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좌우명: 不便

해암도 2013. 11. 8. 10:42

 

[개인전 여는 화가 박대성]

6·25 직전 공비에 참수당한 父, 네 살이던 나도 한 팔 잃어
팔 하나니 그림 집중 더 잘 돼… 지혜 주는 건 결국 불편이더라


	화가 박대성 사진
1948년 경북 청도의 한 한약방. 한밤중에 약방 문이 드르륵 열렸다. 수상한 사내들이 침입했다. 약방 주인은 졸지에 그들의 칼에 참수당했고, 아버지와 함께 자던 네 살짜리 아들은 왼쪽 팔을 잘렸다. "6·25 직전, 공비(共匪)가 종종 출몰하곤 했어요. 한약방을 하는 아버지는 소위 '부르주아'였고, 형님 중 한 분은 반공청년단장이었어요. 우리 집이 그들의 표적이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요."

화가 박대성(68·사진)이 덤덤하게 말했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읜 그는 졸지에 고아가 됐다. '외팔이' 소년에게 세상은 친절하지 않았다. 마을에서는 아이들의 놀림감이 됐고, 낯선 동네에선 돌팔매질을 당했다. 외로운 소년은 사람 말고 다른 뭔가가 필요했다. "우리 집이 종가(宗家)라 한 달에 한두 번씩 제사가 있었어요. 그때마다 제사상 앞에 병풍을 쳤죠. 저는 대여섯 살 때부터 그 병풍 그림을 따라 그렸어요. 집안 어른들이 '재주 있다' 칭찬했죠. 그래서 그림에 몰두했어요. 제게 유일한 소일거리였어요."

그는 혼자 그림을 공부했다. 중학교 졸업이 그의 최종 학력이다. 병풍 보고 그린 그림 실력으로 1969년부터 수차례 국전(國展)에 입선했고,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1989년부터는 경주로 내려가 칩거하며 고즈넉한 경주 풍광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신라시대 분황사 석탑을 그린 박대성의 2013년작 ‘분황사 탑’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신라시대 분황사 석탑을 그린 박대성의 2013년작 ‘분황사 탑’. /가나아트센터 제공
24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박대성 개인전 '원융(圓融)'에 그의 그림 50여점이 나온다. 대부분이 가로·세로 2m를 훌쩍 넘는 대작(大作)이다. 가로 8m짜리 화폭에 설송(雪松)과 함께 눈 내린 불국사 풍경을 그린 '불국설경'(2013)에서는 고요히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산줄기와 바위, 그 틈의 불상(佛像)을 그린 '남산'(2010)은 경주 남산의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표현했다.

"채색을 최소한으로 하고, 우리 그림의 본령인 수묵(水墨)으로 돌아가려 했다. 색을 많이 쓰면 편하지만, 결국 인간에게 지혜를 열어주는 건 불편함이더라." 팔 하나가 오히려 집중이 잘돼 그림 그리기 좋다는 이 화가의 좌우명은 '불편(不便)'이다. (02)720-1020

 

곽아람 기자 조선  2013.11.05 2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