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백수진 기자의 담백]
‘철도원’ 등 이 시대 아버지 대변해온
日 문단 70세 이야기꾼 아사다 지로
화상 인터뷰를 할 때도 정장을 차려 입는 아사다 지로이지만 답변엔 짓궂은 장난기가 배어났다. 그는 “일이 곧 인생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년을 맞이한 뒤 허무함을 느낀다”면서 “일만 열심히 하기보다는 인생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DB
정년을 앞두고 대기업 계열사로 밀려난 예순다섯의 남자는 매사에 성실했다. 44년간 매일 아침 같은 지하철, 같은 칸에 타고 회사로 향했다. 밤늦게 들어와 기절하듯 잠들고 다시 눈 뜨면 직장으로 향했다. 퇴직하던 날, 송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퇴근길. 남자는 지하철에서 뇌출혈로 쓰러진다. 별다른 취미도, 사치도 없이 오직 일만 하며 살아왔는데 그 결과가 죽음이라니….
아사다 지로(70)의 소설 ‘겨울이 지나간 세계’의 주인공 다케와키 마사카즈는 산업화 시대에 일밖에 모르고 달려온 한국의 아버지들과도 닮았다. 영화 ‘철도원’의 원작자로 유명한 아사다 지로는 신작 출간 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위대한 사람에 대해 쓰려고 했다. 부자이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닌, 자기반성을 할 줄 아는 남자. 그런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사람이 아닌가”라고 했다.
식물인간처럼 병원에 누워있는 마사카즈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방문객들이 찾아온다. 우아한 귀부인이 찾아와 함께 고층 빌딩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젊은 육체로 돌아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바닷가를 거닐기도 한다. 천사인지 사신인지 모를 미지의 인물들과 환상 세계로 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자신의 65년 인생을 돌아보며 잊고 지냈던 과거의 상처와 마주한다.
아사다 지로 역시 소설 속 주인공처럼 1951년생이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이 망하고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친척 집을 전전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자위대에 입대하고 패션 부티크를 운영하는 등 먼 길을 돌아 39세에 소설가로 데뷔했다. 1997년 출간된 첫 소설집 ‘철도원’은 나오키상을 받고 100만부 이상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 표제작인 ‘철도원’뿐 아니라 함께 실린 단편 ‘러브레터’ 역시 최민식 주연의 영화 ‘파이란’으로 만들어졌다. 마음을 울리는 휴먼 스토리부터 선 굵은 역사소설까지 100권 넘는 책을 써낸 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불린다.
나이 일흔에도 각종 신문과 문예지에 꾸준히 소설을 연재할 정도로 필력이 왕성하다. 이번 소설 ‘겨울이 지나간 세계’도 1년간 마이니치신문에 연재되며 인기를 끈 작품. 한국판 출간을 기념해 최근 화상 앱 ‘줌’으로 아사다 지로를 만났다. 정장 차림의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지만 몇 가지 질문을 던지자 그는 금세 장난기를 드러냈다. 그는 ‘겨울이 지나간 세계’를 집필할 때를 떠올리며 “당시에 신문·월간지 등 네 군데에 동시 연재를 하고 있었다. 혹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며 웃었다. “출판사들이 하나만 쓰게 놔두질 않는다”며 화상 인터뷰에 함께한 편집자를 놀리기도 했다.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그의 소설처럼 진지한 답변 속에서도 유머가 툭툭 튀어나왔다.
# 직장의 정년퇴직이 인생의 정년퇴직이란 건 너무 슬프지 않나요? 분명히 제게서 일을 빼면 아무런 장점도 없습니다. 이렇다 할 만한 취미도 없고, 당장 하고 싶은 일도 없지요. 그런 인간은 이미 존재 가치가 없는 걸까요? – ‘겨울이 지나간 세계’ 中
-벌써 일흔입니다. 마감은 잘 지키는 편인가요?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마감을 어긴 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 원고 매수를 못 맞춘 적도 없고요. 하지만 대부분 소설가의 본성은 게으릅니다. 회사에 가기 싫으니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사람들이죠. 원고를 재촉하지 않으면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웃음).”
-당신도 소설 속 주인공 마사카즈와 같은 1951년생이더군요.
“주인공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고, 그가 경험한 사회 변화를 저 역시 겪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쓰기 쉬웠죠. 어린 시절 버려진 주인공처럼 저도 부모님과 같이 지낸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전적인 부분이 조금은 반영됐을 겁니다.”
-마사카즈는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정년퇴직하는 날 지하철에서 쓰러집니다.
“전 도쿄에서 태어나고 내내 도쿄에서 자랐습니다. 제 인생 70년 동안 도쿄 이외의 곳에서 산 적이 없지요. 지하철은 저한테도 굉장히 친숙한 공간이고 도쿄 사람들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죠. 바쁘면서도 소박하게 사는 도시인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은 퇴직하면서 ‘젊은 사람들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꼰대라든지 사내 갑질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우리 세대를 겨냥한 말이었다’고 회상합니다. 당신도 젊은이들과 세대 차이를 느낄 때가 있나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는 것도 많고 심성도 착해요.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결정적으로 개성이 부족해요. 우리 세대와 비교하면 투쟁심이나 경쟁심이 부족해 보여요. ‘모두가 잘 살자’ ‘다 같이 잘 살자’ 하는 식이랄까. 그게 요즘 젊은 세대에 만연한 정서가 아닌가 싶어요.”
-당신은 개성 있는 젊은이였습니까?
“남들과 똑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어요. 쇼핑을 할 때도 유행을 좇아가기보단 나한테 어울리는 걸 먼저 찾았죠. 덧붙이자면, 요즘 일본 젊은 남자들은 남자다움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한국 드라마들을 보면 아직 남성적인 면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일본 남자들은 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나요?
“집중해서 보진 않았지만 본 적은 있어요. 성차별을 하려는 게 아니라 어쨌든 남자와 여자는 근육량이 다르지 않습니까. 남자가 좀 더 강하기 때문에 약자를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요즘엔 그런 자각이 없지 않나 싶어요. 아마도 나는 한국 남자들처럼 똑같이 군대를 2년 다녀왔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는 세계 각국의 카지노 여행기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2005년 한국 카지노를 취재하러 왔던 그는 “일만 하다가 중년이 되면 아무것도 없다. 몇 년 전부터 어떻게 놀 수 있나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DB
#인생에서 행복과 불행의 무게는 똑같거든. 신은 그런 식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정확히 안배해 주셔. 넌 어렸을 때 불행했으니까 앞으로 반드시 그 불행의 크기만큼 행복해질 거야. – ‘칼에 지다’ 中
마사카즈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남모를 상처를 안고 있다.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기에 태어난 그는 “지독히 운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버려졌는지도 모르는 채 아동 보호 시설에서 자랐고, 교통사고로 네 살짜리 아들을 잃었다. 쉴 틈 없이 달리지 않으면 평범한 가정조차 이루기 어려웠다. 소설은 성실하게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에게 “당신 참 열심히 살았어요”라고 위로를 건넨다.
아사다 지로 또한 풍요로웠던 시기에 불행을 경험했다. 아홉 살에 집안이 망하고 뒷골목 불량배들과 어울리며 방황하기도 했다. 어려서 겪은 가족의 해체는 오히려 작품 속에서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그리게 했다. 그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 ‘칼에 지다’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무라이가 아닌, 가족을 위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촌뜨기 무사를 그린 역사소설. 아사다 지로는 ‘칼에 지다’를 쓴 이유에 대해 “아버지, 어머니에게 퍼부은 독설이었다. 인간은 본디 이런 존재가 아닙니까 하고 부모에게 설교하는 느낌의 소설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매일 동서고금의 명저를 원고지에 필사한 일화가 유명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자위대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의류 매장을 운영했다. 굴곡 있는 인생이었던 만큼 야쿠자, 호스티스 등 밑바닥 인생을 생생하게 다룬 소설들이 많다.
-한때 야쿠자였다는 소문까지 있던데요.
“별별 경험을 했다고 알려졌는데 딱히 그렇진 않아요. 떠도는 도시 전설 같은 거죠. 그중 진짜는 2년간의 자위대 생활과 패션 업계에서 일한 경험뿐입니다.”
-자위대에 자원해서 입대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50년 전,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자위대원을 선동하려다 할복 자살한 사건이 있었죠. 당시에 미시마 유키오 소설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했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웃음). 두 번째 이유는 대학에 실망했기 때문이에요. 당시엔 학원 투쟁이 심했습니다. 대학에서 수업을 하지도 않는데 굳이 돈 내면서 다닐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세 번째는 원래 몸 쓰는 일엔 자신 있었고 몸을 움직이길 좋아했어요. 나약한 소설가가 아니라 강한 체력을 가진 소설가가 되고 싶었죠. "
-군대는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가장 큰 영향은 역시 체력이죠. 소설 쓰는 일도 결국 체력 싸움이거든요. 39세에 늦게 데뷔했지만, 몸을 단련해놨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고, 멈추지 않고 꾸준히 좋은 소설을 쓸 자신이 있어요. 무슨 일을 하든 젊었을 때 몸을 단련해놓는 게 중요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한 게 소설 쓰기에 도움이 됐나요.
“글쎄요. 저는 오히려 이것저것 경험한 사람들이 소설을 못 쓴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쓰려면 재능보다는 끈기가 있어야 해요.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는 일인데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면 과연 도움이 될까요. 경험보다는 오히려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이 훨씬 유리하죠.”
-의외의 답변이네요.
“미켈란젤로나 다빈치의 작품들을 보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져요. 젊었을 때부터 한 분야만 계속 파고든 사람들만이 그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어요.”
-특별한 글쓰기 습관이 있습니까.
“매일 다다미방에서 기모노를 갖춰 입고 글을 씁니다. 근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을 많이 쓰는데, 그러려면 주위에 책이나 자료를 많이 둬야 하거든요. 다다미방에는 360도로 빙 둘러서 자료를 둘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런데 다다미방에 앉아서 글을 쓰려면 바지를 입고서는 오래 앉아 있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앉아서 글쓰기에 굉장히 편한 기모노를 입죠.”
-둘이 한 세트군요.
“특별히 무게 잡으려는 게 아니고, 소설 쓰기에 필요한 유니폼일 뿐입니다. 축구 선수나 야구 선수가 유니폼 입듯이 말이죠. 집 앞 편의점에 나갈 때는 옷을 갈아입고 갑니다. 나이 든 소설가가 기모노를 입고 돌아다니는 건 아무래도 좋게 보이진 않을 테니까요(웃음).”
-다음 작품은 역사소설인가요?
“청나라 말기를 무대로 쓴 역사소설 ‘창궁의 묘성’을 25년 넘게 계속 쓰고 있어요. 4권의 시리즈로 나왔던 책인데 그 후속 편을 써서 완성하려고요.”
영화 '철도원'.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 “오토마츠, 잘 봐두시게. 나랑 자네랑, 이 고철하고 함께 가세.’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는 철도원이다. 칙칙폭폭 푸우, 미련한 쇳소리를 내지르며 강철 팔뚝을 흔들며 꿋꿋이 달리는 철도원이다. - ‘철도원’ 中
대표작 ‘철도원’은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일평생 시골 마을의 호로마이역을 지켜온 역장의 이야기다. 아내가 위독한 상황에서도, 어린 딸의 죽음에도 철도원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꿋꿋이 역을 지키는 모습을 가슴 먹먹하게 그렸다. 폐선이 예정된 기차역에서 마지막 기차를 맞이하던 철도원이 눈밭에 쓰러져 있던 마지막 장면은 산업화 세대의 쓸쓸한 퇴장을 보여줬다.
-이번 작품 ‘겨울이 지나간 세계’도 그렇고 겨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많이 쓰셨던데요.
“항상 겨울에 대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여름엔 지긋지긋하고 누구랑 말도 섞기 싫지만, 겨울엔 여러 가지 신비한 일들이 일어날 것 같지 않나요? 돌아보면 제 삶에서도 겨울에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내와 사랑에 빠진 것도 겨울이었죠. 다음 해 여름까지 사랑이 이어진 유일한 여자였습니다(웃음).”
-인생의 겨울을 앞둔 이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
“한국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 사람들은 일을 지나치게 열심히 하거든요. 취미나 다른 관심 분야도 없이 오직 일만 하고, 일이 곧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정년을 맞으면 허무함이 밀려오잖아요. 저는 인생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도 일을 많이 하지 않나요?
“저야 원고 쓰는 게 곧 취미이니 힘들진 않아요. 그래도 일과 상관없는 책을 읽을 때가 훨씬 재밌습니다.”
-일과 상관없는 책이라면?
“요리책을 자주 읽어요. 여행 갈 때도 각종 책을 잔뜩 싸가서 닥치는 대로 읽습니다. 주변에 책이 없으면 불안해질 정도로 활자 중독자에 가까워요.”
독서 말고 그의 또 다른 취미는 카지노와 경마다. 세계 각국의 카지노를 돌아다니며 쓴 순례기를 에세이로도 펴냈다. 한때는 자신을 ‘소설 쓰는 갬블러’로 소개했을 정도다. ‘주간 플레이보이’에 연재했던 상담 코너에서 ‘악마의 오락인 경마를 왜 계속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일본은 예전부터 ‘놀이는 죄악’이라는 풍조가 있었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좋은 도락(道樂)은 인생을 반드시 행복하게 해 줘.”
-최근에도 카지노를 가신 적 있나요.
“일본엔 불법 카지노밖에 없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갈 수가 없죠. 옛날엔 한국 워커힐을 자주 갔어요. 한국인 출입 금지였으니 대부분 일본인이었죠. 그런데 꼭 나만 여권 검사를 하더라고요. 내가 한국 사람처럼 생겼나 봐요. 서울에 갔을 때 중국인들이 나한테 길을 물어본 적도 있으니까요(웃음).”
-카지노 대신 다른 취미를 찾았나요.
“책만 읽어도 따분하진 않지만, 경마도 가끔 해요.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경마에 참가할 수 있어 종종 즐기고 있죠. 제가 마주(馬主)라, 제 말이 달릴 때도 있거든요.”
-말을 사셨다고요?
“20년도 넘었죠. 소설 인세로 말을 샀어요. 제가 싫어하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적금입니다. 돈은 들어오면 바로 써야 해요. 그렇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아름답게 쓸 것. 둘째, 재밌을 것. 셋째, 이해하기 쉽게 쓸 것. 이 세 가지는 모든 예술 작품에 해당하는 원칙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작품도 안 되고, 재미없는 작품도 안 돼요. 항상 아름답고, 재밌고, 이해하기 쉽게! 이것을 신경 쓰면서 씁니다.”
-좋은 글을 쓰는 비결이 따로 있을까요.
“아름다운 작품을 쓰기 위해선 자신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것들을 자주 보고, 많이 경험해야죠. 지금 보기에 제가 아름다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젊었을 땐 저도 꽤 아름다웠답니다(웃음). 두 번째, 세 번째 원칙도 마찬가지. 재밌고 이해하기 쉬운 작품을 쓰기 위해 재밌게 살고, 어렵지 않은 삶을 살려고 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은퇴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셨나요.
“단 한 번도 은퇴는 생각해본 적 없어요. 건망증이 심해지거나 사고 능력이 떨어질까 봐 걱정되는 면은 있지만, 은퇴는 상상조차 안 합니다. 난 평생 소설을 쓸 것이고, 내게서 소설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겁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를 다시 집어 들었다. 투박하지만 가족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보여주는 사무라이가 ‘겨울이 지나간 세계’ 속 마사카즈와 겹쳐 보였다. 마지막 순간, 촌뜨기 무사가 남기는 독백이 마사카즈가 못다한 말처럼 들렸다. “나의 주군은 난부 나리님이 아니었어. 조장님도 아니었어. 너희야말로 나의 주군이었다. 아비는 그때 그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백수진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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