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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조율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세요

해암도 2016. 10. 11. 08:33

[결혼 상담 받는 작가 알랭 드 보통]

한국 부부들 고민에 명쾌하게 답
"혼자는 외롭고, 함께하면 숨 막혀… 어느 상태든 영원한 행복은 없어"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47)이 쓴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번역 출간된 지 7주 만에 10만부를 돌파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불안' '여행의 기술'로 기억되는 이 영국 작가는 인류의 난제로 꼽히는 결혼 생활을 글감으로 삼았다.

온라인에서는 작가가 질문에 답하는 하트펀딩 프로젝트 '알랭 드 보통에게 사랑 이후를 묻다'가 연재되고 있다. 오는 28일까지 목표(하트 200만개)에 도달하면 작은 결혼식을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대지를 위한 바느질)에 원고료를 후원금으로 전달한다. 한국인은 결혼에 대해 어떤 '조난신호(SOS)'를 보내고 있을까. 그들이 던진 물음 150여 개 중에 가려 뽑아 드 보통에게 이메일로 답을 청했다.

알랭 드 보통은 “결혼은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끊겠다는 서약이 아니라 그 관심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와 더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알랭 드 보통은 “결혼은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끊겠다는 서약이 아니라 그 관심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와 더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은행나무

―배우자가 집을 비울 때 홀가분하다. 우리 관계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신호인가?

"당신은 정상이다. 옆에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떨어져서 매일 볼 수 없는 남녀일수록 하루가 어땠고 무엇을 바랐는지 잘 이야기하고 들어준다. 우리는 결핍에 민감하다. 부족한 돈, 바라는 날씨, 가지고 있지 않는 차….


일단 손에 넣게 되면 점점 멀어진다. 역설적이지만 배우자를 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매일 밤 한 침대를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혼하고 나서야 배우자의 단점들이 보인다.

"내가 힘겨워하는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는 법이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면 장점이 실망스러운 것으로 바뀐다. 예컨대 가사 능력은 정리 정돈에 집착하는 강박증처럼 보일 수 있다.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 화를 내면 낼수록 아이는 당황하고 자포자기에 빠진다. 모른 척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눈높이를 낮추고 도와야 한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에 끌렸고 더 완벽해지기를 바란 거니까."

―결혼 적령기 두 딸을 둔 엄마다. 딸들이 어떤 배우자를 만날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그들이 잘못된 사람(wrong person)과 결혼하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만 정상으로 보일 뿐, 가까이에서 겪어보면 다 이상하다. 자신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된다. 낭만적이고 영원한 사랑은 250년밖에 안 된 발명품이며 소설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기대를 낮추고 좀 비관적이 될 필요가 있다. 최적의 배우자는 모든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이 아니다. 의견 충돌과 차이를 조율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결혼이란 '살고 싶은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어떤 특정한 고통을 선택한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배우자 앞에서 냉랭하다. 친숙해지면 흥미를 잃듯이 애정이 사라진 탓이라는 설명은 피상적이다. 좀 더 희망적인 해석도 있다. 그 권태감은 배우자에게 상처를 받았거나 화가 났기 때문이고, 후련하게 이야기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럴 땐 내적으로 무감각해진다. 사랑에 있어서 우리는 상처받기 쉬운 어린 아이와 같다. 배우자가 냉담해 보일 때 그(그녀)는 굴욕감 없이 그 문제를 풀 기회를 찾고 있는 것이다."

―결혼을 꼭 해야 하나?

"행복한 결혼 생활은 드물다. 독신으로 생을 보내도 괜찮다. 저마다 단점이 있다. 독신에는 외로움이 있고 결혼엔 숨 막힘과 노여움, 좌절이 따른다. 진실을 말하자면 사람은 어느 상태에서든 행복을 누리는 재간이 썩 뛰어나지 않다."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입력 : 201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