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냥, 열 두 살의 어린 나이에 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소심하고 어린 영화광이었습니다.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질 날이 올지는 상상도 못했습다, 메르시, 메르시 보꾸(프랑스어로 감사하다, 대단히 감사하다)."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역사가 벌어졌다.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손에 쥔 봉준호(50) 감독은 이렇게 수상소감을 마무리했다. 25일(현지시간) 저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그는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황금종려상은 칸영화제 최고상. 한국영화의 수상은 사상 처음이다.
최고 권위 칸영화제 최고상
한국영화 수상은 사상 처음
이날 폐막식의 마지막 순서로 황금종려상 수상자에 호명되자 봉준호 감독은 프랑스어로 "메르시"(감사하다)하고는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불어 연설은 준비 못했지만 언제나 프랑스 영화에서 감명을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감을 준 앙리 조르주와 클로드 샤브롤, 두 분께 감사드린다"며 수상소감을 이어갔다. 이번 영화에 대해서는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되게 큰 영화적 모험이었다.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작업을 가능케 해준 건 저와 함께해준 아티스트들 덕분"이라며 홍경표 촬영감독, 이하준 미술감독, 최세연 의상감독 등을 언급했다.
특히 "무엇보다 '기생충'은 위대한 배우가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지 못할 영화였다. 감사드린다"며 "이 자리에 함께해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 송강호 배우의 멘트를 이 자리에서 꼭 듣고 싶다"며 송강호를 무대 위로 청하기도 했다.
'기생충'은 가족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와 IT 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네, 사는 형편이 극과 극으로 다른 두 집안이 뒤얽히는 이야기. 지난 21일 칸영화제 현지에서 열린 공식 상영은 웃음과 환호가 뜨거웠다. 해외 언론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앞다퉈 호평을 내놨다. 각국 평론가 10명이 참여하는 '스크린데일리'의 평점에서도 올해 경쟁작 중 가장 높은 점을 얻었다.
한국영화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이 처음 초청된 이후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감독상,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심사위원상,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받았다. '기생충'의 수상으로 한국영화는 칸영화제에서 9년만에 본상을, 그것도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제72회 칸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수상작과 수상자
황금종려상: ‘기생충’(한국) 봉준호 감독
심사위원대상: ‘아틀란티스’(세네갈) 마티 디옵 감독
남우주연상: ‘페인 앤 글로리’(스페인) 안토니오 반데라스
심사위원상: ‘레미제라블’(프랑스) 래드 리 감독
‘바쿠라우’(브라질) 클레버 멘돈사 필로 & 줄리아노 도르넬레스 감독
감독상: ‘영 아메드’(벨기에) 장 피에르 다르덴 & 뤽 다르덴 감독
여우주연상: ‘리틀 조’(오스트리아) 에밀리 비샴
각본상: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프랑스) 셀린 시아마 감독
특별언급: ‘잇 머스트 비 헤븐’(프랑스) 엘리아 슐레이만 감독
프랑스 칸=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9.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