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詩人들이 푹 빠진 영화… "다 내 얘기야"

해암도 2018. 1. 8. 06:57

짐 자무시 감독 영화 '패터슨'… 버스 기사의 詩作 과정 그려

김용택·나희덕·정끝별 시인 등 "시란 바로 이런 것" 찬사 줄이어

시(詩)를 다룬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패터슨'이 한국 시인들 사이 잔잔한 감동을 퍼올리고 있다. 이 영화는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서 공공 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하는 사내 패터슨의 일주일을 담았다. 그가 틈틈이 시작(詩作) 노트를 채우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시와 시인의 삶을 성찰한다.

패터슨은 운전을 하는 동안 승객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곤 영감을 얻어 숱한 시를 써놓지만 여태껏 시집 출간을 하지 않은 '예비 시인'이다. 그는 실제 패터슨에 살면서 시집 '패터슨'을 낸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1883~1963)를 존경하면서 시를 쓰기만 할 뿐이다.

6일 현재 3만8000명 관객이 든 '작은' 영화이지만, 영화를 본 시인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김명리 시인은 "두 번쯤 더 봐도 좋을 영화"라고 권했다. 권대웅 시인은 영화 대사 중 '물 위에 쓴 낱말일 뿐'을 인용하며 장문의 감상평을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우리가 매일 쓰고 말하고 듣고 보는 것조차 물 위로 흘러가는,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는 것들이야. 매일 왔다 가지만 붙잡을 수 없는 일상들. 그게 바로 시야."

시 쓰는 버스 기사의 일상을 담백하게 그린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패터슨’. 지난달 개봉해 3만8000명 관람객이 든 ‘작은’ 영화이지만 국내 시인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시 쓰는 버스 기사의 일상을 담백하게 그린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패터슨’. 지난달 개봉해 3만8000명 관람객이 든 ‘작은’ 영화이지만 국내 시인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린나래미디어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출연하기도 했던 김용택 시인은 전화 통화에서 "영화 '패터슨'은 다 내 얘기여"라며 입을 열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거나 하루하루의 반복에서 시를 얻는다. 시라는 게 멀리 여행 가서 얻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 형상화하는 것이니까." 나희덕 시인은 "시인을 다룬 영화를 보고 나서 기분 좋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다"고 했다. "기존 영화에선 시인을 너무 낭만적으로 그리거나 희화화(戲畫化)했는데 이 영화는 시인의 삶을 담담하게 과장 없이 그려내 마음에 들었다."

영화의 주인공이 쓴 시편들은 평이한 언어로 썼지만 만만치 않은 울림을 남긴다. 미국의 저명한 시인 론 패짓이 평소 친하게 지낸 짐 자무시 감독의 청탁을 받아 주인공 패터슨의 심정으로 쓴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 전문 사이트들에는 시 전문(全文)이 올라와 있다. 특히 시 '포엠'은 지하실에서 시를 쓰는 영화 주인공의 초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는 집 안에 있는데

 바깥 날씨가 좋다

 따뜻한

 태양이 찬 잔설(殘雪)에

 봄의 첫날

 혹은 겨울의 마지막 날


 내 다리는 계단을 달음질쳐 올라가

 문을 여는데

 내 상반신은 이곳에서 글을 쓴다."


 론 패짓은 시 읽기에 대해 "그저 읽으면서 체험하라"고 했다. "그 체험이 무엇인지 추론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단어들을 읽기만 해서 그 말들이 당신 속에서 생겨나게 하곤 무슨 일이 생기는지 바라보라"고도 권했다.

영화 끝부분에서 일본 시인이 주인공과 대화 를 나누다 "아하!" 하고 감탄사를 날리는 장면은 영화를 본 시인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영화 장면처럼 시인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수시로 "아하!"라는 탄성을 날린다는 것. 정끝별 시인은 "'아하!' 하며 감탄하는 일상의 순간이 바로 시임을 들키듯 들려주는 영화"라고 했다. "짐 자무시가 영화로 쓴 21세기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느낌이랄까?"



                   조선일보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입력 : 2018.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