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남경필 “철창 속 아들이 날 변화시켜… 정치할 때보다 행복하다”

해암도 2024. 1. 15. 06:54

 마약 퇴치 운동 나선 남경필

마약퇴치운동가가 된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국내 마약 범죄에 대해 "단순히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라며 "이번 총선에서 주요 정당들이 마약청 설립 공약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아들이 2년 6개월 형을 확정받았지만 남경필의 얼굴은 밝았다. "비록 감옥에서지만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과 함께하는 스타트업 수익의 일부도 마약 퇴치 운동에 쓰겠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남경필 전 경기지사를 만난 건 지난달 20일, 장남 주성씨가 마약 투약으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확정받은 날이다. 결코 짧은 형기가 아닌데도 아버지 남경필은 “감사하다”고 했다. “이제 사회에서 격리돼 제대로 치료받게 됐으니까요. 아들과 저희 가족이 너무도 원했던 일입니다.” 인터뷰 중 몇 차례 전화가 걸려 왔지만 받지 않았다. “정치권에서 오는 전화는 안 받는다”고 했다. 그는 “정치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했다.

◇아들을 112에 신고한 이유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는데 기뻐하더라.

“마약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자신의 의지로는 끊을 수가 없다. 제 아들도 끊었다 다시 손대기를 반복했다. 이걸 끊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공권력이다. 일단 사회에서 격리돼야만 치료받을 길도 열린다.”

-아들을 제발 구속시켜 달라고 탄원했던데.

“마약을 공급하고 운반하는 중대 범죄와 달리 단순 마약 투약범은 구속영장이 거의 기각된다. 재판을 받아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 자기 몸을 해쳤을 뿐 타인에겐 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집으로 돌아와 마약에 다시 손을 댄다.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옥에서 치료도 받을 수 있게 된 건가.

“현재 안양교도소에 수감돼 있는데 곧 치료감호소가 있는 공주교도소로 옮겨간다. 검사가 치료감호를 청구해줬고 판사가 이를 받아들였다. 정말 감사하다.”

-오늘 재판장에서 아들을 만났겠다.

“피고석의 아들과 눈이 마주쳐서 웃어줬다. 얼굴이 맑았다. 구속된 뒤로 마약을 안 했으니 당연히(웃음). 하루빨리 공주로 호송돼 치료가 시작됐으면 좋겠다.”

-면회 가도 아들을 안아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더라.

“매주 보지만 면회실이 철창으로 막혀 있어 안아줄 순 없다. 대신 사랑한다고, 보고 싶었다고, 넌 잘해낼 거라고 말해준다. 아들이 속으로 ‘야단만 치고 화만 내던 우리 꼰대가 달라졌네?’ 했을 것이다(웃음).”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의 장남 남모 씨가 지난 4월 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앞서 남씨는 지난달 23일에도 같은 혐의로 경찰에 체포 되었으나 법원이 25일 구속영장을 기각해 석방되었다. 2023.4.1/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았다

-경기지사였던 2017년에 처음 장남의 마약 투약 사건이 터졌다.

“독일 출장 중 듣고 급히 귀국했다. 너무 충격적이라 비행기에선 화가 났는데 막상 유치장에 있는 아들을 보자 불쌍하더라. 정치 한다는 핑계로 아이와 제대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당시 집행유예로 풀려났는데 또다시 마약을 투약했다.

“그때의 충격이 더 컸다. 끊은 줄 알았는데 숨어서 몰래 했던 거다. 다시는 안 하겠다고 약속한 아들이었다. 신뢰가 깨지고 지옥의 시간이 시작됐다. 아이를 의심하고, 야단치고, 핍박하고. 분노가 폭언이 되어 나왔다.”

-그래서 또다시 마약을 했을 때 자수하게 한 건가.

“마약을 끊으려면 사회에서 격리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증거물을 가지고 경찰서로 갔다. 모발·소변도 채취해서 제출했다. 그런데 일단 집에 가 있으라고 하더라. 그 사이 아들이 또 손을 댔다. 이번에도 증거물을 가지고 가서 자수하게 했다. 또 집으로 돌려보내더라. 안 되겠다 싶어 아들을 보호자가 동의해야 나올 수 있는 폐쇄 병동에 입원시켰다. “

-그런데 어떻게 다시 마약을 투약한 건가.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는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지난해 3월이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전화를 했다. 형이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병원에 수두가 돌았는데 형이 감염돼 퇴원 조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예상한 대로다. 또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이번엔 구속이 됐다.

“자수는 소용이 없어 아들을 신고했다. 당시 기사엔 ‘검거됐다’고 나오는데 내가 112를 눌러 신고하고 증거물을 가지고 함께 경찰서로 갔다. 신고인도 경찰 조사를 받는데, 저희가 바라는 건 오직 사회에서의 격리라고 간청했다.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았다. 그러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그래픽=김의균
 

◇마약청은 왜 필요한가

-아들은 왜 마약에 손을 댔을까.

“결핍 아니었을까. 영적(靈的), 정신적 결핍.”

-어느 인터뷰에 보니 ‘내가 과거에 지은 죄 때문 아닌가’ 자책 했더라.

“정치하는 아버지를 둬서 그런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른 나이에 유학을 보낸 것도 후회했다. 정치인 아버지의 지역구에 있는 초등학교·중학교에 다니니 두 아들이 무척 힘들어했다. ‘너네 아빠 나쁜 사람이래’ 하는 말에 친구들과 싸우고 돌아오기도 하고. 그래서 유학을 보냈는데….”

-부모의 이혼도 영향을 미쳤을까.

“얘기는 안 하지만, 상처도 받았겠지. 그런데 전처의 이혼 사유가 정치인의 아내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이어서 아이들도 엄마를 자유롭게 살게 해주자는 데 동의했다. ‘그동안 살아줘서 고마웠다’고 서로 맞절하며 헤어졌다.”

-마약이 우리 일상에 아주 가까이 와 있다고 했더라. 친인척 중 한 사람은 마약을 할 거라고도 했다.

“텔레그램 문자 한 통으로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시대다. 척추로 올라가는 신경을 마비시키는 펜타닐처럼 온갖 화학물질을 섞어 더 강력하고, 더 값싼 마약들이 나오고 있다. 가족이 알게 되는 시점은 사회생활이 안 될 만큼 이미 중독된 상태다. 카드빚 독촉장이 날아올 때쯤 알게 되면 상당히 늦은 상황이다.”

-중독성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 걸까.

“마약은 뇌를 자극하고 변형시킨다고 한다. 일단 끊어도 뇌가 기억하고 있어 유혹에 쉽게 굴복당한다. 손가락질이 두려워 가족도 쉬쉬하고, 치료받을 병원도 전국에 한두곳밖에 없다. 마약 상담 기관이 있지만 재정적으로 열악하고 법적 지위도 없다.”

-국가와 교회, 사회 공동체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우리도 별짓 다 해봤다. 의사도 만나고, 치료 기관에도 들어가보고, 아이 데리고 산속 기도원에도 가봤다. 그때뿐이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 다시 손을 댄다. 마약에 취한 아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내 아들이 아니다. 내가 알던 착하고 똑똑한 아이가 아니었다. 혼자 힘으로는 그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약청 설립 얘기도 나온다.

“마약 퇴치는 국가적 어젠다다. 바이든·시진핑 회담의 세 번째 어젠다도 마약이었다. 바이든이 시진핑에게 펜타닐 원료 수출을 단속해 달라 요구했다. 미국의 20~40대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이다. 이 펜타닐이 우리 사회에도 퍼지면 걷잡을 수 없다. 아직 티핑 포인트는 아니라 지금이라도 컨트롤타워를 세워 이를 잡아야 한다. 마약청이 절실한 이유다. 현재 복지부, 식약처 주무관급 업무인 마약을 가져와 검찰·경찰·외교부가 협업하게 해야 한다. 이건 정쟁거리가 될 수 없다.”

남경필은 2014년 경기지사에 취임하자마자 여야의 연정 실험을 주도했다. 야당인 강득구 의원을 부지사로 앉혀 예산권과 인사권을 나눠주는 등 파격적 행보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연정 합의를 마친 여야 정책협상단 및 관계자들이 도지사 집무실에서 기념촬영한 모습. /조선일보DB
 

◇사랑이 변화시킨다

-2018년 경기 지사에 낙선한 이듬해 정계를 은퇴했다. 아들 영향도 있을까.

“낙선하니 아들이 ‘저 때문에 떨어진 거 아니냐’며 미안해하더라. 가슴이 아팠다. 하필 ‘남경필 아들’이라 지은 죄보다 욕은 천배만배로 들은 아이다. 그렇다고 아들 때문에 정치를 그만둔 건 아니다.”

-정치를 그만두기엔 이른 나이였다.

“도지사 시절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연정을 배우겠다고 경기도에 왔다. 내가 야당인 강득구 의원을 부지사로 앉히고 예산권과 인사권을 나눠주며 연정을 실행한 것에 감동하더라. 그런데 이분이 대통령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적폐 청산이었다. 청산과 보복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증오와 팬덤의 정치로 치닫는 정치판에서 내 역할은 없다고 생각했다. 국회의원을 다섯 번 했는데 의원 배지를 한 번 더 다는 게 무슨 소용 있나. 내 꿈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개헌을 단행한 뒤 내각제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겠다는 거였는데, 그런 날은 오지 않겠다 싶어 미련없이 떠났다.”

-청년들과 스타트업을 하더라.

“경기지사 때 스스로를 ‘일자리 도지사’로 명명했다. 판교에 가면 지금도 내가 만든 스타트업 캠퍼스가 남아 있다. 열정과 비즈니스 모델은 있지만 돈과 네트워크가 없는 청년 창업가들을 돕기 위해 만들었는데, 그 일을 이제 개인적으로 하게 된 것이다.”

-스타트업 수익의 일부를 마약 퇴치 운동에 쓴다고 들었다.

“지난 3월 성지순례 때 아들의 마약 소식을 듣고 내가 믿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대체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냐, 몸부림치며 소리소리 질렀다. 그때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 ‘아들은 내게 맡기고 너는 다른 아이들, 마약으로 영혼이 말라가는 아이들을 살려라.’ 마약 퇴치 운동에 뛰어든 이유다.”

-함께하는 분이 많다고.

“배우 차인표씨가 제일 먼저 연락해왔다. 연예계도 마약 문제가 심각한데 같이 힘을 합해 이들을 구원해보자고. KG그룹 곽재선 회장도 전화하셨다. 우리 아들은 마약을 하지 않지만 나중에 손주들이 여럿 생기면 그중 누군가가 안 하리란 보장이 없을 테니 뭐든 돕겠다고. 오륜교회 김은호 목사님은 마약중독자를 구제해온 다르크 공동체가 재정난으로 폐쇄 위기에 처하자 이를 돕겠다고 손을 내미셨다. 마약 치료 전문가인 조성남 국립법무병원 원장님도 함께하신다. 신애라씨가 시작한 ‘야나’ 재단을 벤치마킹해 운동본부를 꾸릴 것이다.”

-아들 주성씨가 법정에서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가족에게 감사한다’고, ‘출소하면 아빠를 도와 마약 치유 운동가로 살겠다’고 했더라.

“나도 놀랐다. 내게 그런 얘길 한 적이 없어서. 실은 아이를 통해 내가 가장 많이 변했다. 잔소리하고 야단만 치던 아빠에서 다정하고 친구 같은 아빠로. 이번 일로 확실하게 깨달은 건, 변화는 사랑이 시킨다는 것이다. 야단은 나의 분함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정치할 때보다 행복한가?

“행복하다. 요즘은 붕붕 날아다닌다, 하하!”

스타트업을 하며 마약 퇴치 운동도 시작한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2023년 12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남경필

1965년 경기 용인 출생. 경복고,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한 뒤 예일대에서 MBA를, 뉴욕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부친인 남평우 의원 사망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33세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5선을 했다. 2014년 경기도 지사에 당선됐지만 2018년 연임에 실패한 뒤 이듬해 정계를 은퇴했다. J&KP 홀딩스 대표로 청년들과 스타트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