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화가 인생을 바꾼다.”
필자는 기자 생활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다. 기자는 기사를 써서 밥을 벌어먹는 직업이고 기사는 글쓰기의 일환이므로, 필자는 오랜 시간을 글과 씨름하며 지내온 셈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본사 종로 쪽 도로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거기에 써 있는 문구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 중 하나다. 그렇다. 어떤 책을 읽는가, 특히 젊은 시절에 주로 여하한 책들을 접했는지가 그 사람의 인생을 규정한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특히 5000만 인구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기묘한 ‘IT 강국’ 한국에선 이제 이 문구는 바뀌어야 되게 됐다.
“사람은 영화를 만들고, 영화는 사람을 만든다.”
사람마다 영화를 보는 목적이 다르고, 특정 개인도 심적 상태에 따라 극장을 향하는 동기가 다양하다. 하지만, 잘 만든 영화가 끼치는 유·무형의 영향력은 영화의 종류에 상관없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후유증은 특히 젊은 시절에 더하다.
필자에겐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살바도르〉(Salvador, 1986)란 영화가 그러했다. 당시 남미 독재국가 엘살바도르에서 1980~1981년 사이에 실제 벌어진 추악한 만행과 미국 정부의 이중성을 그린 이 영화는 필자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대학 4학년 때 시내 을지로 명보극장에서 조조 첫 회를 본 필자는 영화관 2층 복도에서 밖을 내려다보며 “(엘살바도르에서 벌어진) 이런 비극을 알게 되고도 햇살 가득한 도시의 거리를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걸어 다닐 순 없다”며 극장 계단에 앉아 영화를 다시 보며 충격을 완화(?)시키고서야 극장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이후 올리버 스톤 감독 영화는 개봉 때마다 챙겨 봤지만, 〈살바도르〉 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플래툰〉(Platoon, 1986), 〈7월 4일생〉(Born of the Fourth of July, 1989)을 제외한 〈도어스〉(The Doors, 1991), 〈JFK〉(1991), 〈닉슨〉(Nixon, 1995) 등 그의 여타 작품들은 어떤 예술작품(영화)을 만들어낼 때, ‘의도’의 과잉(스톤은 미국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자이다)이 예술적 성취에 장애물로 작용, 그 감동까지 방해하는 경우로 필자는 여긴다.
30년 전의 필자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젊은이들은 〈라라랜드〉(La La Land, 감독 데이미언 셔젤, 2016)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감독 켄 로치, 2016), 심지어 〈아수라〉(감독 김성수, 2016)를 본 뒤 인생의 방향을 틀 그 어떤 ‘흔적’을 무의식에 새기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연재는 이러한 전제에서 필자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추려낸 영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독자들이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라 전제하고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 결정적 지장을 줄 반전이나 의외의 결말이 아닌 이상 줄거리도 필요한 만큼 전달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첫 번째 소개할 영화는 로버트 저메키스(Robert Zemeckis, 65) 감독의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이다. 지능이 낮은 포레스트 검프의 시선으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국의 현대사를 관조하는 이 영화는 제67회 아카데미상에서 13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고, 그중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시각효과상 등 주요 6개 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서정성 넘치는 도입부
필자는 기자 생활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다. 기자는 기사를 써서 밥을 벌어먹는 직업이고 기사는 글쓰기의 일환이므로, 필자는 오랜 시간을 글과 씨름하며 지내온 셈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본사 종로 쪽 도로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거기에 써 있는 문구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 중 하나다. 그렇다. 어떤 책을 읽는가, 특히 젊은 시절에 주로 여하한 책들을 접했는지가 그 사람의 인생을 규정한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특히 5000만 인구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기묘한 ‘IT 강국’ 한국에선 이제 이 문구는 바뀌어야 되게 됐다.
“사람은 영화를 만들고, 영화는 사람을 만든다.”
사람마다 영화를 보는 목적이 다르고, 특정 개인도 심적 상태에 따라 극장을 향하는 동기가 다양하다. 하지만, 잘 만든 영화가 끼치는 유·무형의 영향력은 영화의 종류에 상관없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후유증은 특히 젊은 시절에 더하다.
필자에겐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살바도르〉(Salvador, 1986)란 영화가 그러했다. 당시 남미 독재국가 엘살바도르에서 1980~1981년 사이에 실제 벌어진 추악한 만행과 미국 정부의 이중성을 그린 이 영화는 필자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대학 4학년 때 시내 을지로 명보극장에서 조조 첫 회를 본 필자는 영화관 2층 복도에서 밖을 내려다보며 “(엘살바도르에서 벌어진) 이런 비극을 알게 되고도 햇살 가득한 도시의 거리를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걸어 다닐 순 없다”며 극장 계단에 앉아 영화를 다시 보며 충격을 완화(?)시키고서야 극장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이후 올리버 스톤 감독 영화는 개봉 때마다 챙겨 봤지만, 〈살바도르〉 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플래툰〉(Platoon, 1986), 〈7월 4일생〉(Born of the Fourth of July, 1989)을 제외한 〈도어스〉(The Doors, 1991), 〈JFK〉(1991), 〈닉슨〉(Nixon, 1995) 등 그의 여타 작품들은 어떤 예술작품(영화)을 만들어낼 때, ‘의도’의 과잉(스톤은 미국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자이다)이 예술적 성취에 장애물로 작용, 그 감동까지 방해하는 경우로 필자는 여긴다.
30년 전의 필자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젊은이들은 〈라라랜드〉(La La Land, 감독 데이미언 셔젤, 2016)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감독 켄 로치, 2016), 심지어 〈아수라〉(감독 김성수, 2016)를 본 뒤 인생의 방향을 틀 그 어떤 ‘흔적’을 무의식에 새기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연재는 이러한 전제에서 필자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추려낸 영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독자들이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라 전제하고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 결정적 지장을 줄 반전이나 의외의 결말이 아닌 이상 줄거리도 필요한 만큼 전달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첫 번째 소개할 영화는 로버트 저메키스(Robert Zemeckis, 65) 감독의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이다. 지능이 낮은 포레스트 검프의 시선으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국의 현대사를 관조하는 이 영화는 제67회 아카데미상에서 13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고, 그중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시각효과상 등 주요 6개 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서정성 넘치는 도입부
〈포레스트 검프〉는 또한 미국의 연예 전문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 뽑은 ‘이천만 달러 값어치를 하는 유일한 배우’로 선정된 바 있는 톰 행크스(Tom Hanks, 61)가 톱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힌 작품이기도 하다.
1993년 〈필라델피아〉(Philadelphia, 감독 조너선 드미)에서 에이즈로 죽어가는 변호사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손에 넣었던 그는 그 이듬해 〈포레스트 검프〉로 같은 부문의 상을 받아, 아카데미 사상 50년 만에 처음으로 2년 연속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주연의 ‘기막힌’ 연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영화라는 얘기다.
영화는 새털 하나가 바람에 실려 소도시의 거리와 하늘을 떠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거리의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던 새털(즉, 카메라 시점)은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는 포레스트 검프의 발 옆에 떨어진다.
서정성 넘치는 〈포레스트 검프〉의 도입부는 필자가 꼽는 가장 완성도 높은 오프닝 신의 하나다. 앞으로 펼쳐질 스토리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영상일 뿐만 아니라, 영화 뒷부분 슬픈 이야기의 복선이기도 하다.
포레스트 검프가 유일하게, 그리고 변함없이 사랑한 제니(로빈 라이트)는 알코올중독 홀아버지의 성적 학대에 시달리던 어린 시절 아버지를 피해 옥수수 밭에 숨어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새가 되게 해주세요. 여길 벗어나 멀리멀리 날아갈 수 있게요.(Dear God, make me a bird. So I could fly far. Far far away from here.)” 새의 몸통에서 떨어져 나와 이리저리 흩날리는 깃털은 새의 부재(不在)를 상징한다.
IQ 75인 포레스트 검프는 척추가 휘어져 다리마저 불편하다. 다리 교정기를 착용한 검프를, 대대로 물려받은 앨라배마 집에 여행객을 상대로 단기 세를 놓아가며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현명한 홀어머니(샐리 필드)는 헌신적으로 돌본다.
초등학교 첫 등굣길 스쿨버스에서 아이들의 배척 탓에 자리를 못 찾고 있던 검프는 함께 앉기를 청한 제니와 절친이 된다. 돌을 던지며 못되게 구는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검프에게 제니는 “어서 달려”를 외치고, 무작정 달리던 검프는 교정기가 필요 없는 훌륭한 러너가 되어 덕분에 미식축구 특기자로 대학에까지 진학한다.
이후 영화는 검프의 시선을 통해 흑인의 앨라배마주 대학 입학 허용 파문 사건, 존 F 케네디 암살, 베트남전쟁, 닉슨의 하야를 불러온 워터게이트 사건 등 미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을 두루두루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이전 필름에 톰 행크스를 등장시키고, 다큐 필름에 CG를 입혀 뉴스 속 인물들이 검프와 대화를 나누는 자연스런 입 모양을 만들어냈다.
특히 베트남전에서 동료 5명을 구하고 부상을 당한 검프가 군병원에서 우연히 탁구를 접하고 천부적 재능 덕분에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중공)에까지 날아가 ‘핑퐁 외교’(ping-pong diplomacy, 1971년 미국 탁구팀의 중공 방문을 계기로 1979년 미·중 전격 수교에까지 이른 스포츠 외교)를 돕는다는 설정은 폭소를 자아낸다.
베트남전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 흑인 버바(미켈티 윌리엄슨) 덕분에 새우잡이 배를 구입한 검프는 전쟁으로 두 다리를 잃은 상관 댄 중위(게리 시나이즈)와 함께 새우잡이로 갑부가 된다. 그러는 내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제니와 다시 만날 날만을 꿈꾼다.
한편 존 바에즈(Joan Baez, 1941~) 같은 포크송 가수를 꿈꾸며 캘리포니아로 떠난 제니는 히피문화에 기울어 술과 마약에 빠져 지낸다. 고향으로 돌아와 모친과 사별한 채 혼자 지내는 검프와 잠시 함께하지만 검프의 청혼을 받은 다음 날 홀연히 곁을 떠난다. 어렵게 다시 만난 제니가 떠나버리자 검프는 3년 동안 발길 닿는 대로 미국 전역을 달리기로 횡단하고, 추종자들이 따르면서 전국적 유명인이 된다.
인상적인 대사
영화의 시작 장면은 다른 도시에서 웨이트리스 생활을 하며 새 인생을 시작한 제니가 뉴스로 소식을 알게 된 검프를 집으로 초대한 장면이었다.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답게 이 영화엔 인상적인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검프의 엄마, 그리고 검프 자신이 반복하는 “바보는 바보처럼 행동하는 거지.(Stupid is as stupid does.)”라는 말은 바보로 상징되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꼬집는 대사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로버트 저메키스는 ‘스필버그 사단의 최우등생’이라고 불리는, 각본과 연출 모두에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감독이다.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추억을 능숙하게 되살리면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1985), ‘영원한 젊음’이어야 하는 할리우드를 조롱하는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 1992),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빌려 인간 존재에 대한 진지한 명상을 보인 〈콘택트〉(Contact, 1997),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떨어진 한 남자의 4년여 사투를 그린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2000) 등 문제작을 만든 명장이다.
최근에는 국내에도 개봉된 브래드 피트, 마리옹 코티야르 주연의 2차대전 소재 영화 〈얼라이드〉(Allied, 2017)를 연출했다.
〈포레스트 검프〉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능이 떨어지는 바보라서 벌인 일들(화염에 휩싸인 정글로 동료를 구하러 무작정 뛰어들고, 아무런 기약도 없이 사랑하는 여성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등)이야말로, ‘정상’이라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아니었던가 하는 질문일 것이다. 즉 “바보라서 바보처럼 한 행동을 바보도 아닌 당신은 왜 못 하는가”라는 뼈아픈 질문이다.
이러저러한 걸 떠나 〈포레스트 검프〉는 2시간 22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를 만큼 재미있다. 한 정직하고 순수한 남자의 만화 같은 인생을 다루는, 감독의 감상적이지만 영리한 연출 덕분에 우리는 언제 다시 봐도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우리의 영혼도 덩달아 정화되는 드문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