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애널리스트 27년
시각장애인 신순규씨
9세때 실명, 15세때 美유학
피아니스트·의사의 길 걷다
채권 애널리스트로 진로바꿔
5년간 매일경제에 칼럼 연재
에세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 출간
아홉 살 꼬마 때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열다섯 나이에는 혼자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피아니스트에서 의사의 길을 걷다가 월가 애널리스트로 20여 년간 일해 온 신순규 씨(54·사진) 얘기다. 최근 에세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판미동 펴냄)을 출간한 그는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모국을 찾았다.
2주간 자가격리한 끝에 14일 서울 신사동 민음사에서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대한민국은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첫사랑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질이나 극단적인 사건들을 볼 때마다 이런 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나름의 고민을 담아 책을 집필했어요."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이후 5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에세이다. 책에는 팬데믹 시대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가치가 따뜻하게 배어 있다. 그가 주식이 아닌 채권 애널리스트이기 때문일까. 견고함은 투자에서나 삶에서나 그가 일순위로 꼽는 핵심 가치다. 달리 말하면 어떤 상황이 오든 살아남는 능력이 견고함이다.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MIT에서는 경영학과 조직학을 공부한 그는 JP모건에서 근무한 뒤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에서 의료 분야 채권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지능·실력·돈보다 더 필요한 것이 견고함이에요. 말은 쉽지만 실천이 훨씬 어렵죠. 결혼 생활에서 사랑이라는 것을 유지하는 것이 감정이 아닌 선택이듯이. 견고한 삶의 가치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역시 장애인으로 수많은 장애물을 건너야 했다. 작게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기 전 뉴저지에서 맨해튼 다운타운까지 기차 두 번과 지하철을 한 번 타야 했다. 출퇴근길에 여섯 번이나 자리를 찾아야 했다는 얘기다. 장애로 인해 불편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나를 연약하게 하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위기를 헤쳐나갔다.
"견고한 것이 강하고 단단한 정신력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꾸준해야 하고 유연성이 있어야 하죠. 또 나를 무너뜨릴 만한 바람을 만나야만 견고하게 세상을 살아갈 정신력의 근육을 만들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전혀 보지 못하는 그는 감정으로 색깔을 인식한다. "제가 좀 속상하거나 희망이 없다고 느꼈을 때는 회색의 세상이 펼쳐지고 아들이랑 같이 놀 때는 아주 밝은 빛이 빛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저마다 빛깔이 있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청년들의 고된 현실로 이어졌다. "아들에게도 말하지만 통계에 따라가거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에 따라가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자신이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창의력 있게 답을 찾아가는 건 어떨까요."
2030 비트코인 열풍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비트코인 자산이 얼마인지 근거가 없기에 도박에 가깝다"며 "지금 현실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런 것에 희망을 거는데 자신의 모든 것 혹은 삶의 의미를 건다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위험하다"고 경계했다.
월가에서 롱런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회사가 비상장 개인회사라 장기 비전을 추구하고 외부 압력이 작아요. 개인 성과가 적을 때는 보너스가 없을 때가 많죠. 보너스가 없다는 얘기는 회사에서 필요하지 않은 인재라는 말입니다. 그럴 때 뛰쳐나가고 싶다가도 참아요. 여기서 커리어를 마칠 것 같아요."
그는 지난 4월 백신을 모두 접종했다. 의료 전문 애널리스트인 그는 코로나19 상황을 어떻게 전망할까. "코로나19 사망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방역은 미국에 비해서 너무 훌륭합니다. 앞으로도 매년 독감 주사를 맞듯이 백신을 맞으며 계속 견뎌내야 할 것 같아요. 늦어도 2023년에는 끝나지 않을까 싶어요."
2016년부터 5년간 매일경제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 필진이었던 그의 글은 솔직하면서도 따뜻하다. "무엇보다 나에게 의미 있고,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싶어요. 남을 의식해서 나의 진실됨을 포기하는 것처럼 슬프고 헛된 일은 없을 테니까."
이향휘 scent200@mk.co.kr 매일경제 입력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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