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동학 사상 풀어낸 도올 김용옥 "우리가 바로 하느님이다"

해암도 2021. 5. 6. 05:25

백성호의 현문우답

 

동학의 경전 『동경대전』 2권 출간
고조선부터 이어진 천지인 정신
수운은 여종 둘, 딸과 며느리 삼아
인간 평등이 당시에는 혁명사상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동학의 ‘다시 개벽’ 사상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통나무출판사에서 도올 김용옥(73) 선생을 만났다. 최근 그는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을 풀어서 두 권짜리 두툼한 책으로 출간했다. 소제목이 눈에 띈다. 1권이 '나는 코리안이다', 2권은 '우리가 하느님이다'. 꽤 파격적이다. 도올은 1968년 고려대 철학과에 들어간 뒤 수업시간에 동경대전을 처음 접했다. 그로부터 50년 만에 ‘동경대전’을 풀어내는 작업을 한 셈이다. 그에게 동학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우리의 정신’에 대해 물었다.  
 

 

처음 ‘동경대전’을 접한 건 언제였나.

 

“고대 철학과에서 최동희 선생의 칸트 강의를 들었다. 그때 ‘동경대전’ 인용을 많이 하셨다. 서양철학 가르치는 사람들이 ‘동경대전’을 연구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의아하고 놀라웠다. 그 후에 생명 사상에 천착해 있던 김지하 시인을 통해 해월(동학 2대 교주) 선생을 알게 됐다. 그리고 표영암 선생을 통해 동학을 깊이 만났다. 표 선생은 동학 1세대의 진면목을 계승할 뿐 아니라 수운 당대의 구전을 몸에 익히고 있는 분이었다.”

 
동학을 계승한 종교가 천도교다. 천도교에는 ‘한울님’이 있다. 한울은 ‘큰 울타리’란 뜻이다. 도올은 이 명칭부터 지적했다. “동학을 세운 수운(水雲) 최제우(1824~64) 선생은 ‘하늘님’이라고만 표현했다. 그건 우주 전체를 포괄하는 말이다. 그런데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하느님(하나님)’이란 표현을 쓰니까, 천도교가 ‘하늘님’을 ‘한울님’으로 고쳐버렸다. 하늘님과 달리 ‘한울’이란 말은 한국 사람 정서에 탁 받아들여지는 말이 아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천도교가 옹색하게 쪼그라들었다.” 표영암 선생 역시 생전에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동학에는 왜 우리의 민족정신이 깃들어 있나.

 

“동학은 19세기에 느닷없이 생겨난 신흥종교가 아니다. 고조선으로부터 우리 민족이 구가하던 이상향이 있었다. 그건 자연과 인간과 하늘님이 혼연일체가 된 이상향이었다. 천지인(天地人)이 하나 되는 사상이다. 유(儒)ㆍ불(佛)ㆍ도(道) 이전에 고운 최치원이 ‘현묘지도(玄妙之道)’라고 표현했던 정신이 이미 우리에게 있었다. 그게 내려오다 수운을 통해서 정말 제대로 폭발했다. 그게 동학이다. 그러니까 수운 시대에 모든 사람이 동학에 대해 ‘아! 이건 우리 거다’ 라며 감동했다.”

 

동학(東學)은 서학(西學)에 맞서서 생겨나지 않았나.

 

“‘서학’이란 이름으로 천주교가 들어올 때 동학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서학에 맞선 개념은 아니다. 동학의 ‘동(東)’은 해동(海東)이란 뜻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할 때의 동(東)이다. 동의보감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의술이다. 동학의 동(東)자도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을 일컫는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의 초상과 그의 문집이자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 [중앙포토]

 

수운 최제우는 서학의 천주(天主ㆍ하느님)와 동학의 하늘님을 어찌 보았나.

 

“수운 선생은 동학의 하늘님과 서양의 천주가 같은 것이라야 옳다고 봤다. 진리는 하나이니까. 그런데 둘 사이에는 어느 정도 간격이 있었다.”

 

어떤 간격인가.

 

“동학에서 말하는 하늘님은 인격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으면서도,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동양의 모든 신성함ㆍ신령함을 포섭할 수 있는 개념이었다. 하늘님이란 개념의 본질에는 ‘무위이화(無爲而化)’가 깔려있다. 조작되지 않은 자연의 신령한 변화, 그 생명력을 말한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온다. 봄 다음에 겨울이 오진 않는다. 수운은 그걸 조작성이 없는 하늘님의 성실함으로 봤다.” 동학을 두고 기독교 신학자 김경재(한신대) 교수는 “유일신론과 범신론을 하나로 용해시킨 사상”이라고 평한 바 있다.  

 

 

그렇다면 동학의 하늘님은 ‘큰 하느님’인가.

 

“그렇다. 한 마디로 ‘큰 하느님’이다. 조작성이 없는 하늘님이다.”

 

조작성이 뭔가.

 

“가령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은 무조건 사랑하고 용서하면서도 팔레스타인 사람은 다 죽인다고 하자. 이런 식의 사랑에는 조작성이 들어가 있다. 조작성이 있는 하느님은 불공등한 하느님이다. 수운은 그렇게 봤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천주(天主ㆍ하느님)가 이 우주 밖에 있어서, 이 우주의 모든 일을 컨트롤한다고 봤다. 수운은 그런 천주관을 완전히 수용하지는 않았다. 동양에서는 우주의 운행이 스스로 그러한 것이고, 하느님의 디자인이나 컨트롤이 자체에 구비돼 있다고 본다. 수운의 동학도 그랬다.”  

 

 
도올은 “어떠한 진리든 외래어에 뿌리를 둔 것은 그 언어를 탄생시킨 문명에 의해 오염돼 있다”고 지적한 뒤 “그 오염된 걸 가지고 우리의 사상을 말할 수 없다. 수운은 한문 이전에 ‘용담유사(龍潭遺詞)’라는 한글 가사를 썼다. ‘동경대전’도 자신의 한글 생각을 한문으로 바로 옮긴 것이다. 그래서 한학자들이 풀이에 애를 먹는다”고 설명했다.  
 

동학이 왜 혁명운동이었나.

 

“동학인은 조선왕조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렸다. 엎어야 할 때라고 봤다. 그래서 동학은 혁명사상이다. 또 동학에는 남자와 여자, 귀하고 천함의 차별이 없었다. 수운의 집에는 여종이 둘 있었다. 수운이 대각하고 나서 가장 먼저 여종 둘을 해방시켰다. 하나는 수양딸로 삼고, 다른 하나는 며느리로 삼았다. 이러한 인간 평등론이 영남 유생들에게는 엄청난 공포였다. 사회적 계급을 타파하자는 운동이었으니까.”

 

 

그러한 인간 평등 사상의 뿌리가 뭔가.

 

“수운은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이라고 했다.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니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 된다. 수운은 또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고 했다. 나의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하늘님 마음이라는 걸 깨닫고, 모든 사람이 서로 하늘님처럼 공경하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고조선부터 내려오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라는 ‘천지인(天地人)’ 사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동학 사상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뭔가.

 

“동학은 하늘의 마음을 말한다. 그러니 모든 편협한 마음, 편협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이제는 좌와 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가령 중국은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갈수록 실용주의화하는 세상에서 한국 사회는 너무 과도하게 이념 지향적이다.”

 

과도한 이념적 지향에서 탈피하려면.

 

“동학에서 말하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ㆍ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의 뜻을 배우고 깨쳐야 한다. 이념적 지향이 과도하면 사회도 불행해지고, 종교도 불행해진다.”  

 

 

마지막으로 ‘동경대전’에서 가장 아끼는 한 구절은.

 

“수운의 ‘검결(劍訣)’이란 시를 좋아한다. 실제로 수운이 지리산 꼭대기에서 달밤에 칼춤을 추면서 부른 노래다. ‘용천검 날랜 칼은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에 덮여있네’. 나는 이 구절이 그렇게 좋다. 춤을 추는데, 칼을 번득번득하며 해와 달을 자를 듯이 갖고 노는데, 도포 자락은 그 밑에서 게으르게 움직인다. 동(動)과 정(靜). 무수장삼이 우주를 덮는다. 수운의 정신세계에 대한 단적인 표현이다. 수운은 스케일이 아주 큰 사람이었다.”

 
 

도올 김용옥이 보는 수운과 해월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왼족)은 경주 출신이다. 수운은 지식인들을 제치고 순수했던 해월 최시형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중앙포토]

 
수운 최제우를 사회혁명가로만 보면 아주 단면만 보는 셈이다. 수운은 귀여운 사람이다. 거짓이 없고, 소박하고, 시(詩)도 아주 진솔하다. 아이들에게 글과 글씨를 가르치는 걸 좋아했다. 검과 활에도 능했다. 후계자로 지목한 해월 최시형(1827~98, 동학 2대 교주)은 지식인이 아니었다. 자신처럼 순수한 사람이었다.  
 
해월은 “어린이를 때리지 마라”고 설법했다. “너는 지금 하느님을 때리고 있다. 하느님은 매맞는 걸 싫어하신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동학의 하느님 개념은 아주 파워풀하다. 이게 소파 방정환에게 내려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방정환은 동학 3대 교주 손병희(1861~1922)의 사위다.  
 
해월은 35년간 도망다녔다. 단 한 번도 잡히지 않았다. 대부분 수배자와 도망자가 잡히는 것은 내부 밀고 탓이다. 해월은 35년간 도망을 다녔지만 아무도 그를 밀고하지 않았다. 당시 민중이 동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중앙일보] 입력 2021.05.06    글=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