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매진됐는데도 오전부터 긴 줄…
우주 떠돌게 된 두 男女 이야기
아름다운 화면과 재난 상황 대비… 경외와 공포, 인간의 죄책감 그려
토론토영화제 화제작 '그래비티']
우주 떠돌게 된 두 男女 이야기
아름다운 화면과 재난 상황 대비… 경외와 공포, 인간의 죄책감 그려
크리시 매스트로다니가 8일 오후 1시 45분에 토론토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캐나다 토론토의 프린세스 오브 웨일스 극장 앞에 도착했을 때 그 앞에는 30여명이 서 있었다. 그중에는 오전 11시 반부터 와서 기다린 이도 있었다. 모두 그날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를 보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 이미 티켓은 매진됐지만, 혹시라도 모를 빈자리를 구하기 위해 극장 앞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운이 좋아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면, 극장을 나서면서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7시간을 기다린 게 아깝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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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도 않는 무중력·무산소의 공포와 한바탕 싸우고 난 뒤에도 우주는 얄미울 정도로 고요하다. 진이 빠질 정도의 허탈함을 느낄 때쯤 조지 클루니가 맡은 우주비행사 맷은 실없는 농담을 툭툭 던지며 긴장을 풀어준다. ‘그래비티’는 꼭 3D로 봐야할 영화이며, 이왕이면 3D에 아이맥스까지 덧붙여 보면 더 좋다. /토론토영화제 제공
소리와 공기, 중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들이 무사히 지구에 귀환하는 과정이 영화의 전부일 정도로 이야기는 단순하다. 하지만 이를 감상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그래비티'에서 느끼는 쾌감은 죄책감을 함께한다. 어떤 자연재해에도 비할 수 없는 '우주'라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 생존하려는 인간을 보면서 그의 고난보다는 아름다움에 먼저 가슴이 먹먹해지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만 우주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랗게 빛나는 지구를 맴도는 우주인을 보여 주며 시작하는 영화는 15분간 압도적이다. 공포와 시각적 쾌감, 감동까지 모든 면에서 그렇다. 사고 때문에 스톤 박사와 망원경을 이어주는 끈이 떨어지자, 스톤 박사는 우주를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떠다닌다.
하얀 점이 되어 까만 공간으로 사라져가는 모습과 헬멧 안에서 그가 보는 우주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는 이 장면은 약간의 메스꺼움을 느낄 정도로 어지럽다. 소리가 없는 우주에서 그에게 들리는 건 오로지 자신의 들숨과 날숨소리밖에 없다. 우주라는 공간에 대한 공포와 경외(敬畏)가 동시에 몸을 짓누른다.
중력이 없다는 것은 몸의 움직임을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단 얘기다. 참혹하지만 동시에 가장 자유로운 상태이기도 하다. 우주와 우주선 속에서 발버둥을 치는 이들은 잘 짜인 안무에 따라 우아한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이뿐만이 아니라 온통 아이러니투성이다. 초록빛과 흙빛의 지구와 영겁의 어둠을 가진 우주, 주홍빛으로 지구를 감싸는 태양과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우주를 끊임없이 대비한다.
'우정 출연'에 가까운 조지 클루니의 짧은 출연 분량을 제외한다면 샌드라 불럭 혼자서 영화 전체를 이끌어간다. 대체 어떤 여배우가 부풀어오른 케이크 같은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헬멧 뒤에 얼굴이 조그맣게 보이는 역할을 덥석 맡으려 들까. 그 와중에 그는 무중력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절실한 희망을 동시에 표현해낸다. 뉴욕타임스가 평한 것처럼, 그는 "가장 배짱 좋은 할리우드 A급 여배우"다.
토론토(캐나다)=변희원 기자 조선 : 2013.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