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양아래>의 한 장면. 영화 촬영의 전반을 북한 당국자가 통제하며,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까지 지적해주고 있다. |
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아래>(Under the Sun)를 봤다. 보는 내내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영화지만, 마지막엔 인간성을 철저하게 말살한 현대판 노예국가를 건설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김씨 왕조에 대한 분노가 스며 올랐다. 영화가 끝난 후 객석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의 주인공 진미도 울고, 관객들도 울었다.
영화는 북한이라는 거대한 세트장 위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연극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생존공식은 세 살 난 유치원아이에서 여든이 된 노인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유치원 아이가 80 노병의 6·25
이야기 도중 졸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은 북한이란 나라가 태어나면서 감시받는 사회이며, 이를 세 살난 어린아이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체제 선전 영화의 완성을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지시하는 노동당원조차도 가련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태양아래’는 평양에 사는 8세 소녀 진미의 가족을 통해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촬영에 협조하면서 탄생한 영화다.
감독은 1년 동안 북한 측이 제공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미와 그 가족을 촬영했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면은 북한 당국의 개입 아래 연출된 가짜의 일상이었다. 진미와 그 부모님이 실재 인물이라는 것 외에 진미
부모의 직업도, 그들이 사는 아파트도, 심지어 공장에 출퇴근하는 노동자의 행렬도 모두 연출된 것이었다. 북한 당국의 연출 장면은 감독이 몰래
촬영한 필름에 고스란히 담겼고, 역으로 북한 독재체제의 실상을 고발하는 생생한 모습으로 탄생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침울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북한에서 완전한 자유를 가진 사람은 오직 김씨 왕조 일가(一家)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김씨 왕조의 3대 두령(頭領)을 제외하고는 온 인민이 거대한 감옥에서 노예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었다.
태어나는 순간 먹고, 자고, 생각하는 것까지 통제를 받아온 북한 사람들은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연극을 해야만 생존을 보장 받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오직 하루의 생명을 더 연장하기 위한 동물적인 삶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주민들이 생산한 모든 것은 김씨
부자의 호화로운 생활과 체제의 안전, 그리고 인민을 핍박하고 고혈을 짜내기 위한 자금으로 재사용될 뿐이다.
학업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이동의 자유, 심지어 결혼의 자유도 박탈당한 북한 주민들은 당과 수령에 노예적인 충성을 바치는 것 외에
장래에 무엇이 되겠다는 희망조차 가져본 적이 없다. 우리 북쪽의 동포들은 70년의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다.
감독은 모든 촬영은 100% 북한 당국의 통제 아래 진행됐고, 모든 필름을 검열 받았다고 말했다. 감독이 북한 당국의 통제 없이 촬영
가능한 부분은 호텔을 통해 창밖을 찍는 것과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 진미가 우는 모습뿐이라고 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많은 남한 사람들이 보고 지금도 북한에서 반인륜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영화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 영화가 전 세계에 개봉되어 많은 사람이 보는 것, 남한의 매체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진미 가족의 안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변호인>이 관객 1000만 명이 넘을 때까지 CGV를 비롯하여 주요 극장이 도배를
해놓았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 관계를 심각하게 왜곡한 이 영화는 당시 연말연시에 숫제 다른 영화는 걸어놓지를 않을 정도로 스크린 독점이
심했었다. 필자는 연말에 다른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았다가 변호인 외에 선택할 수 없어 여러 차례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있다.
처음에 극장 개봉까지도 의심스러웠던 저 예산영화 <귀향>은 소위 좌파성향 매체와 포털이 집중 홍보를 해주어 스크린 수를
늘이고 엄청난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다. 아마 이들이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협상 문제를 공격할 충분한 거리가 된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에 반해 좌파적 성향의 언론과 이들 기사의 주요노출 경로인 포털, 좌파 영화를 이상하리만큼 선호해 온 우리나라 대형 극장은 그동안
북한 인권을 다룬 영화는 철저히 외면해 왔다. <태풍>, <크로싱>, <신이 보낸 사람> 등이 그 예다.
<태양아래>도 몇몇 보수 신문 외에는 다루는 언론이 거의 없고, 포털도 이 영화와 관련된 일체의 기사를 메인에 노출시키지 않고 있다.
그렇더라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지난 70년간 독재 체제에 신음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애써 외면하거나
도움의 손길을 보내지 않았다. 거짓이라는 모래성 위에 서 있는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이다. 북한 당국은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온 나라를 감옥으로 만들어 놓고, 주민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혹하게 통제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에게 독재 체제의 허상을 깨닫게 하려면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를 통해 북한 주민 스스로 독재체제를 타도하게 유도하는
것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빨리 통일을 이루는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