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성공한 사업가에서 공사판 전전하는 막노동꾼으로
도박 인생 20년 끝에 그가 찾은 의미를 묻다
지난달 11일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 입구. 인생 한방을 꿈꾸는 이들이 이곳에서 도박에 매달리고 있었다. /최원우 기자
주변을 보면 확실히 코인(가상화폐) 투자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졌다. 코인 시장 상황이 좋아서인지 잃는 사람보다 버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하락장이 오는가 싶다가도, 금세 반등하면서 다들 안심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코인이 왜 오르고, 내리는지 제대로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어느날 갑자기 폭락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그런 점에서는 ‘도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코인 시작해야 하나'하는 마음에 답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도박판을 진하게 겪어본 경험자의 이야기를 취재해 보기로 했다.
◇인생 한방의 꿈…그 욕망의 끝판왕 ‘도박’
우선 그럴싸한 사연 있는 도박꾼을 찾아야 했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이미 ‘도박의 쓴 맛’을 고해성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모두가 안타까운 사연이었지만, 대부분 비슷한 레퍼토리였다.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일지언정, 내 눈으로 직접 만나서 들으면 감회가 다를 거라 생각했다. 서울역에서 노숙자를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도박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단체가 많았다. 대여섯 곳에 연락해 소개를 부탁했다. 하지만 워낙 민감한 문제여서일까. 다들 기꺼이 알아봐 주겠다고는 했지만, 한동안 섭외가 됐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박의 성지 ‘강원랜드’가 있는 강원도 정선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출발하기에 앞서 강원랜드 측에 카지노 취재 협조를 문의했다. “이용객들에게 불편을 끼쳐 드릴 수는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카지노 입장 지원은 불가하고, 사진 촬영도 금지라고 했다.
회원카드를 만들어 카지노 입성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카드를 만들 때 현장 직원이 너무 배려 없이 사진을 찍은 탓에 얼굴은 부득이 모자이크 처리했다. /최원우 기자
“못 먹어도 고”라는 마음으로 지난달 11일 왕복 8시간 출장길에 나섰다. 강원랜드 카지노 앞은 한산했다. 한때 하루 8000명이 넘게 붐비던 곳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이용객을 1200명으로 제한한 탓이다. 입장하려면 사전 예약을 통해 입장권에 당첨돼야 한다. 사전 예약을 하려면 회원카드가 있어야 하는데, 현장에서만 만들 수 있다. 먼 길을 온 김에 회원 카드를 만들고 사전 예약을 신청해 봤다. 입장권에 당첨되더라도 당일 입장은 불가능하고, 다음날 새벽 6시가 돼야 입장할 수 있다. 그래도 운명이 허락해 준다면 다음날까지 기다려볼 각오였지만, 아쉽게도 ‘꽝’이었다.
카지노 근처에서 기회를 살피다, 출구로 나오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인터뷰를 시도해 봤다. “혹시 도박으로 돈 좀 잃어 보셨느냐”고 물어본다 해도 “나 정도면 패가망신한 케이스”라고 말해 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래도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니 대부분 평범한 인상착의에 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중에서도 인상이 선해 보이는 한 사람을 붙잡고 “혹시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최대한 상냥하게 물어봤다. 바로 신경질적인 눈빛을 쏘아붙이더니,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두어 명 더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슬슬 카지노 직원들도 수상함을 감지한 듯, 나를 ‘잡상인’ 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서울로 발길을 돌렸다.
지난달 15일 정선도박문제회복센터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김도박씨의 얼굴은 평안해 보였다. 그의 나이는 75세지만, 그냥 봐선 50대 정도로 보일 만큼 정정했다. /최원우 기자
◇도박 중독 20년...노인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다음날인 12일, 인터뷰 섭외를 문의했던 곳 중 하나인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 섭외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대상자가 전날 갔다가 돌아온 정선에 있다고 해 난감했다. 진정한 도박꾼은 강원랜드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다시 먼 길 갈 생각에 아찔하긴 했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지난달 15일 오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정선도박문제회복센터에서 김도박(78·가명)씨를 만났다. 첫인상은 평범한 편이었다. 적어도 보자마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도박꾼’처럼 보이진 않았다. 다만 붉게 충혈된 두 눈이 바로 눈에 띄었다. 김씨는 “내가 혈기가 왕성해서 눈이 항상 충혈돼 있다. 이틀 밤을 새워 도박하고도 다음날 멀쩡히 막노동하러 공사판에 나갈 정도로 타고나길 건강하게 타고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랐다. 겉보기엔 50대로 보일 만큼 정정해 보였기 때문이다.
김씨와 그의 도박중독 치료를 돕는 상담사가 동석한 채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김씨가 들려준 그의 인생은 가히 한 편의 영화 같았다. 40대까지는 대구에서 자녀 셋을 둔 평범한 교사로 살았다. 하지만 뒤늦게 부동산 사업을 시작하면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엔 수완 좋은 복덕방 사장님 정도였다. 그런데 IMF 위기를 갓 넘긴 격변의 2000년대 초에 뜻밖에 ‘대박’이 터졌다. 싼값에 사둔 아파트 단지를 분양 대행하던 사업이 한 채 당 수천만원씩 이익을 남기는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된 것이다. 김씨는 “당시에 과장이 아니라 정말 하루에 현금이 2000만원씩 들어왔다. 교사 그만둘 당시 연봉만큼을 하루에 번 셈”이라고 했다.
김씨는 한순간에 지역에서 잘나가는 사업가로 급부상했다. 그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다 샀다. 룸살롱에 가도 하룻밤에 400만~500만원씩 썼으니 완전 VVIP였다”고 했다. 그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고, 펑펑 쓰고 살았는지를 얘기할 때는 왠지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행운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됐던 걸까. 사업이 번창하자, 김씨의 성공을 질투한 경쟁 업체들이 각종 트집을 잡아 소송전을 걸고, 직원이 내부 자료를 들고 탈세 등 문제를 신고하는 사건이 겹쳤다. 김씨는 “사업 때문에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다”며 “돈으로 불편한 일들은 막을 수 있었지만, 한순간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영화 '타짜' 중에 나오는 숨막히는 도박판 /타짜
◇”하루 2000만원씩 벌어도, 도박 빚으로 다 날렸다”
이때 김씨에게 접근해 가벼운 카드 도박(포커)으로 스트레스를 풀라고 권한 무리가 있었다. 김씨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설계’를 당했던 것 같다”고 했다. 설계란 돈 많은 자산가를 도박판으로 끌어들여 사기 도박으로 재산을 빼앗는 수법을 뜻하는 도박계 용어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을 실제로 당했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한 번 도박 맛을 본 김씨의 종착점은 하우스(전문 도박판)였다. 하우스에서 김씨는 승부에서 이겨 큰돈을 따는 짜릿함을 수시로 경험했다. 하지만 판이 끝날 때면, 어김없이 들고 간 돈을 전부 잃는 일이 반복됐다. 하루에 적게는 300만~400만원, 많게는 2000만원까지 잃었다. 도박에 완전히 중독돼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우스를 찾아갔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질 않아서, 김씨에게 여러 차례 “그렇게 큰돈을 계속해서 잃다 보면 한 번쯤 이상하다고 의심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김씨는 “내가 승부욕이 매우 강한데, 처음엔 그저 오늘 졌으니까 내일은 이겨야 한다는 오기가 컸다”며 “믿기 힘들겠지만, 나중엔 즐겁지도 않고, 잃은 돈을 복구하겠다는 마음도 없었는데, 그냥 습관처럼 도박판을 찾았다”고 했다. 패를 손에 쥐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금단현상도 생겼다고 했다.
그렇게 김씨가 도박으로 날린 재산은 지금 가치로 따지면 최소 100억원이 넘는다. 김씨는 대구 수성구에 대형 평수 아파트 20채를 소유했는데, 전부 도박 빚으로 경매에 넘어갔다고 했다. 당시 시세로 20억원이 넘었고, 지금 시세로는 120억원 정도 된다는 게 김씨 주장이다. 충분히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돈인데, 쉽게 번만큼 허무하게 날려먹었다.
김씨는 “하루는 새벽까지 도박하다가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정말 차비 한 푼조차 없었다. 그때 기찻길을 따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제 내가 정말 거지가 됐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김씨는 이 얘기를 하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전당포들이 여럿 늘어서 있다. /최원우 기자
◇전 재산 날리고도 도박 못 끊어...강원랜드 생활 시작
전 재산을 날리고도 김씨는 도박을 끊지 못했다. 하우스에 참여할 판돈이 없자, 강원랜드 카지노 ‘죽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어떻게든 돈을 구하면, 카지노로 가서 밤을 새워 도박을 했다. 따고 잃고를 반복하다 다시 돈이 거덜나면, 돈을 구하러 다녔다. 돈을 구할 길이 궁해지자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이런 생활을 시작하고 5년쯤 지나 아내가 전화로 이혼을 통보했다. 김씨는 반대했지만, 이미 이혼 절차가 끝나 있었다고 했다. 어찌 보면 아내가 그때까지 참은 게 더 신기할 정도였다.
김씨는 그래도 도박을 끊지 못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카지노에서 보냈다. 참담한 마음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기도 했다. 10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릴까 고민했다. 김씨는 “죽으려고 올라갔는데, 결국엔 죽을까 봐 무서워서 죽지를 못했다. 천주교 신도라 자살에 대한 생각이 안 좋기도 했고···”라고 했다.
김씨가 처음 도박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건 2018년, 그의 나이 75세 때였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봉착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카지노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공사판에서 힘쓰는 일을 하는 생활방식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김씨는 “하루는 공사판에서 벽돌을 옮기다가 그 자리에서 잠이 쏟아져서 쓰러졌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구나 생각이 번뜩 들었다”고 했다. 단번에 끊어내진 못했지만, 기력이 쇠해진 탓에 이전만큼 도박에 삶을 불사르진 못했다. 이 과정에서 도박문제관리센터의 도움도 받게 됐다고 한다. 그는 비슷한 처지 도박 중독자들과 경험담을 나누고, 중독 치료를 위한 상담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20년 동안 도박에 빠져 살았던 김도박씨가 도박문제 회복센터로 들어가고 있다. /최원우 기자
화려한 삶을 살다가 한순간에 재산도, 가족도 잃어버린 김씨. 그야말로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전형이었다. 실제 당사자가 담담하게 들려주는 우여곡절 인생 이야기에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런 삶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오히려 지금이 더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도박에 빠져 있을 때는 포탄이 날아드는 전쟁터를 누비면서 매일 치열하게 마음의 긴장을 놓지 못하던 시간이었다”며 “지금은 퇴역하고 벤치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그런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요즘 김씨는 센터에서 독서를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김씨는 노인연금으로 월 30만원, 정부가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 청소로 월 30만원 총 60만원 정도를 벌어 생활한다. 도박 인생을 완전히 청산하진 못했다. 가끔은 아주 소소한 정도로 온라인 도박을 즐긴다고 했다. 상담사는 “그래도 김씨처럼 심한 중독 상태에서 이 정도까지 도박을 끊어낸 경우는 흔치 않다”고 했다.
◇“코인 투자 잘못 빠져들면, 반드시 중독이라는 ‘호랑이’ 만난다”
한참을 듣고 나서 김씨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 정선까지 두 차례나 내려온 것 아닌가 싶었다. “솔직히 코인으로 돈 버는 사람들을 보면 배가 아플 때가 있습니다. 이제라도 코인 투자를 시작하고 싶은 욕심이 꿈틀거리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씨는 “코인이나 주식도 도박과 굉장히 비슷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돈을 더 벌어보겠다는 마음 자체야 문제가 없다. 하지만 쉽게 돈 버는 재미에 잘못 빠지면, 결국엔 중독이라는 ‘호랑이’를 만나 나처럼 인생이 파괴될 수 있다”고 강조해 말했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한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건물주’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
그런데 어떻게 건물주가 되겠다 하는 중간 과정은 하나도 없고, 그냥 건물 사서 편하게 살고 싶다는 얘기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을 그렇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정상적으로 벌어서는 서울에 아파트 한 채 못 사는 세상이니, 그렇게라도 인생을 보상 받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할지도···”라고 했다.
판돈을 키운 이 남자는 승부에 져서 큰 돈을 잃게 된다. 한방에 대한 욕심은 자칫 큰 화로 이어질 수 있다. /타짜
◇“모두가 ‘대박’ 바라지만, 겪어 보니 마냥 좋은 건 아니더라”
김씨는 “그렇게 바라던 ‘대박’이 찾아오더라도, 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오히려 불행해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는 “나 역시도, 갑자기 큰돈을 벌면서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현실감이 안 들 정도로 돈이 많아지면서부터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쾌락만 좇게 됐다. 모든 게 허망해지다 보니까 도박에도 빠져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김씨는 도박 중독으로 괴로워 목숨을 끊으려 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그는 “그때는 정말이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온몸이 불에 타는 느낌이었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됐다. 어떤 사람들은 죽을 용기로 살면 되지 않느냐 하는데, 당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소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지금 너무 큰 고통 속에 있다면, 그 고비를 꼭 넘어섰으면 좋겠다. 무언가 크게 잃고 나면, 비로소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벌 때는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어서 불편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망나니 같이 살아도 돈만 갖다 주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 번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합니다. 저는 지금의 내가 더 마음에 듭니다.”
진부하지만, 구구절절 틀린 것 하나 없는 이야기를, 현자처럼 늘어놓는 김씨의 얼굴은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이제 와서 ‘거짓 행복’을 연기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조금이라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면서, 그 대가로 정당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같이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생각했다.
그의 이야기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상살이 팍팍한 게 변한 것도 아니다. 당장 또 누군가 코인으로 대박 났다는 얘기를 들으면, 아마 부러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최원우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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