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의 명곡 ‘킬로만자로의 표범’에는 “나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요즘 한국에 ‘귀뚜라미를 사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다만 ‘가을 전령사’라는 낭만적 관점보다는 인류의 미래 식량이라는 식품영양학적 관점에서다.
전주의 귀뚜라미 사육장 갔더니
가을 전령사, 1년 내내 울어
한국 실정 맞는 곤충은 귀뚜라미
혐오감 탓, 식품보다 기능성 제품
200억대 투자사기 등 피해 급증
불과 2년 남짓 시장, 판로 개척 관건
원래 귀뚜라미의 생존 사이클은 4~10월(6개월)이다. 성충이 된 수놈은 초가을에 짝짓기를 위해 낭랑한 소리로 울어댔다. 요즘엔 사시사철 운다. 생존 사이클을 최대 35~40일로 단축시켜 연중 대량 사육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다. 단백질이 풍부한 귀뚜라미가 국내에서 식품(먹거리) 일반 원료로 지정된 건 불과 2년여 전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0년까지 식용 곤충 산업의 시장 규모가 7000억~1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장밋빛 전망은 현실과 부닥친다. 곤충은 혐오식품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농가나 귀농인들을 상대로 한 투자 사기도 빈발한다. 갈림길에 서 있는 식용 곤충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지난달 찾은 전주의 공기는 푹푹 쪘다. 송광사 인근에서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들자 가건물들이 여럿 나타났다. 귀뚜라미 벤처기업인 ‘239 바이오’의 이삼구(54) 대표가 운영하는 대량 사육 연구동들이다. 비닐하우스처럼 생긴 시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온몸에 열기가 훅 달려든다. 이 대표는 “좀 덥고 음지를 좋아하는 귀뚜라미를 위해 온도를 28~30도로 유지하고 실내를 어둡게 했다”고 설명했다. 전장 9m, 높이 2.7m의 공간에선 귀뚜라미가 떼를 지어 개망초와 호박잎, 쌀겨 등을 먹느라 분주했다. 다소 무식한 질문부터 던졌다.
- 질의 :귀뚜라미가 전부 몇 마린가.
- 응답 :“귀뚜라미는 개체 수가 아니라 단위면적당 무게로 계산한다. 암컷과 수컷의 평균 무게는 1g인데 사업성을 판단할 때 한 칸에서 15kg(1만5000마리)이 나오면 성공이다. 세 칸에서 45kg 생산하면 대량 사육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농가에는 고수익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사육 시설에는 가정에서 흔히 쓰는 계란판들이 독특한 형태의 수직 구조로 세워져 있고 수용성 비닐이 둘러처져 있었다. 이 대표는 “수십차례 실험 끝에 고안해낸 최적의 귀뚜라미 사육 환경으로 특허까지 받은 영업비밀”이라고 귀띔했다. 대화 도중에 귀뚜라미들이 이쪽저쪽에서 울어댔다. “수놈이 구애를 하는 소리다. 연애를 하고 싶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식용으로 ‘식품공전’에 등재한 곤충은 총 7종이다. 누에 번데기, 메뚜기, 백강잠(죽은 회색 누에로 한약재로 쓰임), 갈색거저리 유충(밀웜, 고소애), 쌍별 귀뚜라미(쌍별이), 흰점박이꽃무지 유충(꽃벵이), 장수풍뎅이 유충(장수애)다. 이중 쌍별이가 한국 실정에 가장 맞는 식용곤충이라고 한다.
“얘들은 소와 염소가 먹는 호박잎, 개망초꽃, 칡 잎사귀 및 줄기, 씀바귀, 쌀겨 등을 다 먹는다. 우리 산야에 널려 있는 약초 등이 그대로 천연 사료가 된다. 농가의 가장 큰 부담이 비싼 사료 값이다. 밀웜, 굼벵이 등과 달리 유일하게 귀뚜라미만 사료를 수입해 쓸 이유가 0.00001%도 없다.”
- 질의 :왜 메뚜기가 아니고 쌍별 귀뚜라미인가.
- 응답 :“귀뚜라미는 메뚜기목 귀뚜라미과, 메뚜기는 메뚜기목 메뚜기과로 유사하다. 그런데 성향이 다르다. 귀뚜라미는 골격이 약해서 잘 뛰지 않는다. 가만히 그 자리에서 먹고 자란다. 반면 외골격이 튼튼한 메뚜기는 엄청 많이 먹고 한 번에 1.5m 정도 점프하고 5~6m까지 날아간다. 운동성이 커서 밀집 사육이 불가능하다. 겨울에 추우면 먹질 않는다. 난방비가 많이 들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또 메뚜기는 설사 때문에 날개와 다리는 떼고 먹어야 한다. 귀뚜라미는 노인 치매 환자의 우울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게 실험적으로 증명이 됐다.”
- 질의 :다른 곤충은 어떤가.
- 응답 :“직접 12가지 곤충을 모두 비교, 연구한 적이 있다. 누에, 메뚜기, 지렁이, 굼벵이, 개구리, 새우, 다슬기 등이다. 지렁이를 키우려면 소똥으로 키워야 한다. 2012년께 집 서재에서 창문을 밀폐하고 소똥을 가져다 지렁이를 키우는 실험을 했는데 위생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여름 폭서기 사나흘 동안에 녹아서 죽거나 겨울 혹한기에 얼어 죽기도 했다. 굼벵이는 사료가 문제다. 일손이 많이 가 경제성도 떨어진다. 우리나라 소 키우는 농가가 망한 이유와 같다. 사료 장사만 돈 버는 구조다. 굼벵이가 처음엔 kg당 25만원이었지만 지금은 6만원도 안 간다.”
갑자기 이 대표가 손으로 1㎝ 크기의 귀뚜라미를 한 마리 잡더니 만져보라고 했다. 피부 촉감이 매끄러웠다. 그 사실을 알고 화장품 제조 연구를 시작해 특허를 받고 시제품도 개발한 상태란다.
그는 20여명의 귀뚜라미 사육 사업자들과 전량 수매 조건의 계약을 맺고 자신의 특허 기술을 이전, 대량 생산하고 있다. 외국에선 연간 3~4사이클(90일)을 돌리는데 이 대표는 기간을 단축(35~40일)해 대량사육 특허를 받았다. 농업진흥청 발표에 따르면 귀농귀촌인들의 노지 100평당 평균 연 소득은 40만원이고 가장 고수익 업종인 파프리카의 경우 100평당 530만원이다. 그에 견줘 귀뚜라미는 연 소득이 1억~1억5000만원이니 파프리카의 20배 이상 고소득이라는 것이다. 김용욱 한국식용곤충연구소 대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축산물에 비해서 7배 이상 적고 물 소비량도 매우 적다”며 “농가에서 볼 때 혁명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식용 곤충 시장은 잇단 투자 사기 사건과 특허권 관련 소송전이 뒤얽혀 뒤죽박죽이다. 이 대표는 전북대 겸임교수직까지 내던지고 6년 이상 한 우물을 팠지만 영업비밀과 기술 유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때 동업을 했던 충남의 최모·서모씨, 제주의 전모씨 등을 상대로 3년째 10여건의 민형사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최씨의 경우 사업 계약을 맺고 기술 이전을 해 줬더니 대량 사육 영업비밀을 SNS 등에 게시해 삽시간에 퍼뜨렸다. 어쩔 수 없이 2015년 영업비밀보호법 위반 등으로 고소했다.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으나 서산지원은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 대표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증거 자료 2000장을 모아 제출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며 “이럴 거면 영업비밀을 무단으로 갖다 쓰고 몇백만원 벌금을 내지 뭣 하러 열과 성과 땀을 들여 제대로 연구를 하느냐”고 억울해했다.
그는 20여명의 귀뚜라미 사육 사업자들과 전량 수매 조건의 계약을 맺고 자신의 특허 기술을 이전, 대량 생산하고 있다. 외국에선 연간 3~4사이클(90일)을 돌리는데 이 대표는 기간을 단축(35~40일)해 대량사육 특허를 받았다. 농업진흥청 발표에 따르면 귀농귀촌인들의 노지 100평당 평균 연 소득은 40만원이고 가장 고수익 업종인 파프리카의 경우 100평당 530만원이다. 그에 견줘 귀뚜라미는 연 소득이 1억~1억5000만원이니 파프리카의 20배 이상 고소득이라는 것이다. 김용욱 한국식용곤충연구소 대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축산물에 비해서 7배 이상 적고 물 소비량도 매우 적다”며 “농가에서 볼 때 혁명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식용 곤충 시장은 잇단 투자 사기 사건과 특허권 관련 소송전이 뒤얽혀 뒤죽박죽이다. 이 대표는 전북대 겸임교수직까지 내던지고 6년 이상 한 우물을 팠지만 영업비밀과 기술 유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때 동업을 했던 충남의 최모·서모씨, 제주의 전모씨 등을 상대로 3년째 10여건의 민형사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최씨의 경우 사업 계약을 맺고 기술 이전을 해 줬더니 대량 사육 영업비밀을 SNS 등에 게시해 삽시간에 퍼뜨렸다. 어쩔 수 없이 2015년 영업비밀보호법 위반 등으로 고소했다.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으나 서산지원은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 대표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증거 자료 2000장을 모아 제출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며 “이럴 거면 영업비밀을 무단으로 갖다 쓰고 몇백만원 벌금을 내지 뭣 하러 열과 성과 땀을 들여 제대로 연구를 하느냐”고 억울해했다.
2017년 8월에는 부천 소사경찰서가 200억대 귀뚜라미 투자사기 사건을 적발해 17명을 사법처리했다. 이 사건으로 은퇴한 노인 등 650명이 201억원의 피해를 봤다. 이른바 ‘알(종충) 분양사기’였다.
최근에는 일본 수출이 미끼가 됐다. A사 등 2~3개 업체는 지난해 농민들에게 “연간 60t씩 5년간 185억원 어치를 일본에 수출한다. 귀뚜라미를 kg당 6~7만원에 살테니 투자를 하라”고 했다. 수출은 성사되지 않았다. 여기에다 정부의 영농지원금도 눈먼 돈이다. 농림부는 곤충시설 현대화 작업에 매년 250억~300억 정도를 쓴다.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1인당 2000만~2500만원의 보조금도 지급하지만 사후 관리가 허술하다. 업계에서는 “총 2000억대 규모의 투자 사기로 시장이 곪아가고 있다. 조만간 폭탄이 터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곤충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귀뚜라미 사육·분양을 전문으로 하는 ‘창센터’(서울 중랑구) 김계영 본부장은 “귀뚜라미가 2016년 3월에 식품 원료로 허가 난 뒤 그해 말부터 붐이 일어 100% 수매 조건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대기업이 투자를 주저하는 등 판로가 막혀 있어 굉장히 많은 농가들이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산업과 황재삼 연구관은 “다양한 기능성 제품이 나와서 수익과 연계돼야 하는데 식품 원료로 등록된 지 불과 2년여밖에 안 돼 시장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지역 클러스터 사업을 추진해 소비를 활성화하고 영세한 사육농가의 규모를 키우며 해외 수출을 권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곤충산업계도 당장의 미래 식량보다는 곤충의 특성을 이용해 기능성 제품 개발에 주력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다.
조강수 논설위원 [중앙일보] 입력 2018.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