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데트
<면역>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어떤 사람은 독감 정도로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데 어떤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는 걸 보면서 ‘면역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비타민과 영양제들이 어찌나 많은지, 이름을 다 외우지도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면역학 박사들에게 물어보면 ‘면역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정 비타민이나 영양제를 먹어서 효과를 봤다는 사람도 주위에 없지 않은데, 뭐가 맞는 말일까?
필립 데트머의 <면역>은 이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게 면역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해준다.
<면역>은 필립 데트머가 10여분짜리 비디오로 담아낼 수 없는 좀 더 상세한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쓴 책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가 없지는 않지만, 비유를 사용해 설명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다. 녹슨 못에 찔렸을 때 곧바로 상처 부위에 몰려가서 감염을 막아주는 선천면역과, 바이러스 같은 항원이 몸에 들어왔을 때 항체를 생성하는 후천면역을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면역체계가 얼마나 다양한 메커니즘이 협력하여 만드는 ‘활성화’와 ‘억제’의 섬세한 균형에 의존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책의 설명을 따라가면, 코로나19 중환자에게 나타난다는 ‘사이토카인 폭풍’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이토카인은 면역체계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단백질로, 더 많은 사이토카인이 분비될수록 더 많은 항원이 몸속에 있다고 인식하고 면역체계가 더 강하게 대응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터페론 분비를 늦추어 바이러스의 증식은 빠르게 유지하지만 사이토카인의 생성은 늦추지 않아서, 사이토카인이 체내에서 급격하게 증가하고, 그 결과로 ‘활성화’와 ‘억제’의 균형이 깨진다.
지나치게 활성화된 면역반응은 감염에 시달리고 있는 체내의 장기들에 손상을 가져온다. 코로나19 감염의 경우, 이 과정에서 혈전이 만들어져 뇌졸중이나 심장마비 등 혈전이 혈관을 막아서 일어날 수 있는 질병의 위험도 높아진다.
면역체계는 균형이 잡혀 있을 때 가장 잘 기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영양소를 다량으로 섭취하기보다 다양한 영양소가 든 끼니를 먹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해서 체내 순환을 증진시키는 게 도움이 된다.
흡연은 세포의 재생산 메커니즘에 손상을 입히므로 금연하고, 지방세포는 몸속에 사이토카인을 분비하여 염증을 일으키므로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는 게 좋다.
스트레스는 코티졸 분비를 촉진하므로 주기적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주어야 한다. 이 당연한 말들이,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면역체계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 읽다보면 몸속 깊은 면역세포에 와닿는 듯하다.
정은진 샌프란시스코대학 부교수 입력 2021.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