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봐서는 빤한 내용 같았다. 심심풀이로 봤는데 어이쿠 하고 고개가 숙여졌다.
1970년 이탈리아 중부 내륙에 사는 미르코는 호기심 많고, 또래들을 잘 이끄는 진취적인 성격에다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소년인데, 열 살 때 아버지의 엽총을 구경하다가 오발 사고로 시력을 잃는다. 그 당시 이탈리아의 시각장애인은 일반학교 대신 장애인학교에 들어가 단순 기술을 배워야 했다. 갑자기 닥친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한 미르코는 마음의 문을 닫고 문제아 노릇을 자처한다. 하지만 담임교사는 “왜 음악가들이 연주할 때 눈을 감는지 아니? 음악을 더 깊이 느끼기 위해서야. 너는 오감을 사용할 수 있어”라며 미르코를 격려한다.
우연히 녹음기를 접하게 된 미르코는 세상 모든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직접 자연의 소리를 만들어내며 소리의 세계에 빠져든다. 하지만 교장 선생은 미르코의 재능을 부정하며, 장애인임을 잊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고 꾸짖는다. 교장은 청년 시절에 시력을 잃었기에 많은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에 굴하지 않고 겁 없이 시도하는 미르코를 볼 때마다 미리 자포자기했던 자신이 후회스러워 미르코를 인정하지 않는다.
미르코는 극장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친구들을 부추겨서 영화를 보러 간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관객과 어울려 박장대소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자신의 눈이 정상이라면 지금보다 더 즐겁게 볼 텐데 하며 옆자리 관객을 부러워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며 환호했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는 “고통과 영광은 세트 메뉴가 아니다”라고 했다. 신이 영광을 미리 안배해 놓고 고통을 주는 게 아니라 고통 후에 나락으로 떨어질지, 더 높이 치솟을지를 고통받는 자의 결단에 맡긴다는 거다. 그 고통이 걸림돌이 될지, 디딤돌이 될지는 돌을 마주한 자에게 달려 있다. 미르코가 교장처럼 자신의 장애를 미워하며 스스로 한계를 정해 버렸다면 어쩔 뻔했는가? 이 영화는 실화다. 1961년생인 미르코 멘카치. 그는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향전문가다. 클래식에서 팝까지, 예술영화에서 상업영화까지 아우르고 있다. 자전적인 이 영화에서도 음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