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람답게 살고 싶으면 정말 외과의사 하지 마라

해암도 2021. 7. 11. 08:43

《하지마라 외과의사》 펴낸 엄윤 클린성모외과 원장

‘사람 살린다’는 사명감에 시작… 얻은 건 빚과 인내심뿐

드라마 속 의사 환상 깨기 위해 집필
⊙ “속뜻 없다, 사람답게 살고 싶으면 정말 외과의사 하지 마라”
⊙ 심각한 저수가 탓, 3.5분당 환자 1명 봐야 그나마 먹고살아

엄윤 원장은 최근 출간한 《하지마라 외과의사》에서 외과의사의 현실을 노골적으로 짚었다.

  

다소 세속적인 시나리오를 써본다. 선 자리가 들어왔다.
 
  “뭐 하는 사람이야?”
 
  “응, 외과 개원의(開院醫). ○○의대 졸업하고 ○○병원에 있다가 얼마 전 조그만 개인병원 하나 차렸대.” 화면 전환. 여기서부터 여자의 상상이다. (이미 결혼식까지 치름) 바쁜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싼 여자. 강남의 한 주상복합으로 걸음을 옮긴다. 통유리로 된 건물이라 눈이 부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자동문 너머로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보인다. 유니폼을 차려입은 미모의 여성이 말한다.
 
  “아, 사모님~ 원장님 찾아오셨어요? 지금 수술 중이시라, 잠깐 기다려주시겠어요?”
 
  라운지에 마련된 ‘킨포크’ 스타일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는 여자. 럭셔리 잡지를 하나 집어 페이지를 넘기는데…. 그때, 누군가 잡지 속에서 튀어나와 절규하듯 외친다.
 
  “그만! 그만 상상하라고! 그거 다 뻥이야!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엄윤(嚴潤·50) 원장은 7년 차 외과 개원의다. 최근 출간한 《하지마라 외과의사》에서 ‘이 바닥’ 현실을 노골적으로 짚었다. ‘속뜻’ 같은 건 없다. 반어법도 아니고, 반면교사를 노린 것도 아니다. 장장 400페이지에 걸쳐 꾸준히 ‘제발 하지 마라’고 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진상 환자 폭로전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솔직한 의사는 본 적이 없다. 그의 병원을 찾아가봤다. 서울 은평구. 다소 오래돼 보이는 빨간 벽돌 건물의 3층. 의사 1명, 간호조무사 2명의 규모. 그곳엔 통유리도, 멋들어진 소파도, 대기 환자도 없었다.
 
  ― 환자가 끊기면 어떡하려고 그런 책을 썼습니까.
 
  “끊기나 안 끊기나 어차피 환자가 없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의사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접하잖아요. 〈종합병원〉 〈의가형제〉 〈슬기로운 의사생활〉. 환상을 심어주기 딱 좋은 스토리죠. 현실을 집어주자 싶었습니다.”
 
  ― 책 출간 후 병원 수입의 변화는 없습니까. 타격이랄지, 혹은 의외로 환자가 늘었다든지.
 
  “똑같아요. 책도 많이 안 팔렸거든요.”
 
  ― 병원은 흑자입니까.
 
  “개원 직후 2015~2017년까지는 마이너스였어요. 개원할 때 빚을 져 매달 이자는 나가고, 직원 급여 줄 만큼도 못 벌어서 내 돈으로 메웠는데, 지금은 겨우 ‘똔똔’이 됐어요. 빚은 얼추 갚았지만 매달 월세 660만원을 내기 때문에 남는 건 없고, 그냥 먹고사는 정도죠.”
 
  ― ‘그냥 먹고사는 정도’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데요.
 
  “사람들은 의사라면 돈을 잘 벌 거라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아마 기자보다 못 벌 때가 훨씬 많을 겁니다.”
 
  ― 설마요.
 
  “적어도 또박또박 월급은 받잖아요? 계획을 세울 수는 있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 거의 아내가 번 돈으로 살고 있습니다. 환자 중에서도 간혹 ‘원장님은 많이 버니까 진료비 정도 깎아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많이 벌긴요. 전혀요.”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녜요”
 
  ― 의료비 깎아달라는 환자가 실존하는군요.
 
  “물론 비율은 아주 낮습니다. 전체 환자의 1%도 안 돼요. 대부분은 진료 잘 받고 완쾌해서 서로서로 고마워하죠.”
 
  ― 깎아달라는 환자에게는 뭐라고 합니까.
 
  “‘설령 많이 번다고 해도 환자분께 제가 왜 그래야 하지요?’ 합니다.”
 
  ― 거침없네요.
 
  “의료비를 깎아주면 ‘환자 유인 행위’라고 벌금을 뭅니다만, 그걸 떠나서요. 의사가 다른 직군보다 좀 더 인내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성인군자랄지 천사는 아니거든요. 서로 존중하는 게 가장 좋겠죠.”
 
  책에는 진땀 빼는 환자와의 에피소드가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우선 ‘증상’ 빼고 다 얘기하는 환자. 의사를 붙잡고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 유형이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한약도 많이 먹고 했는디, 어린 나이에 학교도 제대로 못 댕기고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애 낳고 살다 봉께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이 고생고생하고 애들 셋을 키우고 했는디, 이 남편이라는 인간이 읍내 다방×하고 바람을 피워가지고 집안 살림 다 들어먹어 불고 몇 년간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어느 날 애 하나 데리고 나타나서는 지 새끼라고….”
 
  이건 애교다. 진료비를 못 내겠다고 버티는 이도 있다.
 
  “용종을 떼는데 돈을 받아? 아, 몰라. 난 돈 못 내. 용종을 다시 붙이든가 해!”
 
  그런가 하면 환자가 위독할 땐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수술 다 하고 나서 나타나 수술 부위를 하나하나 트집 잡으며 배상금을 뜯어내려는 보호자도 있다.
 
  ― 이런 환자들을 대하는 노하우는 뭡니까.
 
  “노하우를 알았으면 병원이 좀 더 잘됐겠지요.”
 
  ―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가장 난감한 환자는 어떤 이입니까.
 
  “의사 말을 안 믿는 환자입니다. 15분 정도 인터넷 검색을 해본 후 십몇 년 공부한 의사와 ‘맞짱’을 뜨려는 분들이요. 제발 의학적 지식으로 의사 이기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훨씬 더 많이 아니까요.”
 
  ― ‘이기려는 환자’라. 예를 들면요.
 
  “맹장염을 예로 들어봅시다. 간단한 수술로 알려져 있죠. 물론 수술은 간단해요. 그러나 진단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나오는 건 ‘전형적인 증상’이고요, 실제 전형적 증상은 50%밖에 안 돼요. 진단법은 크게 세 가지예요. 초음파는 진단율이 70%고요, 의사가 만져서 진단하면 85%입니다. 그리고 CT를 찍으면 95~100%예요. 그래서 요즘은 다 CT를 찍죠. CT를 찍으면 맹장이 아니더라도, 왜 아픈지까지도 알 수 있어요. 환자한테 ‘CT를 한번 찍어봅시다’ 하면 ‘아니, 맹장염은 간단한 거 아녜요? 꼭 CT를 찍어봐야 알아요?’ 하는 식이죠.”
 
 
  3.5분마다 환자 1명 봐야
 
  ― 그런데 환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요. 당장 저만 해도 진료받으러 가서 유쾌했던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불친절한 의사들 때문에요.
 
  “좋은 지적 하셨습니다. 음… 서로 조금씩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에요. 다만 변명을 조금 하자면, 환자 입장에서는 아픈 것이 일종의 ‘사건’이지만, 의사들은 그게 일상입니다. 매일 아픈 사람을 보는 거예요. 심각성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낮아지는 거죠.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예를 들어 내과의사가 개원을 했어요. 집에다 조금이라도 벌어다 주려면 하루에 몇 명의 환자를 봐야 할까요? 150명이에요. 그러면 월 1000만원 될까 말까 해요. 9시간 근무로 치면 3.5분마다 1명의 환자를 봐야 하는 겁니다. 점심 거르고, 화장실 안 가고요. 3.5분마다 들어오는 150명의 환자에게 매일 같은 얘기를 하는 거죠. 기계적인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죠. 그중 심각한 환자? 당연히 있을 수 있죠. 그럴 때에는 의사가 먼저 판단을 하고 조치합니다.”
 
  ― 3.5분마다 1명을 봐야 먹고사는 구조는 왜 그런 겁니까.
 
  “저(低)수가 때문이죠. 우리나라 의료비는 원가의 70%라고 보면 돼요. 출산 비용이 강아지 분만 비용보다 싸죠. 미국 사는 지인은 대장내시경 받을 때마다 비행기 타고 저한테 옵니다. 그 지역에선 대장내시경을 한다고 하면 병원이 발칵 뒤집힌답니다. 마취과부터 해서 응급실 모두 비상 대기모드로 바뀌고요, 내시경 하다가 대장 뚫을까 봐 손을 벌벌벌 떤대요. 그리고 비(非)수면 600만원, 수면은 1000만원을 받는다죠. 우리나라는 수면내시경이 13만원입니다. 1000만원으로 비행기 타고 한국 와서 특급호텔에 6박 7일 묵으며 풀검진 받고 관광까지 쭉 하고 돌아가도 더 싸다는 거예요. 자신하건대 우리나라 의료진 실력은 세계 최고예요. 환자가 내는 돈은 세계 최저고요.”
 
 
  레밍을 자처한 외과의사들

 

                             2020년 8월 의사 파업에 참가했을 때의 모습. 사진=엄윤 제공

 

  ― 저수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굳이 ‘하지 마라’고 하기 전에도 외과는 이미 기피 학과인데요.

 
  “외과 전문의를 매년 200명 뽑는데요, 이번에 또 146명이나 지원했더군요. 미달이지만, 아직도 146명이나 지원했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것도 하지 말라는 거예요. 나그네쥐(레밍)라고 있죠. 종족이 번식해서 먹고살 게 없으면 해안가 절벽에서 집단으로 떨어져 죽는 동물이죠. 해안가 절벽으로 우르르 뛰어가다가 뒤를 봤는데, 또 한 무리가 우르르 달려오고 있는 걸 보는 기분입니다.”
 
  ― 원장님도 그 나그네쥐 중 하나였잖아요.
 
  “완전히 속은 거죠.”
 
  ― 예전에는 하지 말라던 선배가 없었나요.
 
  “제가 인턴을 하던 1998년도에는 하라고 독려하는 선배가 많았어요. ‘우리 외과는 이제 바닥을 찍었기 때문에 올라갈 일만 남았어’라고요. 근데 더 내려갔죠. 선배들이 왜 안 말렸나 생각해보면, 후배들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힘들어서였어요. 밑에 애들이 안 들어오면 자기 일이 더 많아지니까.(웃음)”
 
  ― 다들 외과의사를 안 하면, 우리나라 기피학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그건 솔직히 제 알 바가 아닙니다. 제가 외과 학생 때부터 이미 수많은 의사가 핏대를 올렸어요. 이러다 큰일 난다,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바이털 학과 큰일 난다, 30년 넘게 수없이 얘기했는데 바뀐 게 없습니다. 좌든 우든, 의사를 때리면 표가 되거든요.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의사들에게 적개심이 있으니까요. 의사 파업을 누가 지지해줍니까. 의사들이 원하는 건 수가를 올리는 겁니다. 그러려면 건강보험료가 올라갑니다. 그 어떤 정치인이 ‘수가를 올려야 하므로 앞으로 보험비를 더 많이 내십시오’라고 하겠어요. 저수가뿐만 아니라 삭감도 문제죠. 정당하게 치료했는데도 돈을 안 줘버린다고요. 그러니 죄다 비(非)보험과인 피부과, 성형외과로 몰리는 거예요. 거기만 박이 터지는 거죠.”
 
  ― 비보험과로 안 간 이유는 뭡니까.
 
  “자존심 때문이죠.”
 
  ― 무슨 자존심이요.
 
  “‘진짜 의사’라는 자존심.”
 
 
 

 

사명감 하나로 시작한 일
 
  올해로 의사 생활 24년째. 잠깐 왕년의 그를 들여다본다. ‘사람 살리는 일’을 하겠다는 포부 하나로 외과의사가 됐다. 가톨릭 중앙의료원에서 외과를 수료하고 공중보건의를 지낸 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근무했다. 약 10년 전, 봉직의로 근무할 때 해프닝을 소개한다. 책에 실린 내용이다.
 
  새벽 3시에 걸려온 전화. 한 남성이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내원했는데, 의식이 혼미한 상태라는 내용이었다. 스프링 튀듯 일어났다.
 
  “지금 나가요. 마취과에 콜해요. 여보, 차키, 차키!”
 
  평소 같으면 15분 거리를 3분 만에 도착했다. 운전하며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환자의 혈액검사수치와 활력징후, 그리고 마취과 콜 여부를 확인했다. 응급실 도착. 환자는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이고 배는 빵빵했다.
 
  “마취과는?”
 
  “○○(타병원) 마취과에 전화했는데 1시간 반 정도 걸린대요.”
 
  “미쳤어? 환자 죽어. 우리 마취과장 불러요.”
 
  “그건 저희가 하기에는….”
 
  “연결해요, 내가 말할게. 환자 보호자는?”
 
  “경찰이 연락했는데 댁이 안산이라서 오시는 중이래요.”
 
  “보호자 올 때까지 못 기다려. 보호자 전화번호 있어요?”
 
  “경찰한테 물어볼게요. 그런데 과장님, CT는 안 찍어요?”
 
  “CT가 문제가 아냐. 혈복강(헤모페리)이잖아. CT 찍느라 기다리다간 죽어요.”
 
  “과장님, 보호자 연결됐어요.”
 
  “외과 과장 엄윤입니다. 남편분이 교통사고로 인해서 복강 내 출혈이 심한데요, 보호자 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우선 수술 시작하고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
 
  수술 방 전화 연결.
 
  “엄윤인데요, 얘기 들었죠? 중심정맥관 잡을 거니까 준비해주시고요. 석션(흡입기구) 두 개 준비하고 복강 내 세척 많이 해야 하니까 세일린(식염수) 30병쯤 준비하세요. 아, 참. ICU(중환자실) 자리는 있나요?”
 
  따라오던 응급실 간호사가 수술실과 같은 층의 ICU로 뛰어간다.
 
  “과장님, 자리 없다는데요.”
 
  “이런, 젠장. 없으면 만들라고 해요!”
 
  책임간호사가 이내 나와서 말한다.
 
  “과장님, 우리 자리 없어요, 갑자기 이러시면 어떡해요?”
 
  “아니, 그럼 환자를 그냥 죽여요?”
 
  그렇게 우여곡절 후, 2시간30분의 긴 수술이 끝났다. 환자를 살려냈다. 그는 “수술 후 밖으로 나와 어스름한 여명을 보며 피운 담배 한 모금, 커피 한 잔의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 숙연해지네요.
 
  “트럭운전사였어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새벽같이 물건을 떼어다 거래처 여러 곳에 넘기려다 난 사고였죠. 평소 제 모습을 아는 분들은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레지던트 때부터 저는 수술 전에 손을 씻으며 항상 기도를 합니다. 그날은 중환자실 환자 앞에서 한 가지 기도를 더 했어요. ‘주님, 이 환자는 데려가지 마시고 제게 주세요’라고요.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울면서 기도해본 적, 있으세요? 외과의사들은 그런 경험이 많아요.”
 
  ― 요즘도 수술 전 기도하나요.
 
  “그럼요.”
 
 
  봉직의 시절 현실에 눈떠
 
  ― 의대에 진학한 배경은 뭡니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응급실에 갔는데 병원에서 손을 못 쓰더군요. ‘살릴 수 있냐’고 했더니 ‘다만 몇 분 정도 연장은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의사 멱살을 잡고 ‘그러고도 의사냐, 내가 한다 의사’ 한 거죠. 그래서 의대 다니는 6년 동안 항상 바이털과를 하고 싶었어요. 사람 살리는….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는 못 살리는 케이스였는데, 내가 의사가 돼서 아버지와 같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한(恨)이 풀리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 ‘사람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에서 시작한 일이군요.
 
  “제가 공부를 좀 잘했습니다. 의과대학 수석이었고 인턴 성적도 1등이었어요. 주변에서 성형외과 하라고 했지만, 안 했어요. 외과 선택한 제 친구들도 다 성적이 좋았어요. 서로 물었죠. ‘너 그 성적 가지고 왜 외과를 왔냐?’ 했더니 다들 이렇게 말합니다. ‘환자를 살리고 싶으니까.’ 그런 사람들입니다. ‘진짜 의사’가 되겠다고 자신의 삶을 갈아 넣는 의사들이에요.
 
  그런데 나라는 이들을 어떻게 대합니까. 의대에 들어가면 뭐 해요. 정말 필요한 진료과는 안 가는데요. 정말 필요한 진료과를 선택하면 뭐 합니까. 계속 그 과를 할 수가 없는 구조인데요. 그런데도 사람 살리는 진짜 의사가 되려 한다고요? ‘미쳤니?’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큰 병원에서 외과의사를 하면 너무 바빠서 사람처럼 못 살고, 나와서 봉직의를 하거나 개원의를 하면 먹고살기 힘들어서 사람처럼 못 사니까 외과의사 정말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외과의사로 살며 얻은 것도 있지 않나요.
 
  “글쎄요. 빚과 인내심?”
 
  ― 사명감은 언제부터 사라지던가요.
 
  “봉직의 때부터 서서히요. 정형외과, 신경외과, 영상의학과는 말할 것도 없고 내과, 신경과, 마취과보다 못한 초봉에다 5일밖에 안 되는 연차, 그리고 매일매일 언제라도 받아야 하는 응급콜…. 환자를 살렸을 때의 쾌감, 보호자로부터 받는 감사, 같이 근무하는 의료진으로부터의 존경과 같은 요소가 마치 마약과 같아서 몸 망치는 것도 모르고 계속 이어온 건데, 개원의가 된 지금은 그런 마약마저도 없어진 상태예요.”
 
 
  막다른 길, 개원의
 
  ― 개원이 패착이었군요. 대학병원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나요.
 
  “대학병원에 못 남아서 봉직의를 하는 거고, 봉직의를 하다가 밀려서 개원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외과를 하다가 더 이상 안 돼서 일반잡과를 하거나 미용치료를 하는 거고요.”
 
  ― 대학병원에 왜 못 남나요.
 
  “교수 하려는 애가 어디 한둘인가요.”
 
  ― 1등 하셨다면서요.
 
  “교수로 남으려면 ‘용가리 통뼈 빽’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현실이에요. 교수가 된 동기들 보면 아버지가 교수동문회장을 했다거나 죄다 그런 애들이에요. 제 동기 18명 중 3명은 중도하차하고 15명만이 전문의를 땄거든요. 그중에서 3명은 교수가 됐고, 9명은 ‘물치잡과’라고 감기약 나눠주고, 혈압약 나눠주는 과 아니면 미용성형 쪽으로 빠졌어요. 외과는 딱 3명만 남았는데, 그중 한명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이 안 돼요. 병원 인수했다가 망해서 도망 다닌다는 얘기를 마지막으로요.”
 
  ― 봉직의는 왜 계속 못 하나요.
 
  “나이를 먹으면 월급이 올라가잖아요. 슬슬 노안도 오고요. 원장 입장에서 ‘저 눈도 안 보이고 순발력도 떨어지는 놈에게 많은 돈을 줄 바에 젊은 의사 둘에게 나눠주는 게 낫겠다’ 싶지 않겠어요.”
 
  ― 개원의가 어찌 보면 막다른 길이었던 거군요.
 
  “네. 개원을 앞둔 와중에도 살짝 허황된 생각을 하긴 했었어요. 선배들이 ‘나도 죽지 못해 하는 거야. 그거 안 돼’라고 누누이 말했는데, 그걸 안 듣고 ‘내 병원을 하면 돈 없는 사람도 좋은 진료서비스를 제공해줘야지’ 하면서 저기(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수술방 보이시죠. 저 수술방 하나 차리는데 1억7000만원을 썼어요. 근데 보세요. 환자가 안 옵니다. 이왕이면 큰 병원에 가려고 하지, 여기에 오지를 않습니다.”
 
  ―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요.
 
  “공중보건의 때가 다른 길로 빠질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어요. 그때로 돌아간다면 USMLE(미국의사면허시험)이나 JMLE(일본의사국가시험) 준비를 해서 미국이나 일본으로 갈 겁니다. 후배들한테도 누누이 얘기해요. 미리미리 준비해놓으라고.”
 
 
 

 

증상 일일이 그림으로 설명

                  이날 그의 그림 설명은 복강경과 암으로까지 이어졌다. 사진=박지현 기자

 

 

  그는 항문 질환을 위주로, 복강경, 맹장염, 담석증 등을 진료한다. 은평에 있는 병원은 올여름에 인천 송도로 이사할 예정이다. ‘서울항외과’로 이름도 바꿀 생각이다.

 
  ― 그런데 왜 항문외과로 개원한 겁니까.
 
  “외과 전공으로 개원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 비록 제가 모든 암 수술을 다 할 수 있다고 해도, 이 작은 병원에 암 환자가 올까요? 대장암, 갑상샘암, 유방암 환자가 여기를 오겠습니까. 반대로 큰 병원은 암 환자만으로도 차고 넘치기 때문에 치질 수술 같은 걸 안 하죠. 돈도 안 되고요. 외과로 개원을 하려면 큰 병원에서 안 하는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 항문 질환인 ‘치핵’이 모든 질환 중 발병률 1위라고 들었습니다.
 
  “치핵과 백내장이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수술이죠.”
 
  ― 수술대에 오르지 않으려면 평소 항문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가 재빨리 서랍에서 펜과 종이를 꺼냈다.
 
  ― 환자에게도 이렇게 일일이 그림으로 설명합니까.
 
  “네. 제가 시간이 남아돌잖아요. 자, 치핵은 왜 생기느냐.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에 생겨요. 그래서 오직 사람만 걸리는 병입니다. 서서 생활하면 피가 아래로 쏠리죠. 항문 주위에 몰려 있는 혈관에 무리가 가는 겁니다. 1~4도까지 있고 2도 이상은 수술을 해야 해요. 안 생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지 마세요. 5분 이상 넘기면 안 돼요. 술은 상극입니다. 몸이 피곤하다거나 스트레스받는다거나 오래 앉아 있는 것 안 좋아요. 대신 좌욕하세요. 38~42도 정도 되는 따뜻한 물을 깔고 앉는데 그냥 앉지 말고 엉덩이에 힘을 빼고 항문을 살짝 열어서 항문관 안으로 물이 들어가도록요. 한 번 할 때마다 5~10분. 하루에 네 번. 변 보면 한 번 더. 식이섬유를 드시고요, 유산균도 좋고요…(하략)”
 
  ― 요즘에는 병원에서 대기할 때 태블릿PC를 쥐여주고 이런 정보를 미리 숙지하도록 하던데, 일일이 그림 그리기 번거롭지 않나요. 괜히 스트레스만 더 받는 거 아닙니까.
 
  “물론 태블릿PC를 이용하면 스트레스가 덜하겠죠. 그런데 우리는 일단 태블릿PC가 없고요, 무엇보다 의사가 환자 눈을 보면서 그림을 그려주며 설명을 하면, 이해도가 높아질뿐더러 서로 간 라포(신뢰)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이 방식을 더 선호합니다.”
 
  그의 그림 설명은 복강경에 이어 암으로까지 이어졌다. 그제야 한 팀이 병원을 찾았다. 약 두시간 만이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조선일보 2021,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