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티벳에서의 7년>

해암도 2018. 8. 27. 15:05

 티베트‧라싸의 신비로움 세계에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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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상황과 맞물려 주목… 달라이 라마와 등반가 하러의 우정도 볼 만

티벳에서의 7년

티벳에서의 7년
(Seven Years In Tibet, 1997)

감독 장 자크 아노

출연 브래드 피트(하인리히 하러)


1939년, 임신한 아내를 뒤로한 채 히말라야의 최고봉 중의 하나인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에 합류한 오스트리아의 유명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브래드 피트). 원정 도중 등정에 실패, 하산했으나 마침 발생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군에 붙잡혀 포로가 된다. 이후 포로수용소를 탈출해 티베트의 수도 라싸로 도망을 가고, 그곳에서 제14대 달라이 라마에게 서방 문명에 대한 정보를 전해 주며 친분을 쌓게 된다.


그후, 중국을 장악한 공산정권이 티베트를 합병하고자 티베트 변경을 공격하는 등 험난한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티베트에서 7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신용관(이하 신) 이번 호에서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티벳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감독 장 자크 아노, 1997)을 다루고자 합니다.

김창호 대장(이하 김) 개봉 당시 티베트의 정치 상황을 묘사하는 등 여러 모로 주목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러닝 타임 2시간 10분의 긴 영화인데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지요.

장 자크 아노 감독은 움베르토 에코의 난해한 원작을 숀 코네리, 크리스찬 슬레이터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장미의 이름>(1986), 말 못하는 곰을 주인공으로 해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하는 등 국제적 성공을 거둔 <베어>(1988) 등 화제작을 만들었던 명장입니다.

원작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등반가였던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가 1944년부터 1951년까지 7년 동안 티베트에서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지요. 하러는 1939년 히말라야 최고봉의 하나인 낭가파르바트 원정 도중 등정에 실패, 하산을 했으나 마침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해 영국군에 붙잡혀 포로가 됩니다.

이후 포로수용소를 탈출해 티베트의 수도 라싸로 도망을 가는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쓰게 된 거지요. 라싸에서 하러는 제14대 달라이 라마에게 서방 문명에 대한 정보를 전해 주며 친분을 쌓게 됩니다.

이를 장 자크 아노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만든 겁니다. 하러 역을 당대 인기 배우인 브래드 피트에게 맡겼지요. 저는 책을 먼저 읽어서인지 영화에서 원작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영화는 티베트인들의 삶을 보여 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4대 달라이 라마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기도 하고요. 현재적 의미의 ‘달라이 라마Dalai Lama’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며 티베트의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실질적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주를 말합니다.

몽골어로 큰 바다를 뜻하는 ‘달라이’와 티베트어로 영적인 스승을 뜻하는 ‘라마’가 합쳐진 말이라고 합니다. ‘넓은 바다와 같이 넓고 큰 덕의 소유자인 스승’을 뜻하지요. 14대 달라이 라마는 텐진 가초Tenzin Gyatso로,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운 인물입니다. 1935년 티베트 암도 지방의 농가에서 출생했지요. 2세 때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로 인정받아 1940년 제14대 달라이 라마로 공식 취임했습니다.

영화에서는 간접적으로 언급되지만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가 중국군의 공격으로 중국에 병합되자 1959년 측근과 함께 인도로 탈출, 다람살라에 망명정권을 수립하지요.

이후 다람살라의 망명정부는 티베트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고,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아 1989년 달라이 라마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티벳에서의 7년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를 보여 주며 시작한 영화는 1939년 히틀러가 지배하고 있는 오스트리아로 돌아옵니다. 당시 독일은 낭가파르바트를 ‘우리 산’이라 부르며 국가적 총력을 기울여 정상 정복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4차례의 실패로 11명이 희생될 정도로 참담했었지요. 그 원정대에 하러가 오스트리아인으로서 발탁된 겁니다.

하러는 만삭인 아내와 함께 출정식이 열리는 기차역에 도착하지만 별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기자들 앞에서 임신한 아내의 손을 잡고 번쩍 팔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보여 줌으로써 감독은 하러가 상당히 목표 지향적인 캐릭터임을 드러내고 있지요.

원작에는 하러의 아내나 친구 등 주변 상황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화에서는 드라마틱한 설정을 위해 집어넣은 듯하고요. 어쨌든 실제로 하러는 그 전 해에 아이거 북벽을 처음으로 오른 4인 중 하나였습니다. 촉망 받는 등반가였던 거지요.

이어서 낭가파르바트 등반 상황 때의 몇몇 에피소드가 묘사됩니다. 그해 7월 6,800m에 제4 캠프를 설치한 뒤 이미 한 달이 지나 있습니다. 제일 뒤에 오르던 하러는 미끄러져 10여 m를 추락하고 이때 발목에 피가 나는 부상을 입지요. 등반 때 피를 보는 부상을 입기도 합니까?

저는 30년 동안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아이젠이 벗겨지면서 창상을 입은 것으로 나옵니다. 원정대원이 상해를 입으면 바로 팀 전체가 모여 확인한 뒤 상처의 경중에 따라 베이스캠프에서 치료할 건지, 인근 마을 병원까지 후송할 건지, 아니면 간단한 응급조치 후 산행을 계속할지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러는 부상 자체를 대원들에게 숨기지요.

곧 이어 이번에는 원정대장 피터(데이빗 듈리스)가 미끄러지고 하러가 몸에 감은 로프로 지지해서 간신히 구하는데, 그 와중에 힘을 준 발목에서 피가 다시 솟아난 것을 원정대장이 발견하지요.

피터가 “한 번 더 부상 사실을 숨기면 원정대에서 빼버리겠다”고 하지요. 당연한 겁니다. 원정대 전체의 목숨이 대원 하나하나의 몸 상태와 직결돼 있으니까요.

원정대는 눈사태를 맞고, 텐트를 비롯한 장비들이 쓸려 내려가자 원정대장은 하산을 결정합니다. 하러는 2명만 붙여 주면 혼자서라도 올라가겠다고 우기지만 원정대장 피터가 “내 말은 명령”이라고 하자 하러도 받아들입니다.

당시 원정대는 군대식 보급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팀도 군대식으로 운영했고요. 체계적, 조직적, 강압적이었다는 얘기지요. 원정대장이 판단을 내려 명령하면 대원들은 무조건 복종해야 했습니다.

하산 길에 영 못마땅한 하러가 뒤로 처지자 셰르파 한 명이 달라이 라마 사진을 건네주며 “당신을 지켜줄 거다”라고 말하는데요. 셰르파들은 부적을 많이 소지하는 지요?

지금도 많이들 합니다. 2013년에 네팔로 원정을 갔는데, 탕보체 사원에서 라마 승려로부터 안전 등반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기도 했지요. 이를 힌디어로 ‘뿌자puja’라고 부릅니다. 우리말로는 ‘라마제祭’라 하지요. 셰르파 중에 티베트 출신 많습니다. 이들은 어린시절부터 목걸이 안에 조그만 달라이 라마 사진을 넣어 24시간 몸에 간직합니다. 집안에 달라이 라마 사진을 걸어 놓은 데도 많고요. 물론 요즘 힙합 듣는 젊은 셰르파들은 그런 거 안 합니다만.(웃음)

김 대장님도 혹시 부적 같은 거 갖고 가시는지요?

젊어서 혼자 다닐 때에는 불자인 어머니가 구해 준 금박 부적을 가져간 적이 있긴 합니다만, 이후부터는 원정길에 오를 때 금기도 안 만들고 특별한 상징물을 소지하지 않습니다. 얽매이고 신경 쓰이는 게 싫은 거지요.

원정대는 산에서 내려오다가 파키스탄 군인들에 의해 체포됩니다. 독일이 전쟁을 일으켰고, 파키스탄은 영국령이었던 까닭이지요.

티벳에서의 7년

산에서 바로 잡히는데, 영화적 설정이지요. 일반 군인들은 베이스캠프까지 못 올라가거든요.(웃음) 고소 적응과정을 거쳐야 하니까요. 책에서는 낭가파르바트에서 체포되는 게 아니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다음 원정을 위한 정찰 등반을 하다가 잡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들은 데라툰 포로수용소로 수용됩니다. 하러는 1940년 10월, 4번째 탈옥을 시도하다가 체포되고요. 그 와중에 오스트리아에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혼장을 동봉한 답신이 오지요. 하러가 출정한 후 한 달 만에 남자 아이를 낳았는데 이혼하고 하러의 친구와 재혼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보내고 답신을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새삼 인간이 참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원정대를 구성할 때 1990년대까지도 ‘메일 러너mail runner’를 따로 고용했습니다. 베이스캠프까지는 우편물이 전달되지 않으니 이 우체부는 베이스캠프와 마을을 오가면서 편지 나르는 일을 했지요. 혼자라는 고립감에 따른 불안과 두려움이 아주 심각하거든요. 날씨 탓에 베이스캠프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향수병에 걸리기도 하고요. 그 직업도 위성전화기가 상용화되면서 없어졌지요.

아내의 이혼 통보에 하러가 파키스탄 경비병들에게 돌을 던지고 철망에 몸을 던져 자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원정길에 오른 뒤에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속된 말로 ‘돌아버릴’ 거 같습니다.(웃음)

제가 아는 러시아 등반가가 실제 그런 일을 겪었는데요, “아내를 권총으로 쏴죽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하더군요. 등반가 사이에서는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전설적인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나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의 경우 첫 와이프가 사망하자 동료 등반가의 아내와 재혼을 했지요. 자기 로프 파트너였던 친구의 아내와 말이지요.

1942년 9월, 다른 등반대원들은 “우기가 끝나면 티베트 코스로 낭가파르바트에 오르겠다”면서 식량을 비축하고 수용소 탈출 계획을 짭니다. 이들은 파키스탄 노무자와 독일장교로 가장해서 결국 탈출에 성공하고 고집이 강한 하러는 “혼자 산에 오르겠다”면서 인도 북부 지역을 헤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낭인처럼 떠돌던 하러는 역시 혼자가 된 원정대장 피터와 조우하게 되지요.

이들은 “서양 귀신 꺼져라. 우리 마을엔 얼씬도 하지 말라”는 티베트인 주민들 때문에 여러 고초를 겪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박수를 쳐대는 마을 사람들이 환대를 한다고 여겼지만 그것은 귀신을 쫓아내는 제스처였습니다.

그래서 하러의 독백, “티베트는 가장 높고, 가장 고립된 나라였다”가 나오지요.

그런데 어느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혀를 길게 내빼는 동작들을 취하는데 알고 보니 그건 ‘환대’의 의미였습니다. 원정 다니면 그 지역의 몸동작을 오해하는 일도 생길 듯합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전투상황 등 상대를 위협할 때 혀를 길게 빼는데, 티베트의 어느 마을에서는 그게 환대의 의미였지요. 예를 들어, 세계 제2의 봉우리 K2 인근 마을에서는 ‘예스’ 또는 ‘오케이’의 의미로 우리와 정반대로 고개를 옆으로 가로젓습니다. 저도 그걸 제대로 이해하느라 고생 좀 했었지요.(웃음)

피터가 동상에 걸리자 하러가 밤에 주물러 주는 장면이 나오던데 등반 동료가 동상에 걸리면 실제 그렇게 합니까?

동상이 3도 이상 걸리면 수포가 생기고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높아집니다. 함부로 주물러서는 안 됩니다. 물을 체온 정도로 데워서 동상 부위에 대주는 게 응급처치로서는 최선입니다. 물을 데울 상황이 못 되면 동료의 동상 부위를 제 가슴팍이나 사타구니에 넣어서 데워 줘야 하지요.

이들은 산에서 자다가 산적 떼에 잡혔다가 말을 빼앗아 도주합니다. 눈이 수북이 쌓인 벌판 한가운데에서 말의 생살을 먹는 장면이 나오던데요. 혹시 김 대장님도 생고기를 먹은 경험이 있습니까?

그럼요. 곤경에 처하면 몸에 있는 본성이 되살아나지요. 물에 삶은 수육이나 생고기나 별 차이 없어지게 돼요. 저는 야크와 염소, 뱀을 먹어 봤지요. 아, 쥐도 생으로 먹어봤네요.(웃음) 

쥐요?

극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생고기가 거북스럽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집니다.

제 남은 생에 제발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웃음) 하러와 피터는 외국인 출입이 금지된 라싸에 임기응변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히 어느 의인을 만나 티베트 정부의 승인 아래 그곳에 거주하게 되지요.

하러가 음식 훔쳐 먹고 하던 현지에 저도 일부러 가본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떠올리면서 말이지요.(웃음)

라싸 내에서 서양인 옷을 만들 줄 아는 유일한 재단사로 젊은 여성이 등장하고 결국 피터와 결혼합니다. 원정 다니면 현지 여성들과 연정을 나누게 되는 일도 더러 있겠습니다.

그럼요. 이질적 문화에 끌리기도 하고 힘든 상황에서 만난 상대라 더 애틋하게 다가오기도 하지요. 주로 동행하게 된 셰르파의 누이나 여동생과 눈이 맞게 되는데, 한국 원정대 중에서도 셰르파 가족 여성과 결혼해서 귀국해 잘 사는 커플이 몇 있습니다.

이들은 영어가 능숙한 외교 비서관 ‘나왕’(B. D. 웡)의 도움으로 몇몇 작업도 하면서 잘 지내게 됩니다. 특히 아직 10대인 달라이 라마가 하러를 초대하고, 궁합이 잘 맞은 둘은 유럽 각국의 지리적 위치, 엘리베이터의 원리 등 서구 문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달라이 라마는 세계 정세 등 워낙 호기심이 많아 하러가 “집요한 탐구심의 소유자”라 부르기도 하지요.

그 사이 정권을 잡은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 합병 야욕을 드러내며 티베트 변경을 침범합니다.

감독은 달라이 라마의 입을 통해 “당신 서구인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야망을 달성하려 하고, 우리는 그런 자아 자체를 버리려 한다”고 전달하며, 평화주의자로서 티베트인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하러는 결국 백척간두의 티베트를 뒤로 하고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달라이 라마가 선물로 준 뮤직박스를 어느덧 소년이 된 아들에게 주며 화해한 하러가 아들과 함께 산에 오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나게 됩니다. 감독은 엔딩 장면에 이런 자막을 깔지요.

‘중국 점령 때 티베트인 100만 명이 사망하고 사원 6,000곳이 파괴됐다. 1959년 인도로 피신한 달라이라마는 여전히 중국과의 해결책을 찾고 있다.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후 하러와는 아직도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원작에는 없는 부분이지요. 근현대 티베트가 안았던 아픔을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감독이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지요.

이 영화에 대한 총평을 하신다면.

티베트와 라싸라는 금단의 나라, 도시에 대한 서양인들의 신비로움을 바탕으로, 티베트의 아픔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성공한 영화라 하겠습니다.  

▶ Scene in English

When you’re climbing, your mind is clear

and free from all confusions.

달라이 라마는 어느 날 중국 군인들이 티베트를 침공, 주민과 승려를 학살하는 일종의 ‘예지몽’을 꾼다. 너무 놀란 달라이 라마는 한밤중에 하러를 궁으로 불러 들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 둘이 평생을 이어가는 교류를 나누게 된 계기를 보여 주는 장면이다.

티벳에서의 7년

달라이 라마 잠을 잘 수 없어요. 그 꿈을 다시 꾸게 될까봐 두려워요.

I can’t sleep. I’m afraid the dream might come back.

하인리히 하러 우리 둘 다 불면증에 시달리는군요.

A couple of insomniacs.

달라이 라마 이야기를 들려줘요, 하인리히. 산에 오르는 이야기를 들려줘요.

Tell me a story, Heinrich. Tell me a story about climbing mountains.

하인리히 하러 잠에 곯아떨어지는 한 방법이긴 하지요. 심지어 제게도 지루한 이야기들이니까요.

That’s one way to fall asleep. Those stories bore even me.

달라이 라마 그러면 당신이 등반의 어떤 점을 사랑하는지 말해줘요.

Then tell me what you love about it.

하인리히 하러 절대적 단순성. 저는 그걸 사랑하지요. 산을 오를 때면 마음이 맑아지고 모든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지요. 집중할 수 있게 되죠. 그리고 불현듯 불빛이 환해지고, 소리들이 풍부해지며, 생의 깊고 강한 존재로 가득 차게 되지요. 산 아닌 곳에서 그런 걸 한 번 느낀 적이 있습니다.

The absolute simplicity. That’s what I love. When you’re climbing, your mind is clear and free from all confusions. You have focus. And suddenly the light becomes sharper, the sounds are richer and you’re filled with the deep, powerful presence of life. I’ve only felt that one other time.

달라이 라마 언제?

When?

하인리히 하러 당신 앞에서입니다.

In your presence, Kundun.

김창호 대장

김창호 대장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한국 산악계의 대들보. 2005년 7월 낭가파르바트(8,125m) 등정을 시작으로 2013년 5월 에베레스트(8,848m) 등정, 7년 10개월 6일 만에 히말라야 8,000m 이상 14개 봉우리를 모두 산소통 없이 올라 폴란드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의 세계 최단기간 완등기록인 7년 11개월 14일을 1개월 8일 앞당겼다. 이밖에 2008년 바투라2봉(7,752m) 세계 초등, 2016년 강가푸르나2봉(7,455m) 신 루트 개척등반 등, 알파인스타일 거벽 등반을 연이어 시도하고 있다.



              월간산.    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조선일보   입력 : 2018.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