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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포르노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해암도 2016. 3. 27. 06:51

[뉴스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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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러스트 감독은 “스크린에 충분히 비쳐지지 않는 여성의 성생활을 보여주는 데 흥미를 느낀다”고 말한다.

에리카 러스트 감독의 여권주의 포르노는 유머감각에 예술성까지 겸비해

지난 2월 어느 날 독일 베를린의 바빌론 극장으로 관객이 몰려들었다. 여류 영화감독 에리카 러스트(39· 본명 에리카 할크비스트)의 단편영화 시리즈를 보러 온 관객 대다수는 여성이었다. ‘페미니스트 맨(A Feminist Man)’이 시작되자 한 여자 관객이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속삭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야.” 그들은 핸섬한 성별학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듣는 유일한 여학생을 유혹해 강의실에서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본다.

중요한 건 쿤닐링구스(구강성교의 일종)를 위주로 한 이 영화의 빈약한 플롯이 아니라 러스트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여권주의의 산물로 본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포르노지만 그녀는 “포르노와 여권주의는 상호배타적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주류 포르노업계의 역사가 시사하는 바와는 상반되는 주장이다. “난 에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영화에는 감정과 관계 등 포르노와는 다른 요소들이 많다. 난 스크린에 충분히 비쳐지지 않는 여성의 성생활을 보여주는 데 흥미를 느낀다.”

그 결과는 비록 포르노지만 생산가치가 높고 유머감각이 있는 포르노다. 고상하고 예술성이 있는 포르노다. ErikaLust.com의 ‘About’ 페이지에는 주문 같은 문구가 핑크색으로 쓰여 있다. ‘포르노를 만들자. 하지만 다르게 만들자! 인디 영화를 만들자’. ‘페미니스트 맨’에서 그 교수는 여학생에게 구강성교를 하기 전 칠판에 ‘여권주의(feminism)’라고 쓴다.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다. 러스트 감독의 영화는 여성비하적이고 여성혐오적인 플롯을 관객(특히 여성)이 즐기고 논의할 수 있는 뭔가로 탈바꿈 시킨다.

세계 포르노 산업은 연간 97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다. 에콰도르의 국내총생산(GDP)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미국 포르노업계의 매출은 연간 130억 달러로 그중 30억 달러가 인터넷 포르노 매출이다. 지난해 웹사이트 PornHub의 총 시청 시간은 40억 시간에 달했다.

따라서 러스트 감독이 포르노를 만드는 이유는 세상에 더 많은 포르노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여성에게 어필할 만한 작품이 너무 적어서다. 지난 2월 배우 엠마 왓슨은 여권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만나 여성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면서 ‘포르노그라피를 대체할 만한 멋진 영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왓슨은 그런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듯하다.

“온라인에서 그런 영화를 찾는 여성들은 PornHub에서 제공하는 작품들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혐오감을 느낀다”고 러스트 감독은 말했다. 그녀는 스웨덴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산다. 2004년 러스트 감독과 그녀의 파트너 파블로 도브너(46)는 ‘러스트 시네마’라는 제작사를 설립했다. 그녀는 줄거리가 있는 영화를 만들며 호감 가는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쓴다. 또 액션은 늘 남녀 상호간의 즐거움에 뿌리를 둔다. “여성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뭔가를 발견하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고 러스트 감독은 말했다. 그녀의 영화가 일반 포르노와 다른 점이 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미학과 가치관, 제작 방식이 다르다. 내 영화엔 이야기가 있고 캐릭터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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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 감독이 촬영에 들어가기 전 여배우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난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런 외모의 배우를 쓴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런 형식은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다. 그녀의 첫 번째 단편영화 ‘굿 걸(The Good Girl)’은 온라인 출시 첫 주에 다운로드 횟수 200만 회를 달성했다. “난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그녀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뭔가 다른 걸 원한다는 걸 깨달았다.” 러스트 감독은 2014년 이후 매년 26편의 단편영화를 찍었고 장편 에로 영화도 3편 제작했다. 자본은 모두 팬들이 댔다. 그녀의 웹사이트 XConfessions.com의 회원 수는 12만 명에 이르며(회비는 월 15달러부터 연 100달러까지다) 그중 60%가 남성, 40%가 여성이다.

그녀는 포르노업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을 자신의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성인영화 산업은 아직 꽃을 피우지 못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색다른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나서지 않아서인 듯하다.” 그런 사람들은 주로 여권주의 포르노에 참여한다. 1990년대 이 부문에서 여성 영화감독이 급증했다. 애니 스프링클은 여성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 성생활 안내 비디오, 트리스탄 타오르미노는 여성의 오르가슴에 관한 비디오 가이드를 제작했다. 2000년대 초에는 호주 작가 겸 감독인 미즈 노티가 여성을 위한 포르노 웹사이트 ‘포 더 걸스(For the Girls)’를 설립했다.

동성애 포르노의 상징인 코트니 트러블과 철학과 출신의 오비디 등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 또 성인오락 브랜드 ‘주시 핑크 박스’를 설립한 포르노 프로듀서 겸 칼럼니스트 진시 럼프킨도 있다. TEDx에서 강연을 한 그녀는 ‘레즈비언계의 휴 헤프너’(남성잡지 ‘플레이보이’ 창설자)라고 불린다. 전반적으로 포르노업계는 할리우드보다 다양성이 더 두드러진다.

여권주의 포르노는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즐거움을 느꼈는지 감독에게 털어놓은 내용에 초점을 맞춘다. 러스트 감독의 단편영화집 7편 중 하나인 ‘XConfessions’는 팬들이 보낸 에로틱 판타지를 바탕으로 한다. 그녀는 매달 그중 2개를 골라 영화로 만든다. 그런 식으로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작품을 만드는 업계 최초 감독이 됐다.

러스트 감독은 전형적인 포르노의 뻔한 수법을 무시한다. 그녀의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는 매력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몸에 피어싱과 문신을 한 배우도 있지만 여성의 시점에서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방해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포르노란 이런 것이다’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금발에 큰 가슴, 기다란 손톱을 가진 섹스 기계를 연상한다”고 러스트 감독은 말했다. “하지만 대안이 있다.”

23세 미만의 배우는 캐스팅하지 않는 러스트 감독의 영화엔 불법적인 요소가 없다. “성인오락산업은 어린 여자에 흥미를 보인다”고 그녀는 말했다. 또 러스트의 영화 속 남자배우들은 클라크 켄츠처럼 머리숱이 많고 근육질 몸매를 지녔다. “많은 여성이 내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이 매우 섹시해서 좋다고 말한다. 난 자연스럽게 보이는 남자 배우들을 쓴다.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여길 수 있는 스타일 말이다.”

하지만 캐스팅과 주제뿐 아니라 러스트 감독의 영화는 제작 측면에서도 여권주의 작품이다. 그녀는 촬영감독과 음향 전문가, 카메라 기사 등 약 15명의 여자 스태프와 함께 일한다. 포르노와 주류 영화업계에서는 주로 남자가 맡는 일이다. 러스트 감독은 “카메라 기사가 남자일 경우 여자의 몸에 초첨을 맞추는 경향이 있지만 여자 카메라 기사는 남자 배우의 얼굴이나 여자 배우의 표정 등 다른 매력적인 것들을 화면에 담는다”고 설명했다.

러스트 감독은 또 포르노업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야심을 갖고 있다. 그녀는 그동안 ‘굿 포르노(Good Porn: A Woman’s Guide)’ 등 6권의 책을 썼는데 스페인어로 쓴 ‘노라의 노래(La Cancion de Nora)’를 ‘바르셀로나 2000’이라는 제목의 장편영화로 만들 계획이다.

현재 제작 준비 단계에 있는 이 영화는 러스트 감독의 자서전적 작품으로 스페인으로 이주해 영화감독으로 일하는 스웨덴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다. 올겨울 이 영화가 촬영에 들어가면 ‘XConfessions’의 제작은 ‘영화에 대해 나름의 비전을 가진 여자 감독’에게 맡길 생각이다. 장편영화는 러스트 감독이 지금까지 써 왔던 작품들보다 대사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그녀는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데 스릴을 느낀다. “그냥 신나는 정도가 아니다”고 그녀는 말했다. “좋은 영화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 땐 거의 오르가슴을 느낀다.”

나디아 세예지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