발에서 가장 앞서가는 곳은 네덜란드 중앙은행입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2015년 디지털화폐 ‘DNB코인’을 선보였습니다. 실제 유통되지는 않지만 은행 내부용으로 사용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는 2016년부터 디지털화폐인 ‘e크로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e크로나’ 발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중국인민은행은 2014년 디지털화폐 특별전담반을 꾸렸고, 지난해 초 시험용 디지털화폐를 제작해 몇몇 국유은행과 송금 및 결제 테스트를 시행했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다른 시중은행과도 시범적으로 디지털화폐를 거래한 것으로 알려졌죠.
그럼에도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제롬 파월 미 연방 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해 6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둘러싼 사이버 공격과 개인정보 유출, 위조 등의 취약성을 지적하면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도입 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의 등장으로 시중은행의 존립은 위태로워질 우려가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개인의 디지털화폐 계좌를 갖게 되는 셈이 돼 모든 경제주체의 은행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에 대한 최근 논의와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과 사용은 암호화폐의 장점과 가치 안정성까지 제공하는 만큼 은행 예금뿐만 아니라 은행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화폐의 발권과 통화조절, 지급 결제를 비롯해 사실상 예금 수신 등의 업무까지 중앙은행에 집중되면 관련 정보를 관리하는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기존의 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습니다. 풀어야 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인류 역사 이래 이어져 온 만질 수 있는 화폐가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8.02.13
하지만 암호화폐의 등장은 기존 화폐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위협 요인입니다. 이미 화폐의 위기는 시작됐습니다. 신용카드나 디지털 결제 시스템이 보편화하면서 현금의 기능과 역할이 점차 줄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암호화폐가 가세하며 돈을 만들어내는 중앙은행의 영향력이 줄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감 속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CBDC)’에 대한 연구에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블록체인이나 분산원장기술 등을 이용해 전자적 형태로 저장되는 화폐입니다. 기술적 기반으로만 따지면 암호화폐와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지폐나 동전처럼 1000원 혹은 1만원 같은 액면 가격이 정해져 있고 법정 화폐로 효력이 있다는 점에서 암호화폐와는 다르죠. 중앙 통제기관이 없는 암호화폐와 달리 디지털화폐는 중앙은행이라는 강력한 기관이 통제합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논의가 본격화한 건 마이너스 금리 때문입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끌어내렸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죠.
금융회사가 중앙은행에 맡기는 돈에 이자를 지급하는 대신 수수료를 부과한 겁니다. 일반적으로 은행이나 금융회사가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돈을 물린 거죠. 돈을 중앙은행에 맡기지 말고 기업이나 개인에게 빌려주라는 취지입니다. 돈을 빌린 기업이나 개인이 투자하거나 소비하도록 유도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통화정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효과는 크지 않았습니다. 금융회사가 수수료 부담을 고객인 개인과 기업에 떠넘기자 고객은 현금을 인출해 금고 등에 쌓아놓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학자들이 생각해 낸 것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입니다. 디지털화폐 계좌에 설정된 돈에 수수료를 부과해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면 계좌에 돈을 놔둘수록 손해이기 때문에 소비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 계좌에 적용하는 금리 조절을 통해 시중은행을 거치지 않고 기업과 가계에 직접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후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주요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정상화로 방향을 틀면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위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에 대한 논의는 다소 수그러들었습니다. 오히려 암호화폐 등장으로 디지털화폐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제고되고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경제 및 금융 상황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습니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디지털화폐 발행은 화폐 주조 비용과 관리 비용을 줄이며 이익을 늘일 수 있는 방안입니다. 지폐와 동전과 같은 현금을 발행할 때 도안과 인쇄, 위조 방지를 비롯해 돈을 보관하고 운송하는 데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듭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폐기한 화폐를 대체하는 데 617억원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반면 중앙은행이 누리는 시뇨리지(화폐주조 차익)는 늘어납니다. 시뇨리지는 화폐의 액면가에서 발행 등에 들어가는 주조 비용을 제외한 것입니다. 디지털형태의 화폐를 발행하면 사실상 주조 비용은 큰 폭으로 줄게 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편리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굳이 현금이나 신용카드 등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연결된 계좌를 통해서 거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는 거죠. 거래 속도도 빨라지고 비용도 저렴해질 겁니다.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개발에서 가장 앞서가는 곳은 네덜란드 중앙은행입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2015년 디지털화폐 ‘DNB코인’을 선보였습니다. 실제 유통되지는 않지만 은행 내부용으로 사용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는 2016년부터 디지털화폐인 ‘e크로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e크로나’ 발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중국인민은행은 2014년 디지털화폐 특별전담반을 꾸렸고, 지난해 초 시험용 디지털화폐를 제작해 몇몇 국유은행과 송금 및 결제 테스트를 시행했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다른 시중은행과도 시범적으로 디지털화폐를 거래한 것으로 알려졌죠.
그럼에도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제롬 파월 미 연방 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해 6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둘러싼 사이버 공격과 개인정보 유출, 위조 등의 취약성을 지적하면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도입 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의 등장으로 시중은행의 존립은 위태로워질 우려가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개인의 디지털화폐 계좌를 갖게 되는 셈이 돼 모든 경제주체의 은행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에 대한 최근 논의와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과 사용은 암호화폐의 장점과 가치 안정성까지 제공하는 만큼 은행 예금뿐만 아니라 은행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화폐의 발권과 통화조절, 지급 결제를 비롯해 사실상 예금 수신 등의 업무까지 중앙은행에 집중되면 관련 정보를 관리하는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기존의 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습니다. 풀어야 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인류 역사 이래 이어져 온 만질 수 있는 화폐가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8.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