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경 스님 "기도형 종교,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 온다"

해암도 2019. 7. 8. 08:42
질의 :현대인은 갈수록 종교에 관심이 없다. 이유가 뭔가.  
 
응답 :“전통적인 종교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다. 가령 옛날에는 장례 의식이 종교의 영역이었다. 출생과 결혼, 그리고 죽음. 그런 인간 삶의 통과의례가 모두 종교 영역이었다. 요즘은 다르다. 사람들은 이제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의사가 사망확인서를 발급하고, 장례도 병원에서 치른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사찰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질의 :새로운 방향이라면.  
 
응답 :“지금껏 사찰 운영은 현실적으로 기도와 제사에 많이 의지해 왔다. 이제 그런 ‘기도형 종교’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질의 :그럼 지금까지 ‘기도형 종교’는 왜 통했나.
 
응답 :“기도는 부처님이나 하느님에게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소망하는 것이다. 1970년대의 경제 성장, 80년대와 90년대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거치면서 소망하는 바들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급속한 경제 성장은 옛날이야기다. 이제는 경제 성장도 둔화되고, 기도도 시들해지고 있다. 예전처럼 기도를 해도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다. 그러니 ‘기도형 종교’가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진다.”
인경 스님이 목우선원에서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인경 스님이 목우선원에서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인경 스님은 “옛날에는 대가족 사회였다가 핵가족 사회가 됐다. 이제는 핵가족 시대도 무너지고 있다”고 짚었다. “제 할머니는 12명을 낳았다. 어머니는 6명을 낳았다. 나는 자식이 없다. 1인 가구다. 사회적으로도 인구 절벽이 오고 있다. 25년 후에는 우리 사회의 36% 이상이 1인 가구라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은 갈수록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진다. 동시에 소외감과 외로움, 불안감도 커진다. 학교 갔다가, 직장 갔다가 돌아오면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이러한 사회적 변동이 종교에게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질의 :그게 어떤 역할인가.
 
응답 :“현대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무엇 때문인지 아나. 그들이 종교에 기대하는 가장 절실한 게 뭔지 아나. 깨달음이나 해탈, 혹은 구원 같은 궁극적 지향이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이다. 저 역시 도심의 선원에서 그걸 찾기 위한 모험과 실험을 하고 있다.”
 
인경 스님의 실험, 그 핵심은 ‘명상’이다. “이제는 종교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뭔가를 예전처럼 대규모로 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소규모의 개인적인 맞춤형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자기 아픔이나 불안을 나누며 소통하는 활동 중심의 운영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실질적 명상 중심의 종교 활동이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40~50년 후에는 이런 부분이 훨씬 더 많이 요청되지 않을까.”  
 
질의 :명상은 ‘마음의 휴식’을 뜻하나.  
 
응답 :“10년 전만 해도 ‘휴식형 명상’이 많았다. 세상이 하도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으니까 ‘템플스테이나 산사에 가서 마음의 휴식을 좀 취하자’는 식의 명상이었다. 요즘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명상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직장 내 문제, 가족 내 문제, 진로 문제, 이성 문제 등을 말이다. 기존의 ‘기도형 종교’로는 현실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 이제는 종교가 거기에 답을 해줘야 한다. ”  
목우선원에 놓여 있던 명상 도구. 인경 스님은 "현대인의 현실적 문제에 대해 종교가 이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목우선원에 놓여 있던 명상 도구. 인경 스님은 "현대인의 현실적 문제에 대해 종교가 이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질의 :‘기도형 종교’는 왜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나.
 
응답 :“기도는 마음의 평화나 위안을 준다. 그러나 현실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나 현실에 대한 통찰을 직접적으로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그 점에서 명상은 마음의 안정도 주고, 현실 문제에 대한 해법도 직접적으로 터치한다.”
 
질의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응답 :“50대 남성인데 항상 팔이 아팠다. 병원에 가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아파서 마사지도 받고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러다 명상을 하면서 아픈 부위에 집중했다. 그랬더니 6살 때 기억이 떠올랐다. 집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윗목에 누워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무척 사랑했다. 6살 아이는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려 했고, 어머니와 친척들은 아이의 팔을 잡고 말렸다. 아이는 울면서 가려 하고, 사람들은 뒤에서 팔을 잡아당겼다. 밀고 당기는 와중의 통증이었다. 그게 어깨의 통증이었다.”
 
질의 :일종의 트라우마다. 어떻게 해결했나.
 
응답 :“그 남성은 명상을 통해 기억 속 당시 풍경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자신이 방해받고 거부당한 상황에 충분히 머물고, 충분히 느끼고, 충분히 바라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팔의 통증은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과 연결돼 있었다. 그렇게 명상을 마치자 수십 년간 저리던 팔의 통증이 사라졌다. 명상을 지도하던 나도 놀랐다. 마음과 몸이 정말 둘이 아님을 그때 실감했다.”
인경 스님이 마음과 명상의 이치를 찻잔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인경 스님이 마음과 명상의 이치를 찻잔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인경 스님은 “이제 정해진 장소와 정해진 시간에 모이는 ‘거주형 종교’의 시대는 가고 있다. 거주형 사찰, 거주형 영성, 거주형 기도는 쪼그라들 거다. 대신 각 개인에게 필요한 걸 건네는 ‘맞춤형 사찰’‘맞춤형 교회’로 바뀌지 않을까. ‘거주형 종교’ 대신 ‘명상형 종교’‘순례형 종교’가 대세가 되지 않을까”라고 진단했다. 이어서 그는 “음식도 옛날에는 다 같이 모여서 먹어야 맛있다고 했다. 요즘은 어떤가. 인터넷으로 배달을 시켜서 혼자 먹는다. 사람들은 대가족 제도하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어릴 적부터 혼자 있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거주형 종교’보다 ‘명상형 종교’를 더 편하게 여긴다. 혼자서도 할 수 있고,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도 손 쉽게 할 수 있으니까. 정해진 요일에 정해진 장소로 굳이 가지 않아도 되니까”라고 설명했다.  
 
인경 스님은 명상이 심리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현관문을 잠갔는데도 자꾸 확인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려고 누우면 자꾸 문 생각이 난다고 했다. 안 잠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니까.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워했다. 결국 일어나 가서 확인하고, 또 일어나 가서 확인했다. 그분도 명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질의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했나.
 
응답 :“현관문까지 걸어갈 때 정신없이 가지 말라고 했다. 천천히 움직이면서 내 행동을 알아차리라고 했다. 문을 잠글 때도 천천히 ‘내가 문을 잠그고 있구나’ 생각하고, 돌아올 때도 ‘내가 발걸음을 떼서 안방으로 돌아가고 있구나’ 알아차리라고 했다. 그렇게 자리에 누우면 또 현관문이 생각난다. 그럼 자신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이건 생각일 뿐이야. 나는 아까 문을 잠그고 왔어. 이건 사실이 아니야.’ 현관문으로 천천히 걸어갈 때는 나의 행동을 알아차리고, 누워서는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을 알아차리는 거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지 사실이 아님을 알게 하는 식이다. 그리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호흡을 하다 보면 졸음이 온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했더니 불안감이 없어지더라.”  
인경 스님은 "불교의 명상은 신비주의가 아니라 과학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인경 스님은 "불교의 명상은 신비주의가 아니라 과학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질의 :인경 스님은 처음에 왜 기도와 제사가 아니라 명상에 방점을 찍게 됐나.
 
응답 :“불교학을 공부했는데 모두 문헌학이더라. 과거 문헌에 너무 천착해 있고, 현대의 시대적 흐름에 응답을 못 하더라. 한마디로 과거에만 매여 있더라. 현실의 요청에 대한 대응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럼 대안이 뭘까. 명상이었다. 그렇다고 신비주의로 흘러선 곤란하다. 명상은 과학이어야 한다. 이건 기도와 제사를 중시하는 기존의 사찰에서 하는 방식과 다르다. 그래서 도심에 선원을 꾸려 독립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9.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