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한국말인데도, 미국인들이 장사익 음악에 슬퍼하는 까닭

해암도 2016. 11. 20. 13:06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장사익 

꽃처럼 생겨난 작은 생명이 반갑다. 목말라 지치고 방황할 때 어깨를 내어주던 친구들에게 고맙다. 목 놓아 원 없이 노래하는 인생이 기쁘다. 그의 얼굴이, 고운 주름이 세 시간 내내 이야기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고.


“차를 다섯 잔 마셔야 소통이 된대유.”(웃음)


이쪽을 보면 인왕산 끝자락, 저쪽을 보면 북한산 끝자락. 소리꾼 장사익이 15년째 살고 있는 세검정 집을 찾았다. 천천히 하라며 차를 권했고 함께 가을을 먹자며 대추와 감을 내왔다.

“자연과 가차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한 거유. 시내는 다 회색이잖아유. 여기서 밖을 보면 하늘이 파랄 때가 있고 누럴 때가 있고, 꽃 필 때도 있고 단풍 질 때도 있고 사시사철이 다 있는 기라. 사람 만나는 것도 인연이지만 집 또한 인연인 거지유. 대궐 같은 집이 아니어도 돼유. 마음이 편안하고 피곤을 달래주고 새소리 바람소리 들을 수 있는 집이 진짜 스위트 홈이여유.”

장사익은 젊은 시절 15개 직업을 전전하다 마흔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가수가 됐다. 그로부터 22년간 8개 앨범을 발표하며 부르는 본인의 가슴도, 듣는 청중들의 가슴도 뜨겁게 적시는 음악을 해왔다. 그러던 지난 2월 성대에서 혹이 발견됐다.


“앞으로 노래를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경비를 할래도, 운전을 할래도 허리가 아파 못 하겠고 막막했지유.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노래인 거라. 그래서 이번 공연 제목이 <꽃인 듯 눈물인 듯>인 거여유. 노래 부를 때는 꽃이고, 노래 못 할 때는 눈물이다.”

그는 “노래도 못 하면 아예 세상에 없는 게 낫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며 “컥” 하고 죽는 시늉을 하면서도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특유의 긍정적인 성품 덕분일까.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았다. 노래할 수 없던 눈물의 8개월을 보낸 그는 지난 10월 다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라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연말까지는 대전, 부산, 대구, 하남, 김해, 광주 등을 돌며 전국투어에 나선다.


수술 후 첫 공연이었습니다.

저한테는 의의가 있는 공연이었죠. 성대에도 근육이 있어요. 60년, 70년 굳어져 온 근육을 도려낸 자리는 몰랑몰랑하단 말이죠. 바람을 내도 약간 흔들릴 거고, 동그란 소리를 내려고 해도 약간 굴곡이 지고, 높은 소리에서 자신이 좀 덜 가고.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나아질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완쾌되신 것처럼 들리던데요. 저는 둘째 날 공연에 다녀왔거든요.

그랬어요? 어땠어요?


첫 소절을 듣자마자 가슴에서 묵직한 게 올라와서 눈에 맺혔어요. 저와는 거의 40년 정도 차이 나는 가수의 노래고, 서로 살아온 환경과 역사가 너무나도 다를 텐데 왜 이럴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젖먹이 애기들 있잖아요. 말도 못하는 두 살 애기들. 얘들도 우리하고 똑같이 느끼는 거라, 싫고 좋고 화나는 것들이 그대로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다 나타나요. 다만 섬세하지 않을 뿐이지. 자기가 좋으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춤추고 그러잖아요. 싫으면 울고요. 나이 먹은 사람이나 안 먹은 사람이나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예요. 그게 음악 속에 다 들어 있지요. 클래식은 가사도 없고 우리 정서에도 안 맞지만 이 가을에 들으면 뭔가 모르게 끓는 게 있잖아요. 제가 미국 가서 미국말로 노래하는 게 아니거든요. 한국말로 하는데 내가 슬프게 부르면 그들도 뭔가 슬프게 느끼고, 내가 빨갛게 부르게 그들도 뭔가 붉게 생각해요. 사람들 느낌은 다 똑같은 거예요. 인생은 꽃일 때도, 눈물일 때도 있어요. 그걸 내가 뱅글뱅글 계속 노래하는데 같이 들어주시고 울어주는 분들이 있지요. 요즘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울지도 않잖아요. 옛날에는 막 곡을 하고 울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이 하찮은 대중음악을 듣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니 이게 얼마나 멋있는 일이에요? 한번 신나게 울어젖히면 개운해요. 노래, 예술의 힘이죠.


노래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데 슬프지만은 않고 뭔가 위안이 됩니다.

한(恨)이 맺히면 원(怨)이 된다고 해요. 원한이라고 하죠. 한을 그냥 갖고 있으면 안 돼요. 풀어줘서 그게 흥이 돼야 해요. 셰익스피어만 봐도 진정한 희극은 비극 속에서 나온다잖아요. 제 소리판은 앞에 무거운 노래, 뒤에 가벼운 노래를 해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게 해요. 극장 들어가기 전에는 마음이 심란한데 공연 보고 나면 맑아지고, 다시 또 세상에 나가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고. 그래서 한번 울고 또 웃고 ‘개운하네’, ‘사는 게 재밌네’ 하시길 바라는 거죠.

그저 자연의 호흡대로

장사익은 가수라 불리지 않고 소리꾼이라 불린다. 공연도 콘서트가 아니다. 소리판이다.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우리의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칭호가 붙은 바탕에는 호흡이 있었다.


장사익의 음악을 들으면 ‘이것이 우리의 말이고 우리의 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 음악이 지금의 모습이 된 계기가 있어요. 60년대 말에 유행가를 한 3년 배우고 또 나이 들며 국악도 배우고 클래식도 듣고, 그 모든 게 다 쌓인 거긴 하겠죠. 그런데 프리 재즈의 1인자인 김대환 선생님께 들은 한마디가 내 노래를 변화시켰어요. 저보고 노래를 해보래서 했는데 “너 박자 맞추지 말고 해봐” 그러시더라고. 다시 산토끼를 불러보래서 했는데 또 그래요. “너 속으로 박자 세고 있잖아.” 그때부터 박자를 해체시킨 노래를 했죠. ‘찔레꽃’ 같은 경우도 박자가 없잖아요. 전부 그냥 호흡대로 가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모습으로 노래를 하게 됐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서 박자가 안 맞는 건 줄도 몰랐어요.

그게 중요한 거예요. 저는 40~50년 전부터 부르던 ‘님은 먼곳에’, ‘봄비’, ‘대전 블루스’ 같은 옛날 노래도 많이 하는데 내 몸에 맞게 불러요. 리바이벌도 뭔가 똑같으면 안 돼요. 그러면 이미테이션 가수가 된단 말이죠. 카피해봐야 의미가 없는 거예요. 오리지널이 있지만 다른 생명력을 줘야 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할 이유가 없어요.


우리 악기와 서양 악기를 함께 사용하는데 동서양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잘 어우러집니다.

그것도 배려예요. 노래하는 사람의 음악적인 배려. 보통 가수들 보면 사운드가 똑같아요. 그런데 제 음악에서는 주인공이 계속 달라져요. 트럼펫이 주인이고 기타가 주인이고 해금이 주인이고 이런 식으로 변화를 주면서 노래를 엮어나가죠. 한국적인 것과 한국적이지 않은 것이 모여 음악으로 표출될 적에 새롭죠. 또 외국 사람에게도 다가갈 수도 있고요. 그리고 악기 하는 친구들이 뒤에서 두두둑 소리북을 치든지 추임새를 넣어요. 같이 만들어가는 음악인 거예요. 그리고 나는 공연할 적에 스모그 같은 거를 일절 안 피워요. 연기 피우면 멋있죠. 하지만 맑고 깨끗한 그대로, 그대로가 좋아요.


앞으로 조금 더 이렇게 소리를 내고 싶다, 이렇게 노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나요?

이번에 쉬는 동안 소름 끼치는 노래를 들었어요. 지금은 죽고 없는 멕시코 여가수가 90살 넘어 부른 노래였는데, 아 그 언니가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 거예요. 노래를 압축해서 불렀어요. 아직 나는 힘이 있으니까 테크닉으로, 파워로 노래를 부르잖아요. 그런데 자꾸 힘이 달릴 거란 말이죠. 자연 그대로 늙은이면 늙은이답게 해야 해요. 호흡이 짧은 대로 음이 안 올라가는 대로. 여든 살, 아흔 살 완전히 꼬바랑 할아버지 돼서 지팡이 짚고 읊조리면서 노래한다고 쳐봐요. 얼마나 멋있어요. 진짜 노래란 말이죠. 바로 그런 노래를 계속 할 거예요. 그러려면 빠지는 힘과 반비례해서 공력을 더 길러야 해요. 우리나라 최고의 무용가 조갑녀 선생님이 마지막 춤을 나한테 줬어요. 휠체어 타고 와서 딱 서서 손 하나 탁 올리고 발 한 번 움직이고 앉은 거예요. 기가 막혔어요. 딱 1분으로 지구가 무너지는 춤을 추신 거죠. 저도 그런 노래를 하려고 해요. 그러니 나이 먹는 게 얼마나 재밌는 거예요?(웃음) 그러다 탁 가면 얼마나 재밌어요. 그게 바로 삶의 재미인 기라.


나는 언제나 뜨거운 여름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냐고 묻자 그는 맨날 힘들었다고 답하며 또 한 번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힘들고 더운 계절에 성장하는 것이라고.

“어느 분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당신의 계절은 가을일 것’이라고요. 저는 ‘아닙니다. 한여름입니다’ 그랬어요. 금년 여름에 얼마나 힘들고 더웠어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죠. 그런데 실은 여름에 모든 식물들이 성장을 해요. 봄에 싹이 나와 꽃을 피우면 그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혀서 여름에 크는 거죠. 우리는 하루하루 여름처럼 힘들게 살아요. 그렇지만 그 여름은 진행형이란 말이에요. 가을에 진행을 멈추고 겨울엔 죽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우리 모두 뜨거운 한여름을 살아내고 있는 거군요.

저는 내일모레 칠십이지만 노래를 앞으로 계속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태양빛이 뚝뚝 떨어지는 여름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짜증 나, 때려치우고 싶어, 죽고 싶어 그러잖아요. 실은 그 자리를 백만 명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걸 몰러. 그리고 그 자리가 얼마나 나한테 꽃방석인지 모른다고. 힘든 시기가 무수히 많지만 그건 다 핑계예요. 그 자리가 고되고 힘들어도 나한테는 꽃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젊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었나요?

창피한 얘기지만 맨날 잘려서 15군데에서 직장생활 했잖아요. 그때 술, 담배를 했으면 저는 서울역에 있는 숙자 형들하고 있어야 돼요. 그런데 그때 나는 ‘내가 부족해서 그래’, ‘내가 못나서 그래’ 하고 오뚝이처럼 일어났어요. 가고 넘어지고 또 가고 그랬죠. 힘없이 넘어져서 헤어나지 못했다면 오늘 같은 시간들이 안 주어지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요.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어. 나는 행복한 거여. 회사 일도, 높은 사람이 뭔가 해 오라고 주는 것에 짜증을 내면 안 돼요. 높은 사람은 분명 얘가 능력이 있으니까 주는 거란 말이죠. 실패를 한다 해도 하나의 경험으로 공부가 돼버려요. ‘좋아, 내가 이 회사 10년 안에 접수하겠어.’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해봐요. 그런 마음으로 살면 이 세상이 내 것이 되는 거예요. 힘들고 어렵지만 생각을 바꾸면 이 세상이 그렇게 흥미롭고 멋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으니 인상이 이렇게 좋으실 수밖에요.

저는 많이 웃어서 주름살이 많이 생긴 거예요. 주름 예쁘다는 얘기를 몇 번 들었죠.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에 따라 표정이 나오는 거예요. 애기들 네댓 명이 있는데 사탕을 선물로 주려 한다 생각해보세요. 생글생글 웃는 놈. 인상 쓰고 있는 놈, 누구한테 주겠어요. 그게 복인 것이죠. 주름은 원래 흉한 것인데 나이 들어 ‘저 주름 아름답네’ 이런 소리 들으면 얼마나 좋아요. 저는 방송 나갈 때 언니들이 화장해준다고 덤벼도 “쫓아오지 마” 그래요. 자연 있는 그대로가 최고예요.

시를 훔쳐 만든 노래들

장사익 음악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노랫말 때문이다. 그가 만든 노래 30여 곡은 전부 시를 가사로 옮긴 것인데 대표곡 ‘찔레꽃’과 ‘하늘 가는 길’, ‘꿈꾸는 세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는 그가 직접 썼다. 나머지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인들의 시를 훔친 것이다.


시를 읊조리면서 곡을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버지’라는 노래는 시이면서 하나의 뮤지컬 같기도 하죠. 클래식에서 곡을 차용했고 또 ‘아니리’라고 하는 판소리의 사설도 넣은 거예요. 솔직히 다 카피죠. 그래서 나는 작곡이라는 말을 안 하고 엮음이라고 해요. 배웠던 국악, 들었던 클래식을 엮는 식으로 노래를 만들어요.


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원래 애가 진득하니 있지를 못해서 소설 같은 거를 잘 못 봐요. 그런데 시는 함축성이 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부부 작가인 조정래 소설가와 김초혜 시인을 가끔 함께 만나는데요. 조정래 선생님이 막 이거는 뭐고 저거는 뭐고 5분 동안 얘기하셔요. 그러면 가만히 듣고 있던 김초혜 선생님이 ‘이거는 이거 아니야’라고 한마디로 함축시켜버려요.(웃음) 시인들은 단어 하나에 목숨을 건다고 하잖아요. 시에는 아름다운 시어가 있고, 깊고도 넓은 세상과 자연에 대한 체험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어요.


그런 시를 가사로 쓰니 노랫말이 안 좋을 수가 없죠.

저는 우리나라의 대중음악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클래식은 몇백 년을 듣고 즐기고 있잖아요. 뭔가 아름다움이 있고 우리를 위안해주고 즐겁게 해주니 오륙백 년의 생명력을 갖는 것이죠. 우리나라 대중음악은 유행가라고 하는데 특히 아이돌 노래는 거의 생명력이 없어요. 가사 보면 뼈가 타는 이 밤이 어쩌고 그러잖아요.(웃음)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 누구도 어쩔 수 없다. 저 빨간 감처럼 철이 들 수밖에는.’ 이 얼마나 계산 없이 단순해요. 이런 것이 기막힌 것이에요. 아이돌 스타들, 애기들 다 얼굴도 예쁘고 춤도 잘 추고 코리아 팝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가수 이름은 알아도 무슨 노래인지는 몰라요. 본질이 없고 껍데기만 있는 거죠. 저는 노래를 잘 못 부르고 잘 못 만들더라도 노랫말은 좋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시를 100% 차용했어요. 이번에 고무적인 게 밥 딜런이 노벨상을 받았잖아요. 얼마나 반가운지 감히 동지를 만난 것처럼 기뻤어요. 가곡들도 시를 노랫말로 많이 하지만 대중성 없이 발표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시도 노래예요. 아무리 좋은 시라도 덮어놓으면 끝이죠. 저는 시로 만든 음악이 널리 알려지고 불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아요. 되게 재밌죠.

하나와 하나가 만나 백이 되는 인연

바다 그리워 깊은 바다 그리워
남한강은 남에서 흐르고 북한강은 북에서 흐르다
흐르다가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아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한강 되어 흐르네
아름다운 사람아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이현주 시, 장사익 곡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통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하시네요.

네. 제가 잘 않죠. 좋은 인연은 어디선가 만나요. 친구 자녀들이 결혼식 할 때 제가 그런 얘기를 해요. 남자와 여자를 더하면 둘이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둘은커녕 하나도 안 되고 마이너스가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상극이죠.(웃음) 그런데 둘이 만나 열이 되고 스물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내가 언덕배기를 리어카를 끌고 올라간다고 해봐요. ‘여보 내가 뒤에서 밀고 있어’라는 말만 들어도 술술 올라간단 말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리어카를 잡아당기는 사람도 있어요.(웃음) 좋은 인연을 만나면 좋은 음악도 만나고 사람이 풍성해져요. 우리는 하나와 하나가 만나 둘인데 열이 되고 스물이 되고 백이 되고 그래요.(웃음)


노래하시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겠네요. 정말 두 분이 만나 백이 된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를 지은 분이 이현주 목사라고 아주 도사 같은 분이에요. 교회도 없이 산속에서 공부를 많이 하며 살아요. 남한강, 북한강에서 남 자 버리고 북 자 버리니까 큰 한강이 되는 거 아니에요. 이 얼마나 기가 막혀요. 결혼할 때 돈 보고 배경 보고 그건 백전백패잖아요. 그러나 서로의 마음만 보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면 백이 되고 이백이 되고 엄청나게 크게 된단 말이죠. 서로 처가에 시댁에 돈이 있고 없고 그걸 보는 게 아니에요. 마음만 맞으면 우리 지금은 라면 먹지만 십 년 후에 큰집 한번 사자, 그러는 거죠.


그렇게 결혼하셨겠죠?

아무것도 없이 결혼할 때 이 금반지 딱 하나 했어요. 우리가 세상 사는 게 길어야 백 년이에요. 지금 사는 사람들 백 년 있으면 다 죽어요. 밖에 있는 저 바위는 수백억 년 전에 생겼을 거 아니에요. 우리를 먼지처럼 우습게 보겠죠. 우리가 하루살이 보는 것처럼요. 서로 사랑하고 위하기에도 부족할 시간이에요.

요즘 노후준비에 대한 내용을 취재 중인데 금융계통 종사자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실은 돈보다 마음 맞는 친구와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요.

저는 10년 전부터 한글을 썼어요. 공연 팸플릿, 시디, 명함도 제가 쓴 글씨고 가끔 간판 같은 것도 써주죠. 친구들 자녀가 결혼할 때 액자를 해서 주기도 하는데 그렇게 좋아해요. 문학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무언가 꿈을 가지고 10년만 매진하면 일이 될 수 있어요. 지금 은퇴하는 사람들 50대 중반 정도잖아요. 먹고사느라 직장 다니고 가정 이룬 것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하는 거예요. 그거 말고 이 세상에 나와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좋아요. 그런데 금방 승부를 보려고 하면 안 돼요. 저 같은 경우도 직장생활과 별개로 웅변하고 노래 배우고 국악 배우고 클래식 듣고, 이 모든 것이 나도 모르게 쌓인 것이죠.


나이 마흔여섯에 노래를 하게 된 게 기적 아니에요? 집 앞부터 100m 아래까지 365일 매일 쓸고 닦는다 생각해봐요. 그러면 뭔가가 나와요. 그런 마음으로 살면 누가 칭찬을 하건 욕을 하건 내가 하고 싶어 한 일이니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얼마나 멋있어요? 그게 꽃 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