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日 팔릴뻔한 300살 나무 지키려다…'철의 회장' 팔자 바꿨다

해암도 2021. 7. 16. 17:12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이 15년간 가꾼 수목원 '사유원'에서는 이런 풍경이 어디에서든 펼쳐진다. 사유원 내 건축물 '현암'에서 바라본 팔공산의 모습. [사진 김종오 작가]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에 수백 년 된 모과나무 108그루가 사유(思惟)하고 있는 수목원이 있다. 언덕을 따라 도열한 나무의 모습이 마치 호령하는 산신령 같다. 굵직하게 뒤틀린 모습이 기기괴괴하다. 한 그루의 나무에 여러 나무의 생명력이 합쳐진 결과다. 분재용으로 오랫동안 연리지를 거쳤고, 여러 그루가 하나로 합쳐지고 또 합쳐져서 2m가 넘는 굵기가 되기도 했다.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경북 군위군 부계면 '사유원'
축구장 231개 규모 민간 수목원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공간"

 

수목원의 크기는 32만3082㎡. 축구장 약 45개 규모다. 네 시간을 꼬박 걸어야 다 돌아볼 수 있지만, 어쩌면 무한한 시간이 필요한 곳이다. 수목원 안에는 자연과 더불어 생각하길 권하는 공간이 많다. 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 승효상ㆍ알바로 시자, 조경가 정영선ㆍ카와기시 마츠노부 등 당대 걸출한 명인들이 모였고, 15년째 다듬어 가고 있다.    
 
유례없는 조성 기간과 규모, 독특한 공간까지 더해져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수목원”(승효상)이라고 거침없이 명명되는 수목원의 이름은 사유원(思惟園)이다. 이를 끈덕지게 가꾼 이는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다. 일평생 뜨겁게 철을 연마해온 철인의 뜻밖의 외도다. 은둔자라고 공공연히 불릴 정도로 공식 석상에 나서길 꺼리는 유 회장과 건축가 승효상을 지난달 22일 사유원에서 만났다. 멜빵 바지에 주홍색 티를 입은 유 회장은 탁 트인 목소리로 판소리 독창하듯 말했다.    

사유원을 15년 간 가꾼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오른쪽)과 승효상 건축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런 데가 세상에 어디 있는교. 나는 어쩌다 복이 없어가지고, (사유원의) 이런 큰 덩치 때문에 내가 팔자에도 없는 인생을 살게 됐습니다.”  
 
일흔다섯의 나이에도 오토바이로 몽골 사막을 질주하고,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철인을 땅에 단단히 붙던 것은 30년 전 부산항에서 만난 모과나무 네 그루였다. 
 

운명처럼 만난 모과나무 네그루

경북 김천 출신의 유 회장은 지역의 문화예술 후원자로 유명하다. 대구 성서공단 내에 있는 사옥에는 한국형 정원과 갤러리, 300석 규모의 소극장까지 갖췄다. 이런 유 회장에게 직원이 지나가며 던진 말이 그를 팔자에도 없는 인생을 살게 했다. “모과나무가 일본으로 팔려나가는데 너무 아깝습니다.”

 
나무를 보면 마음이 달라질 거라는 말에 유 회장은 한달음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나무가 있다는 컨테이너를 열었더니 열이 탁 받쳤다고 한다. 둘레 2m의 300년 된 모과나무 네그루가 군용 담요에 덮인 채 켜켜이 포개져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나, 했더니 일제강점기부터 모과나무가 일본으로 갔다 하데요. 불법 중 상 불법인 거라. 일본 사람들이 모과나무 분재에 사족을 못 쓰는데 일본에서는 잘 안 되고 우리나라 대전 이남에서 잘 자란다고 합디다. 그런데 저 나무가 일본에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압니까. 좁은 마당에 심어져 나무 위는 다 쳐내 지고 결국 기후가 안 맞아 죽어버려요. 300년 나무 네 그루, 1200년의 세월은 돈으로 살래야 살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사유원의 수백년 묵은 모과나무. 숱한 연리지를 거쳐 나무 두께가 상당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유원 내 108그루의 모과나무가 있는 '풍설기천년'의 모습. [사진 강위원 작가]

수백년 묵은 배롱나무의 모습. 7월에 분홍 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 회장은 그 자리에서 모과나무 네그루의 값을 후하게 치르고 샀다. 내친김에 “일본에 못 건너가게 나한테 갖고 오면 값을 더 치르겠다”고 말했더니 소문이 쫙 났다. 그렇게 108그루가 모였다. 600살이 넘는 나무도 있다. 물론 불법 채취한 나무가 없도록 모든 나무의 이력을 철저히 관리했다. 나무마다 명찰을 붙여 공개했다. ‘1994년 4월 20일 경북 의성군 김00로부터 매입하다’는 식의 기록이다.

 
기어이 한국의 모과나무를 지켰다. 그런데 유 회장은 “미안한 일”이라고 했다. 나무가 오래도록 있던 자리에서 결국 옮겨왔기 때문이다. 자목(子木)을 만들어서 있던 자리에 기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목원의 꿈이 시작됐고, 2006년 군위군 부계면에 용지를 마련하면서 현실이 됐다.  
 

승효상이 설계한 '마음 전망대'가 있는 곳  

유 회장은 오랜 인연이 있는 승효상 건축가와 수목원의 개념부터 상의했다. 땅을 둘러본 승효상은 감탄했다. 고립무원의 땅이었다. 남으로 팔공산, 북으로 도봉산 등 하늘 아래 보이는 것이라고는 자연 밖에 없었다. “성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수목원을 만들자”고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고, 그 자리에서 ‘사유원’이라 이름 지었다.

 
승효상은 “이름이 정해지니 수목원의 성격과 갈 길이 명확해졌다”고 소회했다. 자연과 관계 맺으며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되, 형태가 드러나지 않게 파묻고 감추기로 했다.    

현암의 모습. 사유원 내 공간들은 존재감을 지우려 애썼다. [사진 김종오 작가]

현암의 내부 모습. 삼면 유리창을 통해 파노라마 뷰가 펼쳐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4년 첫 공간인 ‘현암’(玄庵)이 완공됐다. 수목원에 모과나무를 이식한 유 회장이 이를 관찰하기 위해 머물 장소가 필요해 만든 집이었다. 산맥이 땅을 따라 흐르다 푹 떨어지는 혈 자리에 매달린 듯 자리 잡은 암자를 지었다. 복층 구조로 위는 삼면이 유리라 뻥 뚫린 정자 같은 공간이고, 그 아래 8㎡가량 되는 잠 잘 방을 뒀다.  
 
별 볼 일 없는 집이라 명명했지만 들어서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장대한 자연이 눈앞에 펼쳐져서다. 승효상은 “집이 서향에 위치해 동지 때 일몰되는 축으로 맞췄고, 그때 되면 해가 정확히 집안으로 꽂히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둘씩 공간이 만들어졌다. 연못 옆에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인 ‘사담’, 물탱크를 감추기 위해 별을 볼 수 있는 제단 같은 구조물인 ‘첨단’, 3개의 연못 옆에 걸치듯 누워 있는 쉼터 ‘와사’가 들어섰다.

 
수목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원하는 유 회장의 뜻에 따라, 건축가는 전망대도 만들었다. 그런데 땅속에 파묻었다. 청개구리 같은 작업의 이유는 분명했다. 승효상은 “전망대까지 오는 동안 대단히 아름다운 경치를 봤을 테고, 이를 마음속으로 정리한 뒤 다시 자연 속으로 나설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유원의 마음 전망대 '명정'의 모습. 승효상 건축가는 전망대를 땅 속에 파묻었다. [사진 김종오 작가]

명정에 들어가면 물과 돌의 공간이 있다. 오래 머물며 명상하기 좋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렇게 사유원만의 마음 전망대 ‘명정’이 만들어졌다. 계단을 따라 땅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돌의 공간이 나온다. 안에는 촛불 켜고 기도할 수 있는 성소가 곳곳에 있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마음을 살피고 나오면 푸른 수목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수목원에는 포르투칼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명상을 위해 만든 건축물도 있다.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이로, 파주 출판도시의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을 설계했다. 수목원 내 자연도 솎아내는 간벌 작업과 무수한 심기를 거쳐 이제 관리 단계로 접어들 때가 됐다. 여기까지 오는 데 15년이 걸렸다.  
 

도시에서 잃어버린 제3의 공간 

돈을 땅에 쏟아붓는, 지난한 여정이기도 했다. 7~8월에 잡초를 뽑는 데만 4000만원가량의 인건비가 든다고 했다.
   
“여기서 일하다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두 번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뇌졸중이라 하데요. 남한테 시키면 신경 쓸 일이 아무것도 없겠지만 하다 보니 사유원은 그냥 돈 주고 만들 수 있는 공원이 아닌 거예요. 미학적인 곳이죠. 일평생 아파트에서 산 적 없는 촌놈이라 가능했던 것 같긴 한데 나중에는 성질밖에 안 남더라고. 으하하”(유 회장)
 
마스터플랜 없이 시작했지만, 공간마다 분명한 제 이름이 있다. 108그루 모과나무가 있는 곳의 이름은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 바람ㆍ눈ㆍ비 맞으며 어언 천 년이라는 의미다. 이름대로 오랜 세월 풍상을 이겨낸 모과나무가 감동을 준다.   

포르투칼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사유의 공간 '소요헌'의 모습. [사진 김종오 작가]

소요헌의 내부. 천장에서 내려오는 조형물도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물가의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만든 시설 '사담'. 생각하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3개의 연못 옆의 쉼터. 누워있는 수도원에 착안해 만든 공간 '와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유원의 정문. 들어서는 순간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제 3의 공간이 펼쳐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수목원을 다 둘러보고 나면 이런 의문이 든다. 대체 이 공간과 건축물은 무엇일까. 사유원은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것만 추구하던 도시인에게 생경하다.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남다른 공간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건축물인데 조형물 같고, 햇빛과 바람이 드나드는 모양새가 흔히 보던 집과 또 다르다.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사유원은 사람이 만든 자연의 정수”라며 “특히 건축물의 경우 거주의 요건이 적어서 건축가가 햇빛과 바람의 리듬에 몰입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승효상은 이를 ‘제3의 공간’이라고 칭했다. 그는 “서구에는 먹고 자는 생식을 위한 공간, 사회 생활하는 생활의 공간 이 두 가지밖에 없지만 한국에는 전통적으로 정자나 사당과 같은 생각하게 하는 제3의 공간이 있었다”고 전했다. 살아가고 있지만, 자꾸 잃어버리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공간들이다.  
 
사유원은 민간개방을 위해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다. 낮뿐 아니라 밤의 풍경도 아름다운 수목원을 만끽할 수 있게 방문객이 묵을 수 있는 호텔도 지을 예정이다. 이 역시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 50실 규모인데 모든 방이 수도원의 승방처럼 싱글침대 하나만 딱 뒀다. 홀로 사유하고 싶은 여행객에게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1.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