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온몸 쓰니 힘찬 선 나와, 손흥민 70m 드리블 골 그리고파”

해암도 2021. 5. 15. 09:27

[스포츠오디세이] ‘의수 화가’ 석창우

의수에 붓을 끼운 석창우 화백. 그림은 2009 세계피겨선수권 우승 당시 김연아의 트리플 러츠 점프를 표현한 것. 박종근 기자

 

 

석창우(66) 화백은 전기기사로 일하던 29세 때 2만 볼트가 넘는 고압 전류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수묵 크로키’라는 영역을 개척한 미술계 레전드다.
 

두 팔 잃고 ‘수묵 크로키’ 개척
미셸 콴 연기 보며 스포츠에 빠져
김연아 공중 점프 보고 붓이 저절로
이승엽·선동열 온몸 사용해 잘 해

5시간씩 성경 필사 ‘석창우체’ 특허
소치·평창 패럴림픽 감동 퍼포먼스
42.195m 종이에 마라톤 담고 싶어

 

손끝과 팔을 이용해 섬세한 터치를 할 수 없기에 그는 어떤 장면이든 온 몸을 써서 표현해 내야 한다. 그의 그림에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강렬한 힘과 기운이 넘친다. 그는 2014년 소치 동계 패럴림픽과 2018 평창 패럴림픽에서 힘찬 크로키 퍼포먼스를 선보여 세계인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석 화백은 5월 14일부터 한 달간 경기도 안산시 꿈의교회(담임목사 김학중) ‘더 갤러리’에서 45번째 개인전인 ‘석창우 화백-채움과 비움’전을 열고 있다. 지난 4월 장애인의 날에는 MBC에서 다큐멘터리 ‘석창우의 순례-비아 프란치제나를 가다’가 방영됐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한남동 자택 겸 작업실에서 석 화백을 만났다.
 
손 가진 30년보다 그 이후가 훨씬 행복
 

석창우 화백의 야외 퍼포먼스 장면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오전에 성경 필사 두 시간 반 하고, 사이사이 그림 작업을 합니다. 점심 먹고 낮잠 좀 잔 뒤에 다시 성경 필사와 작업을 병행하지요. 성경 쓰는 데 다섯 시간 정도 할애하고, 짬짬이 이메일·카카오톡·페이스북 확인하고 답장도 보내지요. 무협 소설을 좋아해 인터넷으로 늘 봅니다. 인물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공부도 되거든요.”

 

수묵화에서 색채로 넘어간 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나요?

“초기에는 색채를 썼는데 혼자서 물감을 일일이 준비해야 하니까 힘들더라고요. 차라리 수묵화로 하자고 마음을 먹었고, 빨간 먹물을 섞어 썼지요. 유럽 40일 여행 중 꽃과 자연 속에서 다양한 색깔을 만나면서 색을 써봐야겠다는 소망이 되살아났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색을 많이 쓰게 됐죠.”

 

월드컵 축구 장면을 형상화 한 석 화백의 작품.

 

 

성경 필사는 언제 시작했나요?

“2015년 1월 30일입니다.  성경 필사는 보이지 않는 세력의 방해를 많이 받습니다. 자꾸 글자를 틀려서 두루마리 몇 개를 버렸는지 모릅니다. ‘안 되겠다. 틀리는 건 사탄이다’ 생각하고 틀린 글자에 십자가로 엑스(X)를 그린 뒤 계속 진도를 나갔어요. 3년 6개월 만에 기독교 신구약을 다 썼는데 세로 46㎝×가로 25m 두루마리 115개가 나왔습니다. 지금은 가톨릭 성경을 쓰고 있죠.”

 

성경 필사를 한 계기가 있겠죠.

“양팔이 없어서 오래 못 살 줄 알았는데 2015년에 회갑을 맞았습니다. 손 있는 30년, 손 없는 30년을 살았는데, 손이 있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행복했어요. 왜 그런지 따져봤더니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내가 들어가 있더라고요. 없는 손으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까 생각해 보니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성경 필사 밖에 없더라고요.”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석창우 화백이 그려 중앙일보에서 활용 한 리듬체조 픽토그램. [중앙포토]

 

 

석 화백은 왼쪽 넷째와 새끼발가락도 없다. 감전 사고 때 전기가 그쪽으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석 화백은 큰 퍼포먼스를 하고 난 뒤엔 왼발에 먹물을 잔뜩 묻혀 화선지에 꾹 누른다.  “안중근 의사는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는 낙관이 유명하지만 나는 발가락 두 개가 없어요. 하하.”
 

석창우체를 특허 등록했죠.

“성경 필사를 하다 보니 초기에는 글자도 크고 모양이 별로였는데 점점 모양이 변하더라고요. 주위에서 폰트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어요. 책의 활자로 쓸 수도 있고 책 표지에 사용할 수도 있겠죠. 석창우체는 성경 필사를 하니 하나님이 이쁘게 보셔서 준 선물입니다. ”

 

유럽여행 중 신부님과 재밌는 얘기를 나누셨던데요.

“프랑스 몽블랑 꼭대기에서 신부님이 두 손을 호호 불면서 ‘손이 너무 시리네요. 빨리 들어갑시다’ 하기에 ‘나는 손이 없어서 손 시린 게 어떤 건지 몰라요’ 했지요. 손이 없어서 불편한 게 정말 많은데 그거 생각하면 못 살아요. 오묘한 게, 팔이 없으니까 선을 표현할 때 온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선이 안 나옵니다. 사람들은 손가락·손목·팔꿈치 관절을 이용해 기교를 부리는데 저는 그렇게 못 하니까 일반인이 흉내 내기 힘든 선이 나오죠. 치명적인 단점이 장점으로 승화되는 겁니다.”

 

그런 힘 있는 선이 있어서 스포츠 경기를 많이 그리시는 것 같네요.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피겨 여왕 미셸 콴의 연기 장면을 그리면서 스포츠에 빠져들게 됐죠. 한국에도 이런 선수가 나오면 좋겠다고 기다렸는데 일본의 아사다 마오가 먼저 나왔고, 드디어 김연아가 나왔죠.”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석창우 화백이 그려 중앙일보에서 활용 한 양궁 픽토그램. [중앙포토]

 

 

김연아의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때 트리플 러츠 점프 장면을 그렸던데요.  

“그때가 김연아의 전성기였죠. 점프 하는 장면을 수백 번 돌려보고 캡쳐했어요. 공중에 붕 떠서 돌 때 보면 얼굴을 찡그립니다. 엄청난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화가는 좋은 모델이나 소재를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는데 김연아 연기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고 저절로 붓이 가더라고요. 손흥민이 푸스카스상을 받았던 70m 드리블 골 장면도 꼭 한번 그려보고 싶네요.”

 

최고 선수들은 어떤 점이 다른가요.

“허리를 중심으로 온몸을 쓰는 게 보입니다. 이승엽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툭 건드리는 것 같은데도 홈런을 뽑아냅니다. 온몸을 효율적으로 잘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선동열도 어깨만이 아니라 온몸을 골고루 써서 던지니까 큰 부상 없이 장수했잖아요.”

 
붓 고정하는 데만 1년 넘게 피나는 노력
 

그림에 입문하는 과정이 힘드셨죠.

“처음에 그림 배우려고 화실 찾아갔더니 다들 ‘손도 없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난감해 하더라고요. 사군자는 가능하지 않겠냐 했더니 그럼 서예를 먼저 하래요. 처음엔 의수에 붓을 고정시키지 못해 고생했죠. 붓 흔들리지 않게 잡는 데만 1년 이상 걸렸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서서 작업했더니 코피가 나고 허리도 아픈데 계속 하다보니 괜찮아지더라고요.”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게 뭡니까?

“코로나19가 끝나면 전 세계를 다니며 각국의 유명한 광장에서 퍼포먼스를 해 보고 싶어요. 마라톤도 좋죠. 42.195㎞를 달리는 거니까 42.195m짜리 종이를 스타디움에 깔고 마라토너의 출발부터 골인까지를 담고 싶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의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아 보고 싶기도 합니다. ”

 

“별 거 아니네” 감전 사고 때 부인이 용기 줘

석창우 화백의 손과 팔이 되어 화가의 길로 이끌어 준 부인 곽혜숙 씨. [중앙포토]

 

 

석창우 화백의 사라진 두 팔과 손이 돼준 이가 ‘사모님’ 곽혜숙 씨다. 밥과 반찬을 떠먹여 주는 건 기본이고, 콧물이 나오면 휴지를 대 코를 풀게 해 준다. 화장실 용무를 챙겨주는 것도 사모님 역할이다. 거의 24시간을 두 사람은 붙어 있다. “사모님이 없다면?” 하고 묻자 “고행의 시작이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곽혜숙 씨는 스스로를 ‘위기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무슨 일이 딱 닥쳤을 때 그걸 통해 점프하려고 하지 한 번도 안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석 화백도 맞장구를 쳤다. “사고 당시 아내가 울고불고 하는 게 아니라 ‘별 거 아니네. 내가 다른 거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빨리 낫기나 하세요’ 그래요. 그걸 보면서 많이 다친 게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게 빨리 사회에 복귀하게 된 큰 힘이 됐어요.”
 
곽 여사는 두 자녀도 훌륭하게 키워냈다. 딸은 간호사로, 아들은 자동차 디자이너로 미국에서 살고 있다.
 
석 화백은 회갑을 맞으면서 부인 호칭을 ‘아줌마’에서 ‘사모님’으로 바꿨다. “사모님한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되도록 심부름 덜 시키는 것? 안 시킬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줄이자고 마음먹었어요. 방 닦는 거, 신발 정리는 제가 하고 큰 이불빨래도 제가 발로 합니다. 별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요. 하하.”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