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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 소헤일라 얄파니는 스타트업 전문 컨설턴트입니다. 세계 각지의 비즈니스·여행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도 운영하죠. 사업 영역이 워낙 넓다 보니 통합적으로 관리할 거점을 물색했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에스토니아였답니다. 그는 이레지던시(e-Residency)를 발급받아 이곳에서 회사를 열었죠. 그는 “내가 에스토니아에 머물지 않아도 은행·세금 업무를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며 “유럽연합(EU)에 속해있다는 것 역시 큰 이점”이라고 말합니다.
세계 최초 전자시민권 e-Residency
도입 3년 만에 154개국 3만3428명 신청
5000명이 실제로 에스토니아에 법인 설립
사무실, 현지 관리자 없이 온라인 창업
이익 재투자하면 법인세 면제 혜택
1월 발급센터 설립, 서울서도 받을 수 있어
![눈 덮인 탈린 구시가지 전경. 중세 시대 모습을 잘 보존한 이 구시가지 외곽에선 디지털 혁명이 진행 중이다. 에스토니아는 올해 1인당 GDP 2만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장원석 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3/25/fa01a689-437d-4cb7-95b0-10743c5d60a2.jpg)
눈 덮인 탈린 구시가지 전경. 중세 시대 모습을 잘 보존한 이 구시가지 외곽에선 디지털 혁명이 진행 중이다. 에스토니아는 올해 1인당 GDP 2만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장원석 기자]
엘라 로마노스는 영국의 한 게임회사 이사입니다. 이 회사의 비디오 게임은 유럽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죠. 그는 2016년 6월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 투표 이후 이레지던시를 발급받았습니다. 브렉시트가 혹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아 미리 대비한 거라네요. 로마노스 이사는 “이레지던시에 가입하는 건 매우 쉽고, 창업 절차 역시 간단하다”며 “언제 사용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더라도 일단 가입해둘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레지던시는 에스토니아 정부가 발행하는 전자시민권입니다. 인구가 130만 명에 불과한 이 작은 나라는 전 세계인이 에스토니아를 찾아주길 원하죠. 그래서 2014년 국경의 벽을 과감히 허무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단 100유로(약 13만원)만 내면 누구나 에스토니아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이 시민권이 있으면 온라인으로 창업할 수 있고, 에스토니아에 머물지 않아도 정부가 제공하는 행정 서비스를 누릴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에 필요한 은행 업무나 온라인 결제도 가능합니다. 꼭 현지에 사무실을 차리거나 현지 관리자를 둘 필요가 없습니다. EU 내 기업 금융이나 결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 사업 영역을 EU 내 다른 시장으로 확대하는 것 역시 가능하죠. 이익을 재투자하면 법인세도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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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정부는 ‘Focus on your passion, not paperwork(서류 작업이 아닌 당신의 열정에 집중하라)’라는 구호를 앞세워 전 세계 창업자를 공격적으로 흡수하고 있습니다. 만 3년밖에 안 됐지만 전 세계 154개국, 3만3438명이 이레지던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약 6분의 1인 5033명이 에스토니아에 실제로 법인을 세웠죠.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레지던시 카드는 각국 에스토니아 대사관에서만 발급됐습니다, 한국엔 에스토니아 대사관이 없어 이걸 받으려면 한국 대사 업무를 겸임하는 일본으로 가야 했죠. 그러나 올 1월 서울에 별도의 발급센터가 생겨 이런 불편을 덜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이레지던시를 발급받은 한국인은 약 230명. 대사 관계가 없는 나라 중엔 가장 많다네요. 저도 그중 한 명이 돼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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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은 여권과 해외 결제가 가능한 카드, 여권 사본(파일), 증명사진(파일)입니다. 첫 단계로 홈페이지(https://apply.gov.ee)에 접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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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개인정보를 입력하는데 이름과 생년월일, 성별, 국가만 입력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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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주소를 입력합니다. 네이버의 주소 영문 변환기를 이용하면 편리합니다. 이메일과 전화번호도 입력하는데 010에서 앞자리 0을 빼는 건 센스. 맨 아래 ‘수령장소(Pick-up location)’를 묻는 말엔 서울(Seoul)을 고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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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여권정보를 입력할 차례입니다. 여권번호와 발행기관, 유효기간을 순서대로 입력하는데 발행기관은 외교부 영문명(Minister of Foreign Affairs)을 쓰면 됩니다. 그런 다음, 여권 사본 파일과 증명사진 파일을 첨부합니다. 단 이때 파일의 크기가 1.3MB 이내여야 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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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지던시를 발급하는 이유를 묻는 말엔 ‘Fan of e-Residency’를 골랐습니다. 문법이 엉망이지만 구체적인 이유도 영어로 간단히 기재합니다. 정보의 정확성, 최종 의사 등을 묻는 말에 체크하면 결제창으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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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이레지던시의 공식 발급 수수료는 100유로. 카드 수수료를 포함해 101.99유로를 결제하라네요. 카드 번호와 유효기간, 이름 등을 입력합니다. 아래와 같은 화면이 뜨면 모든 절차가 완료됐다는 의미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저 같은 까막눈도 30분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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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카드를 수령하기까진 한 달가량 걸린다는군요. 그 사이 2번에 걸쳐 안내 메일이 왔는데 처음은 현지 정보 당국의 검증을 통과했다는 내용, 두 번째는 카드가 발급돼 한국으로 발송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진짜 약 한 달 만인 3월 20일 수령하러 오라는 이메일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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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영접한 이레지던스 실물입니다. 귀티 나는 검은색 키트 속엔 이레지던시 카드와 연결용 USB, 비밀번호가 포함된 서류 한장이 들어 있습니다. 발급 대행 수수료 3만7400원을 내고, 지문 인식까지 마치니 마침내 제 손으로 넘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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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만 확대하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카드를 연결용 USB에 넣고 컴퓨터에 꽂으면 곧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창업이나 계좌 개설도 간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유의사항은 없지만, 비밀번호가 포함된 서류를 잃어버리면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긴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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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는 에스토니아 시민이 됐습니다. 물론 아직 창업을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준비는 됐는데 사업 아이템이 없네요! 창업 안내와 정보는 홈페이지(https://e-resident.gov.ee/start-a-company)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단돈 15만원에 다른 나라 시민이 돼보는 경험 어떨까요?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8.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