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대통령과 국민의 대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국민과의 대화' 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TV로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라고 당부했습니다.
“한국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방, 문화, 보건, 의료, 방역,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이제 톱텐(Top 10)의 나라가 됐다. G7 국가들이 세계적 과제를 논의하는 데 G7만으로는 부족하고, 더 넓힐 필요가 있다고 해서 G10을 구성하는 경우 가장 먼저 대상이 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자부심을 가져주십사 말씀드린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이런 말을 하면 자화자찬이다, 국민 삶이 어려운데 무슨 소리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이건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세계의 객관적 평가다.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런 자부심이 우리가 미래에 발전할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고 부연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자부심’ 주문 또는 자랑은 그동안 계속 있었습니다. 그중 최근 몇 개월 동안의 것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K-조선의 자부심과 국제 경쟁력이 양국 간 에너지 및 조선, 플랜트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11월 15일 거제도에서 열린 모잠비크로 가는 FLNG(부유식 해양 LNG 액화 플랜트) 출항 명명식.
·“나는 우리 군을 신뢰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신뢰와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반도 종전선언과 화해,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국제 사회에 제안했다.”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식.
·“대한민국 국격과 위상, 문화의 힘이 이렇게 커져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기에 충분한 일이다.” -9월 23일 문재인 대통령과 방탄소년단(BTS)이 유엔 초청 연설을 한 데 대해.
· “플랫폼 사업자의 의무를 세계 최초로 법률로 규정한 것으로 국제 규범으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 ‘구글 인 앱 결제방지법’의 국회 통과에 대한 9월 2일의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국제 사회는 경제와 방역, 민주주의와 문화예술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대한민국이 보여주는 역량과 성취에 놀라고 있다. 우리는 지난날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꿈을 꿀 차례다.”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
·“이제 대한민국은 당당한 선진국이라는 긍지 속에 책임과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선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계속 전진할 것이다. 국민도 피와 땀으로 이룬 성과라는 자부심을 가져 달라.” -7월 6일 국무회의에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그룹으로 변경한 것과 관련해.
주요 계기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자부심’ 얘기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안산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3관왕이 됐을 때는 ‘안산의 자부심이 우리의 자부심이다’고 축전을 보냈고, 국가대표 여자 배구팀이 올림픽에서 4강에 들었을 때는 ‘원팀의 힘으로 세계 강호들과 대등하게 맞섰고, 매 경기 모든 걸 쏟아내는 모습에 모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썼습니다.
BTS가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랐을 때는 ‘K팝의 자부심을 드높이는 쾌거’라고 트위터에 축하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이쯤 되면 문 대통령의 자부심에 대한 생각은 ‘진심’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요, 어제 문 대통령 스스로 예견했듯이 ‘자화자찬’이라는 비판이 이어집니다.
자부심은 누가 자꾸 가지라고 해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 각자가 삶 속에서 느껴야 합니다. 대통령이 끊임없이 자부심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 앞에 긍지와 자존감을 느끼기 어려운 현실이 놓여 있다는 것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자부심 주문에 오히려 자괴감이 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자살률이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습니다. 최근 통계청의 사회조사에서 ‘사회를 믿을 수 없다’는 선택지를 고른 20대 응답자가 52%였습니다. 청년 체감실업률이 25%를 웃돕니다. 결코 자랑스러운 나라의 모습이 아닙니다. 자부심을 가지라는 대통령의 말이 많은 사람에게 공허하게 들립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Pride and Prejudice’의 한국어 번역본에 통상 ‘오만과 편견’이라는 제목이 달립니다. ‘자부심과 편견’으로 풀이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자부심과 오만은 한 끗 차이입니다. 자존감의 근거가 빈약할 때 억지스러운 잘난 체가 나오기도 합니다.
어제의 ‘국민과의 대화’를 요약해 전하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도 전합니다.
이상언의 '더 모닝' lee.sangeon@joongang.co.kr 202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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