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봉 기자얼마 전 강원도 삼척의 솔섬을 찍어 이를 널리 알린 마이클 케나(61)는 비슷한 사진으로 광고를 낸 대한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습니다. 북한은 종종 김정은의 사진을 조작해 국제사회에서 비웃음을 삽니다. 각기 다른 사건 같지만 모두 사진을 두고 일어나는 논란입니다. 저작권·조작 논란으로 세상의 이목을 끈 사진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마틴 루서 킹의 결정적 한 수
1963년 흑인 지도자 마틴 루서 킹의 해방운동은 위기였다. 1년 가까이 미국 전역에 인종차별을 이슈화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버밍햄에서 행진하기로 마음먹었다. 버밍햄은 인종차별이 가장 극심한 도시였다. 킹의 상대는 강력한 인종차별주의자인 버밍햄의 공안위원 유진 코너였다. 강성으로 유명한 코너였지만 처음엔 킹의 행진에 폭력적으로 대처하진 않았다. 운동이 폭력적인 양상으로 번지면 킹의 입지가 강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슈화가 지지부진하자 킹의 오른팔인 와이어트 워커가 꾀를 냈다. 흑인 고교를 돌며 “버밍햄 외곽의 교회로 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수많은 학생이 모였고, 거리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머릿수에 놀란 코너는 급기야 흑인의 행진을 막으려고 경찰을 동원했다. 경찰은 커다란 셰퍼드를 끌고 다녔다. 결국 셰퍼드 한 마리가 흑인 소년에게 달려들었고, 이를 AP통신 사진기자 빌 허드슨(1932~2010)이 촬영했다. 사진은 다음 날 전국 신문 1면을 도배했다. 흑인 운동사에 길이 남을 결정적인 한 컷이었다. 다음 해인 64년 미국 의회는 흑인 해방의 출발점인 ‘시민권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사진의 실상은 폭력적인 광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진에 찍힌 흑인 소년은 행진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다. 또 개의 목줄을 잡은 경찰관은 셰퍼드가 달려들지 못하게 하려고 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알려진 것일 뿐. 백인 경찰이 개를 흑인에게 달려들게 하는 듯한 사진의 이미지는 미국 전역에 퍼진 뒤였다.
화끈한 저작권 처리, 체 게바라 초상
쿠바의 혁명 영웅 체 게바라(1928~67)의 초상은 전설적 사진이다. 체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20대 초반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며 혁명가를 만나고 새 세상을 꿈꾸게 됐다. 55년 쿠바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고 둘은 이내 친구가 돼 함께 싸웠다.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뒤 체는 정권의 기초를 닦았다. 60년대 그의 초상은 열정과 정의의 신화로 추앙받으며 미국·유럽의 뭇 젊은이의 방에 걸렸다.
체의 초상 저작권 문제도 그의 불꽃 같은 인생처럼 대범하게 교통정리가 됐다. 사진은 카스트로의 전속 사진가인 알베르토 디아스 구티에레스(1928~2001·일명 코르다)가 60년 3월 아바나 항에서 찍었다. 이 사진은 67년 체가 쓴 ‘볼리비아 일기’의 표지로 쓰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체가 책을 펴내고 얼마 뒤 사망하자 책의 발행인인 잔자코모 페트로넬리가 사진을 포스터로 제작했다. 포스터는 60년대 유럽을 휩쓴 반전 평화 분위기를 타고 수백만 장이 팔려나갔다. 페트로넬리는 사진의 원작자 표기도 없이 포스터를 팔았다. 게다가 코르다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당시 코르다는 그 사진이 체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데 일조한다는 생각에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기업들이 체의 사진을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자 코르다의 마음이 바뀌었다. 2000년 코르다는 보드카 광고에 이 사진을 사용한 주류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승소해 7만 달러를 받은 그는 전액을 쿠바 어린이를 위한 기금으로 기증했다.
결과는 보호 받지만 발상은 보호 받지 못 한다
크리스토 야바체프(79)와 그의 아내 장 클로드(1935~2009)는 60년대부터 세계 각지를 돌며 기념비적 건물에 천으로 된 장막을 씌우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건물의 외관을 추상화해 부드러운 형태를 돋보이게 하는 작품이었다. 대개 건물마다 2주 정도만 장막을 씌워 뒀다. 95년엔 독일 국회의사당에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수백만 명이 관람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포장된 의사당의 이미지는 막 통일된 독일 민주주의 새 출발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3년 뒤 독일의 한 광고회사가 이 의사당을 찍은 사진으로 엽서를 발매한다. 야바체프의 전속 사진가 볼프강 볼츠(66)가 프로젝트 당시 찍은 것이었다. 야바체프는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건다. 쟁점은 이 프로젝트가 ‘예외적 조망권’에 해당하는지였다. 독일에선 어떤 예술 작품이 공공 장소에 항상 자리 잡고 있다면 원작자의 동의 없이 촬영할 권리를 보장한다. 독일 재판부는 “작품이 일시적으로 설치된 것이므로 항상 설치된 작품과 달리 예외적 조망권을 줄 수 없어 저작권을 인정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야바체프는 80년대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소송을 낸 적이 있었다. 한 광고회사가 샹젤리제 대로의 가로수를 야바체프가 한 방식과 유사하게 포장하려고 한 것이다. 야바체프는 이 ‘포장하려는 의도’ 역시 저작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발상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1억 달러 작가 제프 쿤스의 굴욕
미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문제적 작가로 꼽히는 제프 쿤스(59). 그는 88년 개인전에 내놓은 ‘한 줄의 강아지들’이라는 나무조각 작품 세 점을 36만7000달러에 팔았다. 작품 속의 부부가 똑 닮은 파란색 강아지 8마리를 품에 안고 미소를 짓는 화려한 색감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80년대 말 현대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저작권 소송에 휘말린다. 인물 사진가 아트 로저스(66)가 이 작품이 자신의 사진을 복제했다며 위조 혐의를 제기한 것이다. 로저스는 80년 이와 거의 유사한 광경을 담은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그는 이 사진을 작품 속의 부부에게 200달러에 넘겼고, 복제권도 양도했다. 하지만 로저스는 복제권은 부부에게만 있을 뿐 다른 이들이 자신의 사진을 이용하는 걸 허락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쿤스는 “사진이 독창적이지 않으므로 복제로 보기 힘들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쿤스가 이미 사진의 복제권이 로저스에게 있다는 걸 알고 한 행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기울었다. 재판부도 “로저스의 작품은 연출·구도 등 측면에서 독창적인 저작물”이라고 판단했다. 쿤스는 무단 복제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고, 판매액도 물어내야 했다.
63년 만에 드러난 사진 속 요정의 비밀
20년 여름 영국의 시골마을 코팅글리에 놀러온 소녀 프랜시스 그리피스(1908~86)와 사촌 언니 엘지 라이트(1901~88)는 어느 날 어른들에게 “들에서 놀다 요정을 만났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그 말을 당연히 믿지 않았다. 어느 날 둘은 카메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어 왔고, 라이트의 아버지가 필름을 현상했다. 놀랍게도 사진엔 날개가 선명한 손바닥 만한 요정이 찍혀 있었다. 이 이야기는 셜록 홈스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에게까지 전해졌다. 초현실적 존재를 믿었던 도일은 사진을 보고 난 뒤 실제라고 확신했고, 그 이야기를 잡지에 발표했다. 요정에 사진에 포착됐다는 이야기는 영국 전역에 퍼졌고, 국가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 유령·텔레파시 등 신비적 현상에 대한 믿음이 유럽에 퍼져 있던 시기였다. 조작설도 제기됐지만 믿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후 언론의 집요한 취재가 시작됐다. 그리피스와 라이트는 66년 영국 잡지와의 인터뷰, 76년 방송 인터뷰에서 조작이 아닌 실제 사진이라고 대답했다. 반세기 가까이 영국에선 요정 사진이 사실이라는 믿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83년 라이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책에서 요정을 오려낸 뒤 판지에 붙였고, 이를 나뭇잎에 건 뒤 촬영했다”고 썼다. 이 내용이 잡지에 실리며 63년 만에 조작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리피스는 숨지는 날까지 요정의 존재를 믿었다.
※ 참고 문헌 :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다윗과 골리앗』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4.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