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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민족이란 무엇인가

해암도 2017. 8. 30. 08:27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립,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세상은 온통 국가 간 갈등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중국 음식을 즐겨 먹는 미국 청년과 NBA 농구 경기를 즐겨보는 중국 대학생. 개인적 원한이 있을 리 없는 그들 역시 국가가 명령하면 서로 가슴에 총검을 겨눌 것이다. 민족이란 무엇이고, 국가란 무엇이기에 평범한 시민을 살인자로 만들 수 있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우선 겔너(Ernst Gellner)와 홉스봄(Eric Hobsbawm)의 근대주의적 가설이다. 겔너는 공통된 문화와 이데올로기가 불필요했던 농경 사회와 달리 산업혁명은 '민족'이라는 동질적 문화를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결국 민족과 민족주의는 겨우 200~300년 전 만들어진 새로운 전통이라는 것이다. 반면 근본주의자들은 민족과 국가의 영원한 전통을 강조한다. 각각의 민족은 고유한 공통점(혼? 혈통?)이 존재하기에 한국인은 영원히 한국 사람이고, 일본인은 영원히 일본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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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은 어차피 20만~30만년 전 동아프리카에 있다. 한국인만의 고유 혈통이 있을 리 없고, 과학적으로 민족의 '혼'이라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민족은 근대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자본이 만들어낸 사회적 현상일 뿐일까? 물론 아니다. 사회적 현상이기에 경제 체제와 교육만 바꾸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홉스봄과 겔너의 순진한 믿음과 달리 현대 과학이 바라보는 민족주의는 매우 복합적이다. 나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자식·형제·친척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은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선 너무도 당연하다.

현대사회의 시민은 대부분 서로 유전적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같은 나라 사람을 더 사랑하고, 다른 민족을 증오하는가? 아마도 나와 비슷한 행동, 믿음, 이데올로기를 나와 비슷한 유전자의 간접적 증거라고 착각하는 잘못된 추론 때문일 것이다. 결국 민족과 민족주의는 이기적 유전자가 잘못 확장된 데 따른 착시 현상일 수 있다.

  • 조선일보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 2017.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