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슈퍼’ 열고 작품 1만원에 파는 사진작가
“내 사진 1장에 1억 받고 나니 가격 파괴하고 싶었어”
“사진 찍기는 라면 끓여 먹기다. 필름, 현상액, 종이 모두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니까.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되니까.”
‘사진은 라면’이라던 작가 김중만(62)이 이번엔 슈퍼를 차렸다. 사진을 단돈 1만원에 파는 ‘아트슈퍼마켓’이다. 슬리퍼 총총 끌고 마트로 나가 우유 사고 콜라 사듯 예술을 산다.
이미지 크게보기사진작가의 길? 미친듯이 찍되,
사진작가 김중만
진솔하게 사는지 돌아봐야
18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656-13번지에서 한 달간 여는 이 슈퍼엔 김중만이 반세기 동안 찍은 사진 중 1만여 점이 ‘물건’으로 나왔다. 1만~3만원짜리가 가장 많고, 10만~200만원 작품도 있다. 마트에서 장 보듯 관람객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 장씩 빼서 담는다. 빈자리가 생기면 점원들은 재빨리 새로운 사진으로 채워넣는다. 슈퍼 진열대에 주스병 채워넣듯!
‘아트(Art)’를 단돈 1만원에 팔 생각을 한 건, 3개월 전 프랑스 파리에서다. “한복 입은 여인을 찍은 내 사진이 1억원에 팔렸다. 그날 생각했다. 내 작품 좋아하는 분들에게 ‘소유의 기쁨’을 누리게 해드리자, 시장의 가격을 파괴해보자. 그게 만원이면 가능할 것 같았다.”
슈퍼는 절찬리 성업중이다. 개점 열흘도 안 돼 3000장이 팔려나갔다. 40~50대 중년 여인들이 북적이고, 사진을 공부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몰려온다. 벽에 빼곡히 걸린 사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여인들에 김중만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 1시간째 저런다. 구석구석 자세히도 살핀다. 살 수 있다는 즐거움에 표정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한 여성이 대나무를 찍은 흑백사진을 바구니에 담자 김중만이 성큼성큼 다가갔다. “안 팔려고 했다가 내놓은 작품이에요. 정말 잘 사셨습니다.” 여인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구치소와 정신병원에 갇혀 있던 몇 개월을 빼고 손에서 한시도 카메라를 놓은 적 없는 사내.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만큼이나 뜨거운 인생을 산 남자. “내가 살아온 과정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사고도 많이 쳤지. 그래도 날 작가로 여기고 사랑해준 분들이 있었고, 그것이 43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 김중만을 이끌어준 가장 큰 힘이었다. 그 마음의 빚을 현실적으로 갚아드리고 싶었다.”
전시 수익금은 고려대 안암병원 ‘Cure Eyes’ 프로젝트에 전액 기부한다.
사진은 예술이 아니야
삶이 예술이지, 사진은 기록일 뿐
내 사진 단돈 만원, 62세 김중만
나이 예순둘에 ‘슈퍼마켓’을 차린 김중만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슈퍼 주인이다. 팔뚝과 목, 머리에 온통 시퍼런 문신이다. “머리에 웬 별이냐” 묻자 “별이 되고 싶어서”란다. 목과 발목에 새긴 나비는 “자유롭게 훨훨 날고 싶어서”다. 숫자들도 저마다 의미가 있다. “46은 천안함 사건 전사자 숫자, 304는 세월호 사고로 죽은 아이들 숫자. 절대 잊지 않으려고.” 아내에게 충성을 맹세한 날짜, 어머니 생신, 로마 전시 날짜도 새겼다. “낙서를 너무 많이 했어.” 시무룩해진 표정이 꼭 아이 같다.
이미지 크게보기레게머리는 싹둑 자르고, 펄럭이는 치마바지를 입었다. 요지 야마모토, 프라다, 알렉산더 맥퀸을 즐긴다. 아울렛 제품이란다. “나 말고는 아무도 안 사는 옷이라 90%까지 할인해 살 때도 많지.” 판매할 사진에 숫자 1, 2, 3을 써가며 가격을 매기던 그가 폭포 사진을 들어올리더니 씩 웃었다. “주왕산 3호 폭포다. 그 동네 공무원이 이 폭포가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폭포라고 하더라. 왜 널리 알리지 않느냐 물었더니 대답이 가관이다. 경상도 사나이들이 그 설화를 마음에 안 들어한대. 남자가 여자 옷 훔치는 게 자존심 상한다 이거지. 그 말에 입에서 우물거리던 닭갈비가 밖으로 다 튀어 나왔다.”
한강과 박찬욱은 닮았다?
-사진 한장에 만원! 뭐 화나는 일 있으셨나?
“난 그저 이런 마켓들이 전국으로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오프닝날 계원예대 교수들이 와서 자기들도 해보겠다며 흥분하더라. 국민소득 4만 달러 돼야 문화예술과 일상이 상생한다. 그렇게 될 때까지 나는 끊임없이 대중과 가까워지기를 시도할 거다.”
-모든 예술가가 김중만처럼 할 순 없다.
“물론이다. 좋은 작품 생산하는 게 우선이다. 집요하게 노력해야 한다. 맨부커상 받은 한강을 봐라. 그는 민주화 이후 갈 길을 잃은 우리 문학에 방향을 보여줬다. 한강을 보면 박찬욱이 떠오른다. 어딘가 닮았다. 폭력과 아름다움의 극명한 대비를 절묘하게 표현한다.”
-아트슈퍼 마켓을 구상한 게 파리에서 1억원에 사진을 판 순간이었다고 했다.
“세계 사진 시장은 깜짝 놀랄 정도로 커져가고 있다. 우리는 내 작품이 1억에 팔린 걸 놀라워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1억은 기본이다. 그 작품이 한복 사진이라는 게 의미 있다. 우리만 가진 소박하지만 세련된 아름다움이 있다.”
라이카 S2와 동침하는 이유
-백남준은 ‘정보 무당’으로 불렸다. 김중만도 무당인가?
“영성이나 신내림 같은 것엔 관심 없다. 나는 훨씬 육체적이다. 다만 내가 피사체로 삼는 대상들은 내 마음에 스크래치를 일으키는 것이다. 과일 한 조각이든, 부서진 나무든. 전생에 한(恨)이 많은 사람이었나 싶다. 아름다운 건 많은 사람들이 한다. 좀 더 예쁘게 찍으면 훨씬 잘 팔린다. 하지만 나는 첫눈에 좋은 것보다 볼수록 좋은 사진이 좋다. 사진은 두 종류로 나뉜다. 광고사진과 가족사진. 5년 뒤 다시 봐도 마음에 울림을 주는 사진은 어느 쪽일까?”
-니스 국립응용미술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사진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엔 카메라의 속도에 반했다. 5분만에 결과가 나오니! 그 속도가 함정이란 걸, 셔터 한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깨닫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잠자고 샤워할 때 빼고 늘 카메라를 끼고 산다더라.
“잠잘 때도 끼고 잔다.(웃음) 요즘은 ‘라이카 S2’를 끼고 자는데, 얘는 한달을 데리고 자도 마음을 안 연다. 까다롭다. 24장짜리 플라스틱 카메라도 좋아한다. 일본 가면 50개씩 사온다.”
-일회용 카메라 말인가?
“사진은 입자 싸움이다. 이 플라스틱 렌즈를 통해서 찍은 사진은 입자가 굉장히 거칠다. 이걸 확대하면 핀이 안 맞고 거칠어진다. 회화적인 느낌이다. 제일 만만한 건 캐논이다. 얼마 전 파주 다녀올 때도 자동차 운전하면서 한손으로 사진을 찍었다. 수직 수평을 똑바로 맞추면서, 4분의 1초까지 안 흔들리고 찍는 연습!”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고 했다.
“삶이 예술이지. 사진은 그 기록이고. 100만원짜리 붓이 있다고 해서 그림을 잘 그릴 순 없다. 100만원짜리 신시사이저가 있다고 연주를 잘하는 건 아니다. 사진은 다르다. 누구나 찍을 수 있고, 빠르게 터득한다. 중요한 건, 내가 얼마만큼 세상을 진솔하게 살았느냐, 돈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느냐이다. 그것들과의 싸움이다.”
의사 아버지가 남긴 유산
-부친이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헌신한 의사였다.
“그 아버지 때문에 좀 골치가 아프긴 했다.(웃음)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맏이인 날 불러앉히더니 ‘은행에 200만원이 있다’고 하시더라. 마치 20억 유산을 물려주는 듯 당당한 목소리로. 나는 요지 야마모토를 입지만 아버지는 양복 두 벌, 가방 두 개, 청진기 세 개에 모터 달린 자전거가 전부였다. 나는 그 양반 그림자도 못 밟는다. 값어치로 매길 수 없는 큰 유산을 아버지는 내게 주셨다.”
-가족과 아프리카에 살다가 혼자 프랑스로 유학 갔다. 필름 살 돈도 없을 만큼 가난했다던데.
“주말마다 식당 알바를 했고, 필름 사려고 밥을 굶었다. 내 돈으로 처음 카메라를 산 게 1990년이다. 사진 시작한 지 25년 만이다. 가난했던 20대가 내 인생의 전성기였다.”
-43년 사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케냐에서 동물들 찍었을 때라고 했다.
“아프리카는 내게 치유의 땅이다. 마약, 이혼 등으로 병든 내 영혼과 육신을 그 땅이 어루만져주고 고쳐주었다. 아버지의 땅이기도 하다. 스타 사진 찍기를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간 건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기도 했다. 8개월 동안 싸구려 봉고차를 덜덜거리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촬영했다. 아내가 그러더라. 그 막막한 사바나를 바라보며 뭔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내 얼굴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더라고.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서 스타들 사진을 찍을 때 나는 그저 육체 노동자에 불과했다.”
-김중만 같은 사진작가가 되려면?
“미친 듯이 찍으면 된다.”
-재능도 타고나야 하지 않을까?
“전혀. 재능은 인내심과 연관돼 있다.”
-20대에게 한 말씀.
“젊음의 특권은 ‘방황할 수 있는 자유’다. 20대에 자신을 무엇으로 만들겠다고 섣불리 결정하지 마라. 화려한 스펙을 쌓는 것? 나는 그게 오히려 자신감 부족으로 보인다. 방황할 수 있는 자유란, 자신을 좀 더 들여다보고 사랑해보라는 의미다. 우리 인생은 예상보다 훨씬 길고, 예상보다 훨씬 기회가 많다.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다. 의연해져라. 원없이 방황하라.”
전시문의(02)542-2718
조선일보 김윤덕·최주용 기자 편집=차소현 입력 : 201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