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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강의 동물'은 네온이 좋아!

해암도 2020. 4. 9. 09:23

올림푸스 현미경사진전 미국 1위
우주방사선도 견디는 물곰 촬영
형광 색소로 몸속 장기들 염색

올림푸스 현미경 사진전 미국1위 터지드 드카르발로의 '물곰'./올림푸스

 

통통한 아기 돼지 같은 몸통에 알록달록한 색들이 가득하다. 광학기기업체 올림푸스가 최근 발표한 ‘올해의 생명과학 현미경 사진’ 공모전에서 미국 1위를 차지한 사진이다. 메릴랜드대 키스 포터 영상센터의 타지드 드카르발로 소장은 ‘지구 최강의 동물’로 부리는 물곰(water bear)에 형광 색소를 주입하고 현미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드카르발로 소장은 “현미경으로 본 매혹적인 존재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물곰은 몸길이가 1.5㎜를 넘지 않는 완보동물(緩步動物)이다. ‘느리게 걷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1776년 이탈리아 과학자 스팔란차니가 같은 뜻의 이탈리아어로 ‘타르디그라도(il Tardigrado)’라고 이름을 붙였다. 물속을 헤엄치는 곰처럼 생겼다고 물곰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다리가 8개이며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산다.

물곰이 지구 최강의 동물로 불리는 것은 엄청난 생존 능력 때문이다. 물곰은 30년 넘게 물과 먹이 없이도 살 수 있다. 1948년 한 이탈리아 동물학자는 박물관에서 보관하던 120년 된 이끼 표본에 물을 붓자 그곳에 있던 물곰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보고했다. 섭씨 영하 273도의 극저온이나 물이 끓고도 남을 151도 고열에도 끄떡없다.

우주에서도 문제가 없다. 대부분의 동물은 10~20Gy(그레이) 정도의 방사선량에 목숨을 잃는데 물곰은 무려 5700그레이의 방사선도 견딘다. 유럽우주국(ESA)은 2007년 무인 우주선에 물곰을 실어 우주로 발사했다. 12일 후 지구로 귀환한 물곰들에게 수분을 제공하자 일부가 살아났다. 진공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 치명적 방사선에 견딘 생명체는 물곰 이전에 이끼와 박테리아밖에 없었다. 동물로는 물곰이 최강인 셈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지구에 사는 동물 중 외계 생명체로 가장 적합한 후보’로 물곰을 꼽았다.

현미경으로 물곰을 보면 사진처럼 화려한 색이 보이지 않는다. 물곰은 몸이 투명해 뱃속이 훤히 보인다. 드카르발로 소장은 여러 가지 형광 색소로 각각의 장기를 다르게 염색하고 현미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물곰이 화려한 색으로 탈바꿈하면서 장기들이 두드러졌다.

올림푸스 현미경 사진전 글로벌 대상 아이나라 핀토르의 '쥐 해마'./올림푸스

 

올림푸스 현미경 사진전의 글로벌 대상은 색이 더 화려하다. 스페인 바스크대 생물리연구소의 박사과정에 있는 아이나라 핀토르 연구원은 생쥐의 뇌를 얇게 자른 다음 형광 색소로 염색했다. 핀토르 연구원은 “생쥐 뇌에는 7000만개의 뉴런이 있다”며 “이번 사진은 뇌의 기억 중추인 해마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사진에서 신경세포인 뉴런은 녹색으로 보이고. 세포의 핵은 파란색, 지방은 붉은색으로 보인다.

올림푸스 현미경 사진전 우수상 미국 냇 프루넷의 '애기장대 꽃봉오리'./올림푸스

 

 

올림푸스 현미경 사진전 우수상 대만 밍-더 린의 '기생벌의 알'./올림푸스

 

붉은색 헤드기어를 쓴 권투선수 같은 사진은 우수상을 받은 냇 프루넷(미국)의 사진으로, 식물 실험에 많이 쓰는 애기장대의 꽃봉오리를 형광 염색한 모습이다. 또 다른 우수상은 밍-더 린(대만)이 찍은 기생벌의 알 사진이다. 이 기생벌은 식물의 줄기에 알을 낳는데, 종양처럼 부푼 충영(蟲癭·벌레혹) 안에서 애벌레들이 자란다.

 

 

조선일보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0.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