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소를 터뜨리고 싶다면 이 영화를 봐야 한다. 중간부터는 숙연해지고 싶다면 이 영화를 봐야 한다. 마지막에 공포를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봐야 한다. 코미디와 휴머니즘과 공포가 공존하는 영화 '태양 아래(Under the Sun)'다.
러시아 출신의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살았던 공산주의 사회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불행히도 공산주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그 끝물인 북한에서라도 공산주의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한 소녀의 일상을 통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공산국가에서 산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지만 그의 기획은 시작부터 어긋난다.
북한 당국은 5명의 어린이를 후보로 제시했다. 감독의 선택은 여덟살 먹은 진미라는 소녀였다. 소녀의 이미지만 본 게 아니다. 기자인 아버지,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에 낡고 비좁은 아파트에서 조부모까지 함께 지낸다는 조건까지 고려했다. 그러나 촬영 당일 현장에 간 만스키 감독은 '멘붕'에 빠진다.
인물은 그대로였지만 그 외의 것은 모두 달라져 있었다. 조부모는 사라졌고 비좁은 집 대신 주체사상탑이 보이는 평양의 최고급 아파트가 제공되었으며 진미의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로 직업까지 바뀌었다. 게다가 현장에는 요청하지도 않은 현지 조연출(?)까지 나와 있었다. 이들은 감독 대신 레디 액션을 외쳤고 수없이 테이크(촬영 1회분)를 반복했다. 철수하는 게 맞다. 그러나 분노 대신 예술적 재치를 선택한 그는 이 검열과 통제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니까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태양 아래'의 태양은 물론 김일성이다. 아니 삼위일체니까 김일성과 김정일과 김정은일 수도 있겠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진미 가족의 아침 식사 장면이다. 김치 200g과 국물 70g만 먹으면 하루 필요 비타민의 반을 섭취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아버지에게 진미는 노화와 암 예방에도 최고라며 맞장구친다. 이어지는 가족의 하하호호. 그러나 이 장면은 수없이 반복 촬영된다.
'태양 아래'의 태양은 물론 김일성이다. 아니 삼위일체니까 김일성과 김정일과 김정은일 수도 있겠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진미 가족의 아침 식사 장면이다. 김치 200g과 국물 70g만 먹으면 하루 필요 비타민의 반을 섭취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아버지에게 진미는 노화와 암 예방에도 최고라며 맞장구친다. 이어지는 가족의 하하호호. 그러나 이 장면은 수없이 반복 촬영된다.
현장의 조연출들이 더 밝고 명랑하게 아침 담화를 나누는 가족을 보여주려고 몇 시간째 진미 가족의 진을 뺀 것이다. 전문 배우는 테이크가 반복될수록 연기의 디테일이 살아나지만 일반인들은 반대로 조금씩 정상(正常)에서 멀어진다. 그들은 하하호호 침통하게 웃는다. 하긴 같은 상에서 첫 숟가락을 수십 번 뜨는데 그렇게 안 되는 게 더 이상하다. 처음에는 웃긴다. 그러나 얼마 후엔 안쓰럽고 끝 무렵에는 섬뜩하다. 얹힌 듯 가슴이 답답한 데 다행히 감독은 이를 센스있게 비꼰다. 7시 35분을 가리키는 '연출 시계'와 4시 40분을 가리키는 실제 시계를 같은 카메라 앵글에 담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은 줄을 서서 김부자 동상에 꽃을 바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눈빛은 공허 그 자체다. 아무도 원치 않는데 모두가 그렇게 하는 이상한 파라다이스는 관리인들이 제단에 놓인 꽃다발들을 무표정하게 쓰레기통에 처넣으면서 정점을 찍는다. 모두 연극이었다. 비로소 그날 하루의 연극이 끝난 것이다. 초상화로, 동상으로, 벽화의 모습으로 통제하는 괴기스러운 왕국에서 흘리는 소녀의 눈물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태양 아래, 사람은 없었다.
영화의 마지막은 줄을 서서 김부자 동상에 꽃을 바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눈빛은 공허 그 자체다. 아무도 원치 않는데 모두가 그렇게 하는 이상한 파라다이스는 관리인들이 제단에 놓인 꽃다발들을 무표정하게 쓰레기통에 처넣으면서 정점을 찍는다. 모두 연극이었다. 비로소 그날 하루의 연극이 끝난 것이다. 초상화로, 동상으로, 벽화의 모습으로 통제하는 괴기스러운 왕국에서 흘리는 소녀의 눈물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태양 아래, 사람은 없었다.
조선일보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입력 : 2016.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