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영국 대학에서 사육한 무지개보아 수컷의 깜짝출산
9년간 이성과 접촉 없어 "기적의 출산" 흥분
일부 파충류, 극한 상황서 자기 복제식의 단성 생식 사례 있어
생명의 탄생은 늘 경이롭고 신비롭습니다. 암과 수가 만나서 짝을 짓고 각각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새로운 생명이 만들어지고 대를 잇죠. 그 과정에서 주어진 환경에 맞게 진화라는 이름으로 변이가 이뤄지고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끔씩 통념을 벗어난 기이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과학과 상식의 틀을 벗어난 마법 같은 이야기는 귀와 눈을 잡아끌기 마련이죠. 오늘 소개해드릴 신비롭기 그지 없는 뱀 탄생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오는 4일 정권교체 여부가 결정될 총선을 앞두고 있는 영국에서 선거 소식 못지 않게 뱀 번식 뉴스가 화제가 되고 있어요. 뉴스의 주인공은 브라질이 원산지인 무지개 보아입니다.
영국 시티 오브 포츠머스 컬리지에서 사육중인 열 세 살 ‘호나우두’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짚어볼까요? 호나우두는 수컷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줄 알았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영국 최대 동물보호단체인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CPA)의 보살핌으로 9년 전 이곳에 보금자리를 꾸몄어요. 다섯살때였죠. 그 뒤로 사람들의 정성 속에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랐어요. 하지만 이성 없이 홀로 지냈습니다. 독수공방한거죠. 짝을 짓고 대를 잇는 본연의 임무는 수행하지 못했지만, 극진한 보살핌 속에 주는 먹이를 꾸역꾸역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어느 날 놈의 배가 유달리 불러있었습니다. 전담 사육 인력은 ‘녀석이 과식했나보다’라고 가벼이 넘겼답니다. 일은 그 다음에 발생했어요. ‘호나우두’의 집청소를 하러 간 사육 인력이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지렁이처럼 꼬물거리는, 하지만 몸의 꼴이나 무늬는 ‘호나우두’의 완벽한 미니어처인 새끼뱀이 꼬물거리고 있었어요. 하나, 둘, 셋, 넷... 헤아려보니 무려 열 네 마리였습니다. 이 뱀을 돌보던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수컷뱀의 출산이라뇨.
흔히들 뱀은 희고 보드랍고 타원형의 알을 낳고, 껍질을 뚫고 나오는 방식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뱀들은 난태생입니다. 암컷 몸 속에서 이미 부화해 미니어처처럼 똑같이 새긴 새끼가 반숙노른자 같은 난황과 함께 뱃속에서 숨풍숨풍 태어나는 거죠. 형식상 부화이지만, 사실상은 출산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짚이는게 있었습니다. ‘호나우두’가 수컷이라는 건, 9년전 이 뱀을 넘겨받을 때 담당 수의사가 ‘이 뱀은 수컷’이라고 말한 구두 전달 사항에 근거한 것이었어요. 그러려니했지, 실제로 성별을 정밀하게 검사할 생각까진 하지 않은 것이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수컷이 실은 암컷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습니다. 알려진대로 수컷이더라도, 실은 그게 아니라 암컷이더라도 9년동안 독수공방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거든요.
그렇다면 사실상 자기복제나 다름없다는 얘기인데 이런 현상이 정말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사육상태에서 무지개보아가 짝짓기 없이 번식한 것은 이번을 포함해서 최소 세 차례라고 합니다. 기록되지 않았을 뿐 그 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입니다. 무지개 보아 뿐 아니라 파충류 전반에서 아주 아주 드물지만 자기복제 방식의 번식이 일어나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어요. 지상 최대의 도마뱀이자 흉폭한 사냥꾼으로 이름난 코모도왕도마뱀 역시 매우 드물게 수컷과의 만남 없이 암컷이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시킨 사례가 보고돼있습니다. 이렇게 수컷의 정자로 수정시키지 않고 자기 복제 방식으로 번식시키는 방식을 단성 생식이라고 해요. 젖먹이짐승이나 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입니다.
극한의 생존환경에서 도저히 이성을 찾아 정자와 난자를 주고받는 방식으로의 정상적 번식이 불가능할 때, 일부 파충류 암컷들은 종족 번식의 일념으로 자기 복제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끼들은 아무래도 유전적 다양성이 높지 않아서 건강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를테면 고육책이죠. 기적처럼 자기복제에 성공한 주인공이 보아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괴물뱀의 대명사인 아나콘다가 소속된 보아는 아프리카·유라시아를 기반으로 한 비단뱀과 함께 괴물뱀의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조물주의 창조섭리는 치밀하고 공평해 절대로 승자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엄청난 덩치와 어마무시한 옥죄는 힘을 안겨줬지만, 독까지 하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까지 사냥할 수 있는 엄청난 괴수들이 독까지 품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더 어디에 있겠습니까. 무지개보아를 비롯해서, 공포의 아나콘다, 아름다운 초록빛깔을 한 에메랄드 보아 등이 있는데 덩치가 작은 여느 뱀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격은 순한 편이라고 하네요. 보아와 비단뱀은 덩치 면에서도 다른 뱀들을 압도하지만 파충류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신체적 특징을 갖고 있어요. 만약에 이 짐승이 도마뱀이라면 뒷발에 해당하는 부분에 뾰족한 발톱 모양의 갈고리같은게 달려있어요. 이는 네 발을 퇴화시키고 온몸으로 움직이게 한 뱀이 진화의 산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울러서 정상적인 양성 생식이 불가능한 극단의 상황에서 사실상의 자기 복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생체 매커니즘도 갖추고 있다는 걸 ‘호나우두’의 사례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정지섭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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