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리(이중섭의 별명)군은 그저 편하게 지내면서 제작(製作)을 하는 건 아니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서 안간힘을 다해 제작을 계속하고 있소."
1954년 11월 21일, 개인전을 준비 중이던 서울의 이중섭(李仲燮·1916~1956)은 일본의 아내 남덕(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우직하면서 꿋꿋한 소'는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홀로 예술혼을 불태웠던 이 외로운 화가의 이상적 자아(自我)였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소의 머리 부분을 표현주의적으로 묘사한 이중섭의 '황소'(1953년경·개인 소장)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명화를 만나다-한국 근현대회화 100선' 출품작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으로 꼽혔다.
‘명화를 만나다’ 관람객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102명이 ‘황소’를 1위로 꼽았다. 관람객 박선영(22)씨는 “힘이 느껴진다.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실제로 보니 비로소 알겠다”고 했다. 이중섭 소 그림의 인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또 다른 작품 ‘소’(1953년경·서울미술관 소장)는 98표로 2위를 차지했다. 관객 다섯 중 한 명이 ‘이중섭’ 작품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 셈이다.
이중섭은 생전에 모두 25점의 소 그림(유화)을 그렸고, 전시에 나온 두 점은 통영에 머물던 시기에 그린 것이다. ‘이중섭 평전’을 집필 중인 미술사학자 최열씨는 “‘소’는 이중섭이 동경 유학 중이던 1930년대, 자유미술가협회 전시 출품을 준비하면서부터 몰두한 주제였다. 강한 붓질, 절규하는 듯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눈빛에 깃든 애절함이 관람객의 마음을 끄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연령대별 설문조사에서도 이중섭 소 그림은 단연 인기. 10~60대 모든 연령에서 ‘황소’가 1위, ‘소’가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57표를 얻은 박수근(朴壽根·1914~1965)의 ‘빨래터’(1954). 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을 그린 이 그림은 가로 31㎝, 세로 15㎝의 작은 크기이지만 관람객들의 마음엔 크게 자리했다. 관람객 우현명(64)씨는 “서양화 기법을 모방한 것 같은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뚜렷한 자기 특색이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김환기(金煥基·1913~1974)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는 47표로 4위에 올랐다. 20~30대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3위를 차지한 그림. 뉴욕 체류 중이던 화가는 가로 172㎝, 세로 232㎝의 대형 화면에 푸른 점을 가득 찍어 고향에 대한 무수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작품 제목은 김광섭 시(詩) ‘저녁에’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이 밖에 천경자(千鏡子·89)의 ‘길례언니’(1973)가 5위, 이대원(李大源·1921~2005)의 ‘과수원’(1976)과 김기창(金基昶·1913~2001)의 ‘군작(群雀)’(1959)이 공동 6위, 오지호의(吳之湖·1905~1982) ‘남향집’(1939)과 이인성(李仁星·1912~1950)의 ‘해당화’(1944)가 공동 8위, 김환기의 ‘산월’(1958)이 10위에 자리매김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조선일보가 함께 주최해 지난달 29일 일반 관람이 시작된 이 전시엔 17일까지 모두 18일간(휴관일 제외) 6만2699명의 관람객이 들었다. 하루 평균 약 3500명이 덕수궁을 찾은 셈이다.
- 곽아람
-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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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부 미술담당 기자. 미술관과 화랑의 전시, 미술품 경매, 미..
- 문화부 미술담당 기자. 미술관과 화랑의 전시, 미술품 경매, 미술계 동향 등을 취재한다. 가끔 미술품 관련 대형 비자금 사건이 터질 때면 우아해 '보이는' 미술 기자에서 드세고 험한 '사건 기자'로 변신하기도 한다. 서울대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조선일보에 입사, 사회부·편집부·전국뉴스부·사람들팀 등을 거쳤다. 저서로 그림 에세이 '그림이 그녀에게'(2008), 그림 감상과 독서를 결합시킨 책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2009)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