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암호화폐는 이미 생태계 확보한 바이러스, 죽일 수 없다

해암도 2017. 12. 22. 05:18

비트코인 열풍 …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준비위) 대표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 공동대표는 ’거품과 투기 논란에도 암호화폐는 이미 생태계를 확보한 바이러스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춘식 기자]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 공동대표는 ’거품과 투기 논란에도 암호화폐는 이미 생태계를 확보한 바이러스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춘식 기자]


피자 두 판에 1만 비트코인. 2010년 5월 18일, 그전 해 세상에 등장한 비트코인이 실물 거래에 통용된 첫 사례다. 당시 1만 비트코인 호가는 41달러. 개당 4.5원꼴. 2017년 12월 21일 오후 1시 현재,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시세판의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2130만원 선. 7년 반 만에 대략 473만 배. 환상의 수익률이다. 이런 환상 때문일까. 어딜 가나 너도나도 암호화폐 이야기다. 대박의 꿈과 쪽박의 두려움이 교차하는 광풍의 한가운데서 일반인들은 혼란스럽다. 여기에 거래소 해킹사건까지 겹치면서 암호화폐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가 돼 가고 있다. 암호화폐의 현재와 미래를 전문가인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로부터 들어봤다.
 

제도권과 접목되며 관심 폭증
버블인지 아닌지 단정 어렵다
가격 일시 떨어질 수 있겠지만
기술적 가능성 이제 시작 단계

보안·건전성 규제는 강화돼야
증권거래소처럼 제도화 시급
일확천금 노린 ‘투기’는 위험
‘미래 공부’ 기분으로 투자하길


질의 :가히 암호화폐 광풍이다. 컴퓨터가 만들어 낸 가상적 존재가 왜 화폐가 되는가.
응답 :“화폐의 본질은 ‘정보’다. 우리가 쓰고 있는 돈을 보자. 지폐는 그 자체로는 종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인들은 여기에 적힌 숫자의 정보와 가치를 믿는 것이다. 법정화폐는 중앙은행 혹은 정부가 가치를 보증해 줬다. 암호화폐는 중앙의 중개자가 필요 없는 정보 신뢰 시스템이다. 암호화폐의 기반은 블록체인 기술이다. 모든 사람이 공동의 장부에 각자 거래정보를 입력한 뒤 이의 복제본을 나눠 가져 ‘되돌릴 수 없게’, 즉 위·변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개념이다.”
 
질의 :‘암호화폐’와 ‘가상화폐’라는 말이 혼재돼 쓰인다. 뭐가 맞나.
응답 :“암호화폐(cryptocurrency)가 맞다. 외국에서도 다 이 용어를 쓴다. 암호화폐는 암호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분산 컴퓨팅 기술의 개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가상화폐란 용어는 유사통화라는 느낌을 준다. 항공사 마일리지나 게임머니 같은 것도 가상화폐다. 사기꾼들이 만드는 가짜화폐 같은 것과 개념적으로 혼동될 수도 있다. 우리 정부도 가상화폐란 말 대신 암호화폐라는 말을 썼으면 한다.”
 
질의 :비트코인이 주목받게 된 과정은.
응답 :“비트코인은 2009년 1월 3일 생겼다. 초기엔 규제와 감시를 피해 조성된 ‘다크 웹(dark web:특정 프로그램에서만 접속할 수 있는 웹)’에서 일부 거래가 이뤄졌지만 대중의 관심으로부터는 멀었다. 그러다 2013년 남유럽 금융위기로 일종의 리스크 헤지(위험 분산) 목적에서 제도권 금융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때 1200달러까지 올라갔다가 2014년 일본의 거래소 마운트곡스의 해킹사건이 일어나면서 200달러 선까지 폭락하기도 했다. 가격은 급등락을 거쳤지만 블록체인 기술 자체의 유용성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질의 :올해 들어 갑자기 가격이 뛴 이유는 무엇인가.
응답 :“제도권과 접목되면서다. 일본에서는 올해 발효된 자금결제법 개정안으로 암호화폐가 합법적인 결제 수단으로 인정되면서 개인 자금이 유입됐다. 미국에서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비트코인 선물 거래가 시작되면서 제도권 접속이 이뤄졌다. 선물 거래를 위한 유동성 공급 차원에서 현물을 일부 확보해야 하는데, 이게 수급에 영향을 준 것이다. 2014년 거품이 꺼지면서 끝날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나는 걸 보고 사람들이 회복력을 믿게 됐다. 각국 정부와 금융권까지 제도화에 나서면서 암호화폐의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질의 :지금은 너무 오른 것 아닌가. 버블(거품) 아닌가.
응답 :“내가 4년 전에 쓴 책에서 암호화폐의 미래를 예측했다. 거의 다 맞았다. 하지만 이 정도 속도와 폭일 줄은 몰랐다. 현재 금의 시가총액은 대략 7조 달러(약 8000조원)다. 월가에선 금의 리스크 헤지 기능을 비트코인이 상당 부분 잠식할 것이라고 보는 분석가들이 있다. 2년 내 4만~5만 달러까지 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솔직히 나는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확신이 있다면 내 전 자산을 투자할 텐데 아직 금융권에 맡긴 자산이 훨씬 많다. (자산으로서) 버블이냐 아니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암호화폐의 금융 기술적 가치다. 진실은 버블과 기술, 그 중간쯤에 있을 것이다.”
 
질의 :암호화폐가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고 보는가. 잠깐의 열풍 아닐까.
응답 :“가격이 얼마까지 오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죽진 않겠다는 확신은 있다. 각국 정부의 규제가 영향을 줘 가격이 떨어질 순 있다. 하지만 생존의 임계점을 넘어 생태계를 구축한 바이러스처럼 지구상에서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가령 은행은 이사회에서 결의하고 주총에서 승인하면 내일이라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의결해 문을 닫을 수 있는 주체가 없다. 전 세계인이 일시에 한마음 한뜻으로 자기가 보관하고 있는 장부를 삭제하지 않는 한 없앨 수 없다. 누군가가 삭제하면 다른 누군가가 ‘잘됐다. 빈자리는 내가 차지해야지’ 하고 다시 채울 것이다.”
 
질의 :금처럼 실물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허상 아닌가.
응답 :“우리는 점점 유형의 가치를 따지는 사회에서 무형의 가치를 따지는 사회로 이동 중이다. 10년 전 워런 버핏이 인터넷 기반 회사들은 실물자산이 없다며 질레트나 코카콜라에만 투자를 했다. 하지만 요즘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보라. 실물자산이 없다고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나. 많은 전문가가 블록체인 기술을 ‘트러스트 머신’이라 부르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질의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를 대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응답 :“암호화폐를 법정화폐와 대립 혹은 대체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일상생활에서 커피를 사고 책을 사는 결제 수단으로 쓰기는 힘들다. 애초부터 그렇게 설계된 게 아니다. 내가 우리나라 최초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빗을 만들면서 결제사업까지 검토했지만 접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지금의 현금이나 신용카드처럼 ‘소비자화폐’로 사용되긴 힘들 것이다. 다만 중앙집권적인 법정화폐가 갖지 못한 기술적 장점이 많다.”
 
질의 :어떤 장점인가.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응답 :“스트리밍사업의 예를 들어 보자. 지금은 음원제작자·저작권자·유통업자 등 관련자들이 스트리밍이 몇 곡 됐는지 각자 장부에 기입했다가 나중에 정산한다. 같은 화폐를 쓰는 국내 사업자들끼리는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화폐 단위가 다르고 각자 장부의 기입 내용이 다를 수 있어 정산이 복잡해진다. 이를 보증할 금융기관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을 쓰면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제3자가 공신력을 보증하는 번거로운 과정 없이 ‘알아서’ 정산할 수 있다. 이런 게 4차 산업혁명이다.”
 
질의 :지금의 기술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왜 굳이 암호화폐니 블록체인이니 하는 기술이 필요한가.
응답 :“스마트폰을 보자.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굳이 이런 걸 써야 하나’라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은 그런 사람 모두 스마트폰을 쓴다. 기술이란 한번 뚜껑이 열리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되돌릴 수 없다.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기술이 열리면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생기고, 시장이 형성되고, 서비스도 생긴다. 기술의 ‘비가역성’이다. 블록체인은 ‘중앙통제’가 필요 없는 사물인터넷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질의 :거래소의 해킹이나 보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응답 :“지금 블록체인 기술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암호화폐와 법정화폐를 중개하는 거래소다. 암호화폐는 분산 컴퓨팅의 신기술을 이용해 한 사람이 위·변조나 해킹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거래소는 현재 증권회사처럼 중앙집중 시스템이다. 여기서 취약점이 생길 수 있다. 아직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초창기라서 문제가 더 크다.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안전에 별문제가 없지만 이를 보관하는 창고가 위험한 것이다.”
 
질의 :암호화폐 시장이 점점 투기장으로 변하고 있다.
응답 :“제도화를 통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강한 건전성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 주식거래소 같은 형태의 규제가 이뤄지면 투기와 안전 우려는 많이 사그라질 것이다. 실제로 선물 거래 허용 등의 제도화가 시작되고 거래 규모도 커지면서 12월 들어 시세는 많이 안정됐다. 하지만 일확천금을 노리고 들어오는 것은 권하지 않겠다. 미래 기술 혹은 4차 산업혁명을 공부한다는 자세로 합리적인 규모에서 분산 투자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질의 :얼마 전 정부 대책과 협회의 자율규제안이 발표됐다. 이 정도로 불안감을 씻을 수 있나.
응답 :“대책의 요지는 거래소의 보안규정이나 자기자본금 규모를 강화해 난립을 막자는 것이다. 정부의 중장기적인 규제안이 나오면 시장의 불안정성이 상당 부분 제거될 것이다. 하지만 이 규제가 막 싹트고 있는 관련 기술을 억누르는 방향이 돼선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암호화폐를 유사수신행위와 같은 차원에서 놓고 규제하는 것은 반대한다.” 
 
김진화(41) 대표는 …
연세대 영문학과 4년 중퇴.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6년간 근무한 뒤 오르그닷(의류 유통 스타트업 기업)과 비영리 공익법인 ‘타이드인스티튜드’ 등을 창업했다. 2013년 국내 최초의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을 공동 창업했다. 지금은 암호화폐 거래소, 금융기관, 지자체 등이 참여한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 공동대표를 맡아 정부기관·국회·금융기관 등을 오가며 암호화폐의 가능성과 미래 가치 등을 설명하고 있다. 2013년 암호화폐 기술을 소개하는 국내 최초의 단행본 『넥스트머니 비트코인』을 출판했다.

    
이현상 논설위원·정리=김솔 인턴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7.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