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권경애 “文 파시즘 이기는 길? 기죽지 않고 열심히 떠드는 것!”

해암도 2021. 7. 17. 08:24

‘조국 흑서’ 이어 ‘무법의 시간’ 쓴 권경애 법무법인 해미르 변호사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권경애 변호사의 책상에는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등 파시즘 관련 책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권 변호사는 문 정권을 파시즘에 비유해 쓴 자신의 책 ‘무법의 시간’에 대해 “조국 전 장관의 책 ‘조국의 시간'을 고려해서 쓴 건 아니었다. 전작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이 있어 집필을 시작했다. 처음엔 ‘독재의 풍경'이 가제였는데, 2019년부터 2020년까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제목이 ‘무법의 시간'이라고 생각해, 이 제목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문재인 대통령님. 조국 후보자를 놓아주십시오. 가족들 곁에서 돌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지지자들을 지는 싸움에 내몰지 말아 주십시오. 조국 후보자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2019년 9월 7일, 권경애(56) 법무법인 해미르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가 끝난 직후였다. 그는 조국 전 장관을 지키고 싶었던 지지자이자, 조국이 민정수석 시절 마련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적극 찬성한 사람이었다.

 

이는 그의 일생과도 상통한다. 대학 시절 운동권에 몸담았던 권 변호사는 1983년에 들어간 연세대 국문학과에서 제적당했다가, 12년 만에 재등록이 허용돼 졸업장을 받는다. 200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일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쌀 협상 이면 합의 의혹 국정조사위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본 등에서 활동했다.

 

이른바 ‘운동권 출신 민변 변호사'로 우리 사회의 굵직한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진보 진영의 목소리를 내온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있어서도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

 

권 변호사의 책 ‘무법의 시간'에 따르면 조국도 이런 사실을 알았다. 수석 시절 권 변호사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로 직접 연락을 해왔다. 권 변호사는 최근 낸 자신의 책 ‘무법의 시간’에서 조 전 수석이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문 대통령의 뜻을 관철시켜야 하는 민정수석실로서는 검찰 개혁의 든든한 우군이던 진보 진영 인사들의 비판이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페이스북에서 혼자 열심히 정부 여당 측의 검경수사권 조정안과 공수처법의 설계도를 친절히 설명하고 반대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던 나는 그들에게 때마침 나타난 뜻밖의 쓸모 있는 응원군이었던 것이다.” <무법의 시간 27쪽>

 

이 ‘쓸모 있는 응원군’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적진의 장수’가 돼 나타난다. 그것도 아주 잘 벼린 칼을 든. 지난해 ‘조국흑서’라 불리는 책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서민 단국대 교수·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강양구 TBS과학전문기자와 공동 집필했고, 지난 5일에는 ‘조국의 시간은 무법의 시간이었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책 ‘무법의 시간’을 내놓았다. 과연 이 시간은 어떠했길래, 한 사람을 이렇게 바꿔 놓은 것일까.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권 변호사를 만났다. 책 출간 이후 며칠간 잠을 설쳤다고 했다. “책이 너무 재밌어서 2시간 만에 완독했다”고 인사를 건네니, 긴장했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돌았다. 오래 운동권에서 일한 언니 같은 느낌이었다.

 

◇중·동은 가도 조선은 못 갔는데

 

−‘중·동(중앙·동아)은 가도 조선까지는 못 갔다’고 페이스북에 쓰셨던데. 인터뷰에 응해줘 감사하다.

“사실 ‘안티조선’ 운동이 격렬했을 때는 사시 준비하거나 연수원에 있어서 잘 몰랐다. 그냥 ‘주변에서 하니까 나도 참여해야지’ 하면서 조선일보는 안 봤다. 원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들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궁금한 내용들이 하나도 안 나오는 거다. 거기서 하는 얘기만 믿을 수가 없겠단 생각이 들어서 조·중·동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진영적 사고가 안 좋다고 얘기하면서, 어느새 나도 거기에 굉장히 강박적으로 갇혀 있었던 것이다.”

 

−1983년에 입학해, 1995년에 졸업했다. 12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 때는 운동권 학생들은 대학교 졸업장을 가지면 기득권에 편입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4학년 올라가면 선택해야 한다. 대학 졸업장 포기하고 노동운동을 하거나, 도서관 창문 깨고, 종로에 삐라 뿌려 ‘빵(교도소)’을 가거나. 데모 주동해서 빵에 가면 엄마가 쓰러지실 것 같더라. 매번 ‘민중’ 얘기하는데 그 민중이 도대체 뭔지, 왜 노동자가 혁명의 주역이라고 하는지 직접 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노동 현장에 들어갔고, 미등록 제적이 됐다.” 이 기간 권경애는 전화기 부품 공장, 과자 공장 등에서 일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법조인의 길을 택했다.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려면 졸업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소규모 보습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졸업장이 없으면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뭐든 자격증이 필요할 것 같아 공인중개사 시험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친구가 이왕이면 민법이 똑같이 들어가니 사시를 하라고 하더라. 우연히 들었던 법대 강의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권 변호사의 책 ‘무법의 시간' 곳곳에는 책을 쓰기까지의 고뇌와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서문을 보면 20대 딸이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써야 하느냐. 무섭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권 변호사는 “딸에게 주변에는 이 책 쓴 사람이 엄마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며 웃었다.

 

−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거짓말과 조작이 난무하는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최대한 생생하고 자세하게 써야, 사람들이 이를 알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여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힘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글을 쓰다 힘들 때 금태섭 의원을 만났더니 ‘힘들어도 쓰시라. 기록으로 남겨서 후대에 알려야 한다’고 하더라. 이 책을 쓰면서 놀라웠던 게, 조국 사태 당시 서초동 집회에 대해선 논문 하나가 없다. 2008년 광화문 집회 때는 얼마나 많은 논문이 나왔나. 사회학·정치학·철학에서 대담도 많이 하고, 계간지에서도 앞다퉈 이를 분석하는 글을 실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침묵한다. ‘내가 보기엔 이런데, 맞니?’라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의 금기를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본다.”

 

“서초동 집회는 우리 사회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상식을 거슬렀다. 일반인은 감히 그렇게 살지 못했다. 대부분의 대중은 스펙 품앗이를 할 네트워크에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함부로 표창장을 위조하고 인턴 활동 확인서를 위조하면서까지 스펙을 부풀리지는 못했다. (중략) 그런데 어떻게 열정 가득한 대규모 인파가 운집해 검찰을 조롱하고 조국 일가를 수호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167~168쪽>

 

−왜 다들 침묵한다고 생각하나.

“2008년 촛불 집회 당시 대담집에 나왔던 사람들이 이번엔 다 이쪽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겨우 빠져나온 게 진중권 교수나 김경율 회계사 정도. 할 사람이 없기도 하거니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두려운 것이다. 내 페북에 그동안 ‘좋아요’ 눌렀던 사람들이 눈치 보여서 못 누른다고 하더라. 동문회 카톡에서는 나와 관련한 기사나 얘기는 올리지 말라는 말이 나왔단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찍히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이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도 필진으로 참여했다.

“당시 딸아이가 서초동 집회 장면을 보면서 ‘이게 나만 이상한 거야?’하고 물었다. 젊은 세대 입장에선 서초동 집회나 조국 사태를 보면서, 공정과 정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얘기해주는 어른 몇 명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집필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엔 많이 무섭기도 했는데, 진중권 교수님을 비롯해 여러 필진이 함께 참여한다고 해서 용기를 냈다.”

 

−5명의 필진과는 어떻게 지내나.

“단톡방에서 사안이 있으면 서로 얘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각자 분야가 다른 분들이니, 자주 모이지는 않지만 잘 지내고 있다.”

 

지난해 5월 좌담을 위해 모인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필자들. 왼쪽부터 진중권 전 교수, 김경율 회계사, 서민 교수, 강양구 기자, 권경애 변호사. 이 책을 펴낸 ‘천년의 상상' 선완규 대표는 “평소 다섯 분을 페이스북에서 보고 필진으로 모시게 됐다”며 “권경애 변호사는 진중권 교수님이 ‘같이하면 좋을 것 같으니, 꼭 만나서 이야기해보라’고 한 필자”라고 했다. 다섯 저자는 북 콘서트와 한 차례 저녁 식사 이후에는 같이하는 활동은 따로 없었다고 한다. /’천년의 상상’ 출판사

 

 

◇문 정권은 파시즘의 길을 걷고 있다

 

“자신의 집단이 희생자라는 믿음. 내부의 적이건 외부의 적이건 모든 적에 대해 법률적, 도덕적으로 한계가 없이 어떤 행동도 정당화하는 정서. 필요한 경우 배제적 폭력이라도 동원해 공동체를 더 깨끗하게 더 긴밀히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 지도자의 본능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성보다 우월하다는 믿음. (중략)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집권 여당과 지지자들의 행태를 로버트 O. 팩스턴이 열거한 위 파시즘의 징표들 대부분이 그대로 설명하고 있었다.” <171쪽>

 

−‘무법의 시간’에서는 문 정권과 그 지지자들의 심리적 결속과 권력적 열정을 ‘파시즘’으로 규정한다. 과거 보수 정권도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다. 왜 지금이 파시즘인가.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작성한 좌파 100인 명단에 내가 있다고 한다. 그건 명백한 불법 사찰이다. 국가 기관이 법을 위반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에 음지에서 한 것이다. 지금은 그 양상이 전혀 다르다. 검찰을 악마로 몰아가서, 대중들의 공분을 사게 하고, 대중이 직접 공격에 나서게 한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 울산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한 수사 등 정부에 대한 수사는 ‘쿠데타'라는 프레임을 짠다. 본인들의 불법을 수사하려는 공권력을 악화시키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증들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배신자라고 공격한다. 대중들의 힘에 의해서 본인들의 불법을 수호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형태의 권력이다.”

 

−검찰이 잘못한 일도 많지 않나.

“당연히 검찰도 잘못한 것 많고, 과도한 권한을 가진 것도 맞는다. 그렇다고 검찰을 자신의 권한을 완전히 박탈당할 정도로, 거의 축출당하는 형태로 망가뜨려야 하는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나치즘이 뿌리내리는 방식과 굉장히 닮았다.”

 

−‘문 정권이 진짜 파시즘이었다면 지금쯤 (정부를 비판한) 권 변호사는 수용소에서 교화 노동을 하고 있을 것’ 등의 비판이 나온다.

“독일에서도 히틀러 집권 초기에는 교화 활동이나 수용소가 광범위하지 않았다. 1933년 당시 부임한 지 두 달이 안 된 독일 주재 미국 대사의 딸이 자국 특파원에게서 게슈타포(독일 나치 정권하의 정치 경찰) 이야기를 들어도 믿지를 않는다.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지속하는 건강한 나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파시즘 정권이 초기부터 폭력적이고, 야만적이지 않다. 점점 더 진화해 나가는 것이다. 이 정권이 다음에 재집권해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도 사이버상에서는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대깨문들의 좌표 찍기는 폭력이 아닌가? 우리 사무실에도 ‘권경애 변호사 못 하게 하겠다’며 폭언 전화가 폭주해 이틀 동안 업무가 마비된 일이 있었다. 실제 변호사업을 못 하게 만든 것이다.”

 

권 변호사는 “20대들이 나중에 2019년과 2020년을 돌아봤을 때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그걸 이해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내 책이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후회 안 해? 주변에서 항상 내게 물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해 검찰 압수수색 당일까지도 ‘지지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입장이 변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수사를 건드렸다는 점이다. 조국 후보자가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진위 여부는 수사를 통해서 밝혀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 수사에서 문제가 없다고 하면 그만큼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조국이 동양대 표창장 논란 당시 최성해 총장에게 전화했고, 김오수 당시 법무부 차관(현 검찰총장)과 이성윤 당시 검찰국장(현 서울고검장)은 윤석열 총장을 배제한 특별 수사팀을 제안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건 도를 넘은 것이다. 우리가 검찰 개혁을 왜 하려고 했나? 외압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검찰을 만들겠다고 시작한 게 검찰 개혁이다. 그런데 본인들이 검찰을 건드리고 수사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 정부의 검찰 개혁은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수처와 검찰 개혁,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공수처는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수처 TF 활동을 하면서도 공수처가 불안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공수처 검사의 임기가 3년이다. 연임해서 9년까지 가능하다. 얼마든지 정권에 위해가 될 수 있는 수사처 검사는 재임용을 안 하거나 쫓아낼 수 있다. 독일 게슈타포도 초반에는 권한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인원도 적었다. 점점 더 권력이 강화된 것이다. 공수처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람들이 슬슬 ‘공수처가 인원도 부족하고, 인원을 충원해서 제대로 된 검찰 비리 수사해야 한다’와 같은 얘기를 한다.”

 

−검경 수사권은?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복구해야 한다고 본다. 경찰이 검찰 수사지휘권에서 벗어나고, 실무 행태가 대단히 무책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나도 경험한 바가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TF에서 활동할 때는 정부 여당 측 입장(수사지휘권 폐지)을 옹호하지 않았나.

“그때도 검찰이 경찰에 보완 수사 요청이나 재수사를 요청할 때, 경찰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법 개정안에 검찰의 제한적인 수사지휘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결국엔 그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파시즘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은 뭐라고 보나.

“기죽지 말아야 한다. 귀찮다고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에게 사이버 테러를 가해서 경기장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행태에 지지 말아야 한다. 조국흑서가 나왔을 때, 기죽지 않고 열심히 떠드니까 같이 얘기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파시즘적인 난동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 결국 한 사회의 민주주의의 수준은 개별 시민들의 행위의 총합 아닌가.”

 

−정부와 반대되는 입장의 글을 쓰면서, 대학 입학 이후 맺은 대부분의 인간관계와 매일매일 이별해야 했다고 썼다. 서운한 마음이 들거나, 일련의 선택들을 후회하지는 않나.

“이 질문이 사실 내겐 낯선 질문이 아니다. 내 주변에는 항상 ‘후회하지 않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30년 전 운동을 했을 때도 주변에서 ‘너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은 데 취직해서 이층 집에서 살 텐데. 후회 안 해?’라고 물었다. 나는 정직한 게 좋다. 내 자신이 스스로를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이 가장 편안하다. 물질적인 궁핍함이나 사회적인 고립을 초래하더라도, 내가 나한테 부끄러우면 결국 안 되는 것 같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처음으로 1시간 정도 ‘내가 좀 비겁해질까’ 생각해봤다. 너무 가까운 사람들한테 등을 돌려야 하니까···. 그런데 그 짧은 1시간 동안 몸이 너무 아프더라. ‘이 나쁜 놈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희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이러니까 편해지더라. 아, 결국 내 성질로는 편안하게는 못 사는 거다(웃음).”

 

권 변호사는 고양이 보리·체리를 키우는 집사다. 지난해 보리를 입양했는데, 외로워 보여 최근 체리를 데려왔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웃 주민 몰래 길냥이 밥을 주다 걸린 일화도 써 놓았다. 권 변호사는 “원래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데, 고양이를 키우다 보니 동물이 다 예뻐 보인다”고 했다.

 

−국문학도였는데.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책은 무엇인가.

“흑인 여성으로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의 ‘러브’. 흑인 여성들이 60~70년대 미국에서 인권 운동을 하는 얘기인데, 인권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또 고통을 당한다. 이게 당시 우리 운동권 여성들이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사실 굉장히 아픈 얘기인데 이를 마치 음악이 흐르는 느낌으로 너무 유려하게 썼다. 토니 모리슨만큼 아름다운 글을 쓰는 작가와 작품은 여태껏 없었던 것 같다.”

 

−딸에게 어떤 엄마이고 싶나.

“어떤 엄마는 없다. 그냥 같이 있을 땐 평소 보통의 엄마다. 친구 같은!”

 

 

남정미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