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현재 3만8000명 관객이 든 '작은' 영화이지만, 영화를 본 시인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김명리 시인은 "두 번쯤 더 봐도 좋을 영화"라고 권했다. 권대웅 시인은 영화 대사 중 '물 위에 쓴 낱말일 뿐'을 인용하며 장문의 감상평을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우리가 매일 쓰고 말하고 듣고 보는 것조차 물 위로 흘러가는,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는 것들이야. 매일 왔다 가지만 붙잡을 수 없는 일상들. 그게 바로 시야."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출연하기도 했던 김용택 시인은 전화 통화에서 "영화 '패터슨'은 다 내 얘기여"라며 입을 열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거나 하루하루의 반복에서 시를 얻는다. 시라는 게 멀리 여행 가서 얻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 형상화하는 것이니까." 나희덕 시인은 "시인을 다룬 영화를 보고 나서 기분 좋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다"고 했다. "기존 영화에선 시인을 너무 낭만적으로 그리거나 희화화(戲畫化)했는데 이 영화는 시인의 삶을 담담하게 과장 없이 그려내 마음에 들었다."
영화의 주인공이 쓴 시편들은 평이한 언어로 썼지만 만만치 않은 울림을 남긴다. 미국의 저명한 시인 론 패짓이 평소 친하게 지낸 짐 자무시 감독의 청탁을 받아 주인공 패터슨의 심정으로 쓴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 전문 사이트들에는 시 전문(全文)이 올라와 있다. 특히 시 '포엠'은 지하실에서 시를 쓰는 영화 주인공의 초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는 집 안에 있는데
바깥 날씨가 좋다
따뜻한
태양이 찬 잔설(殘雪)에
봄의 첫날
혹은 겨울의 마지막 날
내 다리는 계단을 달음질쳐 올라가
문을 여는데
내 상반신은 이곳에서 글을 쓴다."
론 패짓은 시 읽기에 대해 "그저 읽으면서 체험하라"고 했다. "그 체험이 무엇인지 추론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단어들을 읽기만 해서 그 말들이 당신 속에서 생겨나게 하곤 무슨 일이 생기는지 바라보라"고도 권했다.
영화 끝부분에서 일본 시인이 주인공과 대화
를 나누다 "아하!" 하고 감탄사를 날리는 장면은 영화를 본 시인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영화 장면처럼 시인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수시로 "아하!"라는 탄성을 날린다는 것. 정끝별 시인은 "'아하!' 하며 감탄하는 일상의 순간이 바로 시임을 들키듯 들려주는 영화"라고 했다. "짐 자무시가 영화로 쓴 21세기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느낌이랄까?"
조선일보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입력 : 2018.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