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환
아버지는 영웅이셨다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 보였고
가장 착하고 무서웠다
나는 이런 아버지가
영원할 줄 알았다
내가 커서 보니
아버지가 가끔
한없이 작아 보인다
소년원에 왔을 때
아버지께 맞아서 눈물이 났다
아파서 운 것이 아니라
너무 안 아파서 울었다
소년원을 방문해 수감된 청소년들과 시를 매개로 대화하는 시인들이 있다. 이른바 ‘시 치료’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년원 학생들이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것을 모아 최근에 『씨앗을 심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나왔다.
위 시는 ‘환’이라는 별명의 한 소년이 쓴 시다. 그는 “소년원에 왔을 때” 아버지에게 맞아서 눈물이 났는데, “아파서 운 것이 아니라/너무 안 아파서 울었다”고 한다. 소년은 이제 아프게 때릴 힘조차 없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 때문에 운다.
이 시집에 실린 시의 거의 대부분이 놀랍게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상처도 용서도 사랑도 모두 가족 관계에서 시작된다. 가정을 지상의 천국으로 만드는 일은 정언 명령이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중앙일보] 입력 2015.12.31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중앙일보] 입력 2015.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