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동 블뢰 수석 출신 눈에 든 별미와 직접 만든 요리
통영 여행을 자주 한다. 2000년대 들어 우리 부부는 해마다 한두 차례는 다녔다. 근래엔 2015년 12월에 다녀온 후 지난해는 건너뛰었다. 통영이 궁금해질 무렵, 4월 16일 우연히 유튜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KBS 창원방송국이 방송한 28분47초 분량의 인물 다큐 ‘휴먼터치人-김현정 셰프의 통영별곡(https://www.youtube.com/watch?v=ytVIioRw28U)’에 그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김현정(42)씨는 파리 르 코르동 블뢰를 수석 졸업한 솜씨 있는 셰프다. 지난번 통영 여행 때 그는 통영국제음악당 안 레스토랑 ‘뜨라토리아 델 아르테’의 책임자로 있었다. 박미향 ‘한겨레’ 음식전문 기자(현 ESC 팀장)의 추천으로 찾아가 먹은 ‘통영 딱새우 파스타’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딱새우 살은 달고 토마토소스와 어우러진 맛은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자연스러웠다. 이탈리아에서 직접 들여온 밀가루로 반죽해 칼국수처럼 자른 탈리아텔레(Tagliatelle) 생면 맛은 내 기억 안에서는 으뜸이었다. 다큐를 보니 그는 음악당 일을 그만두고 잠룡(潛龍)의 시간을 즐기며 암중모색을 하고 있었다.
통영이 갑자기 가보고 싶어졌다. 그가 보고 싶기도 했다. 그의 ‘옆구리’를 은근하고 간절하게 찔렀다.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 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진실로 원함)이 아니라 고소원 감청(固所願 敢請; 진실로 원하는 바라 감히 청함)인 것이다. 와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쾌적한 손님방이 있는 집에 살게 됐다며 흔쾌히 초대했다. 지난 3일 새벽 아내와 길을 나섰다.
통영은 무엇보다 바다다. 수려한 풍광의 바다, 넘치는 별미의 바다, 현대예술의 대가들을 줄줄이 키워낸 예인(藝人)의 바다, 300여년 동안 삼도수군통제영이 주둔했고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을 거둔 히스토리의 바다. 여행지로서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5월 황금연휴 기간에 통영에 다녀오는 길도 바다였다. 오가는 교통부터 난관과 돌발사태의 바다였고, 시내는 차량과 사람의 바다였다. 그 길을 다 뚫고 다니며 통영에 머문 시간은 31시간. 5끼에 걸쳐 먹은 9가지 음식을 시(時)계열대로 음미해보자.
김 셰프를 만난 시간이 마침 점심때였다. 택시를 타고 그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시내를 벗어난 바닷가 마을의 수봉식당(경남 통영시 산양읍 일운2길 4/전화 055-644-1130). 어부 부부가 운영하는 동네 식당이다. 두 가지가 유명하다. 아는 사람은 맛있다고 하고, 모르고 처음 간 사람들은 불친절하다고 한다. 오전 11시에 시작해 당일 준비한 반찬이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대개 오후 1~2시쯤이다. 점심에만 한다고 보면 된다. 가기 전에 반드시 전화해서 상황 확인하고,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도 당일 오전에만 받는다. 바다낚시 단체손님들 예약이 많아 자리가 비어 있어도 다른 손님 안 받는 경우도 있다.
한산도를 마주보고 있는 이 마을 앞바다는 멍게·굴 양식장이다. 해삼·멍게가 흔하다. 바깥주인 정종철(60)씨가 2~3일에 한 번씩 배(1.6t 수덕호)를 타고 나가 문어나 돌게(민꽃게), 작은 생선 등을 잡아온다. 안주인 겸 주방장 김옥분(57)씨는 매일 그런 것들로 반찬을 만들어 상을 차린다. 날마다, 철 따라 반찬은 바뀌지만 메뉴는 실질적으로 해물탕정식(1인 8000원) 한 가지다. 들어가서 사람 수만 얘기하면 주문은 끝이다. 1인분은 팔지 않는다. 뚝배기 하나가 2인분이다. 8000원짜리 정식인데 해물탕이 나오기 전에 12가지 반찬이 깔렸다. 해삼·멍게 한 접시, 양념을 바른 생선(삼뱅이)구이 한 접시도 올라왔다.
그밖에 잡채·숙주나물·알타리김치·생미역무침·멍게젓갈·멸치마늘종볶음·갓김치·방풍나물·애호박나물과 샐러드(사과·방울토마토 마요네즈무침)가 상을 채웠다. 12찬이다. 점심 먹고 취재하기로 돼있는 마을의 굴 양식장 주인을 식사에 초대했다. 그 분이 음식점에 들어오면서 주인에게 말했다. “형님 왔다. 뭐 맛있는 것 좀 가와 본나”라고 하니 별찬으로 작은 붕장어 두 마리를 잘라 내왔다. 서울 사람으로서는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다.
해물탕이 나왔다. 흔히 해물뚝배기라고 하는 된장찌개였다. 딱새우·중새우·돌게(민꽃게) 넣고, 조선된장 풀고, 청홍고추·대파 숭숭 썰어 넣고 끓인 다음 팽이버섯 한 덩이 올린, 보기에는 흔한 해물된장찌개였다. 아니 흔한 해물뚝배기보다 들어간 해산물이 부실했다. 그런데 맛은 흔히 보기 어려울 만큼 깔끔하고 구수했다. 해산물 음식은 왜 바닷가에 와서 먹어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맛이다.
부부가 식당을 시작한 지는 15년째다. 그 전에는 어부와 동네 부녀회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3년 태풍 ‘매미’가 동네를 휩쓸고 갔다. 해안도로를 따라 형성된 마을에서 길가에 있던 집은 다 휩쓸려갔다. 부부는 그때 2층집을 새로 짓고 음식점을 시작했다. 안주인은 “내 집에서 하니까 이렇게 차려주고 8000원 받지 안 그러면 못한다”는 말을 거푸 했다. 설·추석 연휴와 태풍·폭우 오는 날만 쉰다. 저녁은 하루 전에 예약하면 8명 이상 1팀에 한해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직접 자른 (붕)장어 모둠회(2만/3만)와 탕을 해줄 수 있다고 한다.
부부가 식당을 시작한 지는 15년째다. 그 전에는 어부와 동네 부녀회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3년 태풍 ‘매미’가 동네를 휩쓸고 갔다. 해안도로를 따라 형성된 마을에서 길가에 있던 집은 다 휩쓸려갔다. 부부는 그때 2층집을 새로 짓고 음식점을 시작했다. 안주인은 “내 집에서 하니까 이렇게 차려주고 8000원 받지 안 그러면 못한다”는 말을 거푸 했다. 설·추석 연휴와 태풍·폭우 오는 날만 쉰다. 저녁은 하루 전에 예약하면 8명 이상 1팀에 한해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직접 자른 (붕)장어 모둠회(2만/3만)와 탕을 해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통영에 가면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는다. 그리고 평인일주도로~풍화일주도로~산양일주도로 드라이브를 하고 시내로 들어간다. 이 길을 달리면 통영 서부와 미륵도 해안선을 연결하는 도로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그 바다는 정말 맑고 잔잔하고 아름답다. 아내는 “지중해나 하롱베이가 부럽지 않다”고 늘 말한다. 방향은 시계반대로 돌아야 한다. 그래야 바닷가 차로(車路)를 달려 시야가 트이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바다를 누릴 수 있다. 그 길을 돌 때마다 막바지에 만나는 작고 예쁜 초등학교가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이라 감탄만 하고 지나갔지 내려서 들어가볼 기회는 없었다. 점심을 먹고 보니 수봉식당 이웃에 그 학교가 있었다.
한려초등학교 영운분교장이다. 교문 앞에는 제법 세월을 이겨낸 돌장승 한 쌍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도로 하나 건너 다도해 바다가 펼쳐지는 학교에 들어가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아담하고 예쁘다. 화단에는 종려나무가 줄지어 있고 반쯤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노지에서 자라는 종려를 중부 이북에서는 볼 수 없다. 남부에서도 종려를 본 적은 있지만 꽃은 처음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땅이 좁은 것 같아도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학교를 나와 마을로 가는 길에 보니 선착장 바지선에 사람들이 모여 뭔가 하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멍게(우렁쉥이) 수확 작업을 하고 있다. 통영에서는 1973년 멍게 양식을 시작했다. 이곳 사람 최두관씨가 자연산 멍게 씨를 받아 양식한 게 시초다. 이후 양식이 늘어 국내 멍게 생산량의 70%가 통영에서 난다. 미륵도를 돌면서 보면 연안에 멍게 양식장이 많다. 바지선 작업은 앞바다 양식장에서 멍게가 착생해 자란 밧줄 몇 가닥을 끌고 와서 기계로 훑어 떨어뜨린다.
그것을 한쪽으로 옮겨 놓으면 여러 사람이 작은 멍게를 골라내는 과정이 이어진다. 밧줄에 멍게가 붙어 자란 길이는 약 5m라고 한다. 작업장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한 남자가 “단디 찍어 가소”라고 반겼다. 한쪽에 까놓은 멍게도 먹어보라고 권했다. 선별작업 중 흰 멍게가 하나 나왔다. 작업하던 사람들도 신기한지 이것도 찍어보라며 멍게 더미 위에 세워줬다.
점심을 함께 먹은 굴 양식장 주인은 통영 멍게는 서울처럼 향이 강하지 않다고 했다. 씹을 때는 단맛이 있고, 삼키면 목 안에서 향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수봉식당에서 먹으면서 그 과정을 따라 해보니 정말 그랬다. 싱싱한 멍게는 향이 진하지 않다. 신선도가 떨어질수록 단맛은 빠지고 향은 짙어진다.
굴 양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직접 보니 일반 양식장이 아니라 기업이었다. 수산물을 양식하고 가공·수출하는 회사 이름은 태화물산(경남 통영시 산양읍 이운길 10/전화 055-642-3470). 점심 먹으며 인사를 나눈 그 분은 송미탁(65) 회장이었다. 1999년 이미 수산물 수출로 500만불 수출탑을 받았고, 근년에는 여름에 먹는 3배체 굴 생산에 성공해(2016년 첫 수확) 연간 생산량 100t 중 90%를 ‘Stella Maris’라는 이름으로 외국에 수출하는 알짜 기업이었다.
3배체 굴은 4배체 수컷과 2배체 암컷을 교배해 나온 3쌍의 염색체를 가진 굴이다. 염색체 배체수가 홀수이면 씨 없는 수박처럼 생식기능이 없다. 생식소를 키우는 데 에너지를 쓸 일이 없어 성장이 빠르고 알은 커지며 조직도 조밀해진다. 산란기가 없어 아무 때나 수확이 가능하다. 여름에도 싱싱한 굴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여름에는 바다에 굴의 먹이생물이 많아 영양활동이 왕성해지기 때문에 글리코겐 함량이 높아져 겨울철에 비해 단맛이 더 난다고 한다.
기술적으로는 4배체 수컷 성체를 만드는 게 요체였다. 한 마리만 있으면 약 20억 개의 활성 정자를 얻을 수 있다. 태화물산은 원천기술을 소유한 미국 기업과 접촉해 오랜 설득 끝에 2013년 기술협력 계약을 하고 수컷 4배체 종자를 들여다가 한국 2배체 암컷과 수정해 3배체 굴을 만들었다. 이 기술은 1996년 미국에서 개발했다. 이후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굴 양식 방식이었다. 20년 특허 시효가 작년에 만료됐다.
때맞춰 태화물산에서 고개 너머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 남동해수산연구소가 2013년 3배체 굴의 인공종묘 대량생산에 성공했고, 2년 후 3배체 굴의 안정적 생산에 필요한 4배체 성체의 대량생산 기술도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봄부터 4배체 성체 굴을 수산연구소와 생산업체 등에 무상 분양하고 있다.
태화물산의 굴 양식장은 미륵도~한산도 사이 앞바다에 있다. 회사 건물 바로 앞에도 굴의 성장과 변화를 관찰하는 가두리식 시험양식장이 있었다. 송 회장은 연구실과 유생부터 종패까지 키우는 실내 배양장을 보여준 다음 바지선으로 가서 판자로 놓은 외나무다리 건너 시험양식장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가두리 속을 들여다보니 굴을 담아 키우는 채롱망이 줄에 가득 걸려있다. 망 3개를 꺼내 크기가 다른 굴을 차례로 보여줬다. 2년 자란 놈은 500g(껍데기 포함. 이하 같음), 14개월짜리는 80~100g, 6개월짜리는 엄지 한 마디 크기였다. 먹기 좋은 크기인 80~100g짜리 10~12개가 올라가는 1㎏ 출하가격은 1만~1만2000원이라고 한다. 국내 판매는 고정거래처 중심으로 중간상 거치지 않고 직판만 한다. 올해는 6월 초부터 출하를 할 예정이다.
굴을 수확할 때는 두 차례 소독을 한다. 마지막 오존 소독장에 가서는 실내 크레인으로 굴 상자 6개 묶음을 끌어올리더니 크기가 다른 굴 3개를 꺼냈다. 짧은 칼로 까더니 먹어보라고 했다. 아무 양념도 없었다. 송 회장은 남은 포도 알 하나를 까더니 무심한 듯 즙을 짜 굴에 뿌려줬다. 셋 중 작은 굴(100g 크기) 하나가 입에 꽉 찼다. 한참을 우물거린 다음에야 맛을 느낄 만큼 씹혔다. 천천히 씹으니 이게 굴인가 싶을 정도로 살이 단단하고 조직이 조밀했다. 입 안에서 씹히는 소리가 귀로 들렸다. 간도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았다. 이어서 큰 굴(약 400g)을 먹었다. 한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반으로 잘라서 먹었다. 조개관자 부분을 씹을 때는 식감이 키조개 패주(貝柱) 못지않았다. 결결이 부서진 관자 가닥이 씹을 때마다 톡톡 터지면서 맛의 불꽃놀이를 펼쳤다. 한잔 생각이 간절했으나 사업장을 취재 중이어서 나오려던 말을 굴과 함께 삼키고 말았다.
송 회장이 한국에서 처음 3배체 굴 생산에 도전한 이유는 노로바이러스 때문이다. 한국 굴은 18년 전부터 생식용(生食用)으로는 수출하지 못한다. 가열조리용으로 나갈 뿐이다. 가격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노로바이러스는 바닷물 온도가 18도가 넘으면 서서히 사라진다. 다시 18도 이하로 내려가면 나타난다. 5~10월에는 노로바이러스가 없다. 그 시기에 수확하는 굴을 찾다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딸을 통해 3배체 굴을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 접한 새로운 굴의 단맛이 입에서 가시질 않았지만 송 회장 시간을 너무 빼앗는 것 같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4배체 굴을 나라에서 생산업체에 무상 분양한다니 머잖아 이런 고급 3배체 굴이 시장에 나오리라는 기대로 아쉬움을 달랬다.
택시를 불러 통영 시내로 나왔다. 사람이 몰리는 동피랑을 피해서 서피랑을 산책했다. ‘피랑’은 벼랑을 말하는 통영 말이다. 동피랑이 골목길을 살려 명소가 된 반면 서피랑은 서쪽 ‘몬당(언덕을 뜻하는 이 지역 방언)’의 집들을 헐어내고 산책로와 전망대를 만들어 경관을 즐기는 새로운 랜드마크로 조성한 공원이다. 꼭대기에는 옛 통영성 시설인 서포루(西鋪樓)가 있다. 이곳에 오르면 뒤로는 충렬사와 세병관, 새로 지은 12공방이 촘촘히 들어선 옛 통제영이 한눈에 들어오고 앞으로는 미륵도·한산도 같은 섬들이 12폭 병풍을 두른 통영 바다가 넋을 빼앗는다.
충렬사 앞 네거리 에서 골목을 기웃거리며 서피랑으로 오르면서 보면 곳곳에 소설가 박경리(1926~2008)의 자취가 서려있다. 생가도 있고, 그가 쓴 장편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한실댁의 모델이 된 사람이 살던 집의 일부로 알려진 한옥(현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길바닥과 담벼락에도 눈이 가는 곳마다 박경리의 글들을 옮겨놓았다. 무형문화재 장인(匠人)들이 살던 집이라는 표석도 여러 개 보인다. 윤보선(1897~1990) 전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1911~1997) 여사가 살던 집 표석도 보인다. 통영의 두터운 문화적 층위를 웅변하는 장식들이다.
언덕에 오르는 중간 비탈에는 당산나무 기상을 갖춘 거목이 있다. 수령 200년이 넘은 후박나무다. 후박나무 옆을 지나 언덕마루에 오르는 길에는 지난해 4억원을 들여 국내에서 가장 긴 피아노 계단을 놓았다.
서피랑을 돌아 서호시장으로 내려갔다. 오후의 서호시장은 파장이다. 새벽 4시부터 열기 때문에 점심 먹으면 보따리를 싸기 시작하는 시장이다. 내일도 있으니까. 시장을 지나가며 김현정 셰프에게 저녁거리 장볼 것 없는지 물으니 가니쉬(Garnish; 음식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곁들이)거리가 조금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장을 봐서 김 셰프의 주방으로 갔다. 실은 주방 시설을 잘 갖춘 주택이다. 나는 구경을 하고 그는 요리를 했다. 그리고 와인을 곁들여 함께 먹었다.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 분위기였다. 제목은 ‘내 만찬을 부탁해’가 맞겠다.
시작은 도미소금구이. 쇠고기나 삼겹살에 소금 뿌려 구워 먹는 걸 상상하면 안 된다. 도미는 몸길이 35cm쯤 되는 활어를 시장에서 사다 놨다. 살 때 부탁해 내장·아가미·비늘을 제거했다. 이 큰 참돔 값이 2만~3만원밖에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른 배에 통마늘과 로즈마리를 먼저 넣고 소금 500g쯤에 계란 흰자를 부어 버무렸다. 계란이 흐르지 않고 소금을 고루 적시는 정도가 적당하다. 타지 않는 종이를 쟁반에 깔고 소금을 약간 편 다음 그 위에 도미를 올린다. 도미 윗부분은 밀봉이 될 만큼 소금으로 발라 오븐에서 25분 정도 굽는다. 계란 흰자는 소금이 생선 껍질에 붙지 않게 해준다고 한다.
도미가 익는 동안 다른 음식이 진행됐다. 장을 본 가니쉬 재료는 도미구이에 필요한 것이었다. 가니쉬는 대저토마토·햇감자(껍질째)·당근·브로콜리를 삶거나 데쳐 툭툭 자르고 버터를 두른 팬에 뚜껑을 닫고, 굽듯이 오래 익혔다. 소금과 후추를 조금 넣었다.
이어서 샐러드. 데쳐서 껍질을 벗긴 대저토마토와 생 딸기를 넣고, 깍뚝 썬 고다 치즈, 가루 낸 그라나파다노 치즈, 즉석에서 구운 피스타치오를 넣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기름을 부었다.
다음은 ‘미미파스타’. 임시 작명이다. 김현정 셰프의 개발 요리다. 우리 부부가 처음 시식을 했다. 우리가 먹은 다음날 김 셰프 친구에게 같은 음식을 해줬더니 그런 이름을 제안했다고 한다. 조리는 먼저, 올리브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서 마늘 편을 볶다가 통 페페로치노(그리스 매운 고추)를 손으로 부숴 넣었다. 다른 냄비에서는 바지락 국이 끓고 큰 냄비에서는 파스타 건면을 삶고 있었다. 시장에서 사온 미더덕 살은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데친 미나리는 5cm 길이로 잘라 가지런히 담아놨다. 시간이 되자 팬에 미더덕을 넣고 바지락국물을 조금 부었다. 익은 바지락을 건져서 팬에 옮기고는 통후추를 갈아 흩뿌렸다. 이어서 파스타를 건져 팬에 올려 재료가 두루 섞이도록 굴렸다. 조리가 끝난 파스타를 큰 접시에 옮겨 담고 미나리를 웃기로 올렸다. 셋이 덜어서 나눠먹을 요량이다.
도미가 익는 동안 샐러드와 파스타를 먼저 먹었다. 맛이 진한 대저토마토를 쓴 샐러드는 여느 음식점에서 만나기 쉽잖은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미더덕·바지락·미나리가 미각경쟁을 하는 ‘미미파스타’는 그가 요리를 잘한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먹어도 이질적인 재료들이 잘 어울려 맛이 딱 떨어졌다. 미더덕에서 풍기는 바다 향이 은은한 게 ‘이거 물건이다’ 싶었다. ‘통영 딱새우 파스타’에 대해 좋은 기억을 되살리며 물었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김 셰프가 말했다. “통영 사람이나 여행객이 여기서 파스타를 찾을 이유는 없다. 원조 100% 이태리 파스타가 필요한 게 아니다. 통영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파스타라야 생명력이 있다. 그래야 찾을 것이다. 통영 아니면 먹을 수 없는 파스타를 만들지 않고는 내가 설 땅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 구워진 도미가 나왔다. 전체 조리시간은 1시간쯤. 굳어진 소금 덩어리를 수저와 포크를 이용해 부수고 벗기자 아무 양념도 하지 않은 뽀얀 도미 살이 드러났다. 한 점을 물자 아무 양념도 하지 않고 통째로 익은 도미 살의 제 물이 흠씬 입 안에 배었다. 먹어본 적이 없는 생선구이 맛이다.
2015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 통영으로 간 김 셰프는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 상권이 살아나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의 피해자다. 그는 2008년 서울 창의문 고갯마루에서 46㎡(14평) 조그만 이태리 레스토랑(오월)을 운영했다. 당시는 아주 외진 곳이었다. 보증금 2000만원, 월세 65만원으로 시작했는데 임대료가 올라 5년만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맛과 품격을 갖춰 유명 인사들도 꽤 찾던 곳이다. 그 중엔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도 있었다. 그 후 인사동 ‘민가다헌’에서 파티시에(주방의 여러 직책 중 오븐에 굽는 음식, 빵, 디저트 담당)로 2년간 일했다. 그리고 2년 전 통영국제음악당 레스토랑 ‘뜨라토리아 델 아르테’ 주방을 맡아 그곳으로 갔다. 그것도 잠시, 1년 남짓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이 관청문화 체질이 아님을 깨달았다. 미련 없이 떠났다. 독신인 그가 일자리는 쉽게 내던졌지만 마음에 병이 생겼다. 천석고황(泉石膏肓;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질병처럼 깊음)이라고 할까. 통영에 주저앉고 말았다. 통영에서 젠트리피케이션 걱정 안 해도 되는 레스토랑 자리를 물색하고 있다.
통영에서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장차 가까운 곳에서 이웃으로 살기를 기대합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