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이 끝나고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 기자실로 들어오자 많은 해외 기자가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새로운 역사와 봉 감독의 발언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이것은 정말 미친 일이야(It’s really f***ing crazy)”라고 말하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봉 감독은 15분가량의 공식 기자회견을 마치고 장소를 이동해 한국 기자들과 따로 만났다. 공식 기자회견과 한국 언론 대상 기자회견에서 나온 봉 감독의 말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내가 평소 이상한 사람이다. 평소 하던 대로 했던 것뿐인데 상이 주어졌다. 너무 놀라서 아직도 얼떨떨하다. 곧 꿈에서 깰 것 같은 느낌이다.”
“‘옥자’(2016)를 한미 공동 제작으로 만든 적이 있다. 공동 제작보다 한국적으로 제작진을 꾸려서 했더니 여러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보면서 제 주변, 가까운 것을 들여다봐야 세계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옛날부터 존경해 온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후보에 오르고도 번번이 오스카를 받지 못하는 걸 보고 나까지 답답했던 적이 있다. 그가 ‘디파티드‘(2006)로 오스카 작품상 등을 받았을 때 환호했다. 나는 그런 감독분과 함께 (작품상 감독상) 후보가 된 것 자체만으로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누구보다 김기영(1919~1998) 감독을 꼽고 싶다. 그는 한국 영화계의 대단한 거장이다. 그의 영화가 마틴 스코세이지 재단을 통해 디지털로 새롭게 소개되기도 했다. 일본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 구로사와 기요시, 대만 뉴웨이브 감독 후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등 그들의 아름다운 영화 언어가 큰 영향을 줬다.”
“어제 인디펜던트 스피릿상 시상식에서도 아시아 영화가 작품상을 받았다. 아시아 유럽 그런 경계, 구획을 나눌 필요가 없다. 자체로 영화가 설득력이 있으면 그런 구분은 아무 문제가 없다. 우리는 그저 영화를 만들 뿐이고, 우리는 그저 같은 영화인일 뿐이다.”
“당황스럽다. 아직 실감이 안 나고.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리의 시간을 갖고 싶다. 작품상을 받으면서 ‘기생충’ 배우와 스태프가 마지막에 무대로 올라가 마무리할 수 있어 좋았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부터 시작된 긴 여정이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네 번째 무대에 오르니 좀 민망하기도 하고, 다른 분이 말했으면 해서 나는 빠졌다. 술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너무나 많은 시상식에서 20~30번 수상 소감을 밝혔다. 막바지에 오니 소감 밑천이 바닥났다. 하다 하다 술 이야기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8월 오스카 경쟁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텔루라이드영화제 이후 5개월 반이 지났다. ‘기생충’ 촬영보다 길게 홍보 활동을 했다. 이것이 마침내, 좋게 끝나 술 한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 감독상을 받으러 무대에 올라갔는데, 그 많은 영화인 중 스코세이지와 눈이 마주쳤다. 위치를 몰랐는데, 다른 후보 감독들과도 순식간에 눈이 마주쳤다. 너무 존경하는 스코세이지를 의자에 앉히고 상을 받는 게 비현실적이었다.”
“일찍 자라고 말해 주고 싶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건강에 다양한 문제가 생겼다.”
“지난달 5일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말한 후 거의 한 달이 지났다. 지금 와서 천천히 생각해 보면 때늦은 발언이었다. 이미 장벽이 허물어져 있었다. 북미 관객이 ‘기생충’에 열성적인 호응을 보일 때 말이다. 요즘 세상은 유튜브 등으로 모두가 연결됐다. 그래서 ‘기생충’도 훨씬 쉽게 뜨거운 관객 반응을 받은 듯하다. 오늘 이런 좋은 일이 있어서 언어, 자막 장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이 모든 좋은 사태가 벌어지기 전, 재작년부터 준비하는 영화 2편이 있다. 하나는 한국어로 만들어지며,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다룬다. 다른 하나는 영어 영화로 규모가 크지 않다. ‘기생충’ 규모다. 2016년 런던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로스앤젤레스=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입력 202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