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건축

“건물 모양은 제가 아니라 땅에서 나오는 거죠”

해암도 2016. 3. 3. 11:48


 

건축가 이정훈. 사진 송곳 제공
건축가 이정훈. 사진 송곳 제공

[매거진 esc]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세계적인 건축 잡지에서 ‘차세대 건축 선도 세계 10대 건축가’로 선정된 이정훈 조호건축 대표
    
건축은… 모르겠다. 내가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차를 타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지나갈 때면 숨이 막힌다. 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부숴버리고 싶다. 물론 그럴 수 없다. 나는 그 거대한 건물이 도대체 어떤 문화적 사유에 의해 동대문에 지어졌는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그곳에 간다. 외국인 친구가 와도 데리고 간다. “그만큼 서울에 볼 게 없다는 거겠죠.” 건축가 이정훈은 말했다. 동의한다. 이것은 전통 문화를 존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당연히 아니다. 서울은 역사의 시간 위에서 수십년간 지워졌다. 나는 이 글을 삼일절에 쓰고 있다. 단절된 시간 동안 서울은 많은 것을 잃었다. 지워진 시간 위에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었다. 지금, 나는 더 뭐라고 적고 싶은데, 그건 공허한 일이다.

이정훈이 운영하는 조호건축 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그가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 2013년에 미국 건축 잡지 <아키텍추럴 레코드>의 ‘차세대 건축 선도 세계 10대 건축가’로 선정됐으며, 2014년에는 독일 프리츠 회거 아키텍처상 ‘스페셜 멘션’을 수상했다. 이것들은 그가 받은 상의 일부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만나는 것을 계속 꺼렸다.

이정훈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에서 건축회사를 다녔다. 건축가 반 시게루, 자하 하디드의 사무실에서 일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했다. 너무 명망 높은 양반들이라 한편으로 이정훈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는 2009년 한국에 조호건축 사무소를 차렸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물은 경기도 용인시 죽전에 있는 헤르마 주차 빌딩이다.

사진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화려하다. 외관은 마치, 독특한 형태로 지은 미술관 같다. 900개의 플라스틱 패널이 벽면에 붙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크기가 다르다. 패널 표면에는 무늬와 주름이 앉혀져 있다.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이 패널에 부딪치며 빛의 풍경을 자아낸다. 흔치 않은 건물이다. 당연히 공사 현장이 수월했을 리 없다. 900개의 패널은 크기가 달라서 각각 제작해야 했다. 시공 담당자들은 도면을 보고 난색을 표했다. “직접 제가 인부들처럼 일하면서 보여줬어요. 이렇게 하는 겁니다, 라고 소리치면서 하나하나 같이 들고 옮기면서, 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이정훈이 말했다.

기하학적이고 특이한 건물이
어떤 문화적 사유에 의해
그곳에 놓이게 됐는지는 몰라도
나는 건물의 다른 미덕을 존중한다

여러 언론이 이 빌딩을 다루었다. 그럴 만하다. 이 건물은 설치 작품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기하학적이고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어떤 문화적 사유에 의해 그곳에 놓이게 됐는지 모르겠다. 지식이 부족한 탓이겠지. 반면 나는 이 건물이 가진 다른 미덕을 존중한다.

단독주택 ‘커빙하우스’. 사진 남궁선 작가 제공
단독주택 ‘커빙하우스’. 사진 남궁선 작가 제공


“조호건축의 스타일 자체가 수공예적인 것을 추구하니까, 당연히 힘들어요. 디자인하는 사람도 힘들고, 짓는 사람도 힘들고. 하지만 어렵게 지을수록 건물의 가치는 올라가요.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건물은 요리나 옷과는 달라요. 영구적인 거예요.” 900개의 패널을 일일이 붙여 주는 기계는 없다. ‘수공예적인 것’이라는 설명을 더 쉽게 이해하려면, 그가 디자인한 또 다른 건물을 살펴보아야 한다. 단독주택 ‘커빙하우스’다.

이 집은 곡선과 날카로운 끝선이 인상적이다. 1만장의 벽돌을 일일이 손으로 각도를 바꿔가며 쌓아서 곡선을 만들었다. 이 건물을 사진으로만 보고도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터뷰가 끝난 후에 이 건물을 직접 보러 갔다. 그리고 그에게 사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할 때 이정훈은 말했다. “한국적인 수공예라고 할까? 정교함은 떨어지는데, 약간 투박하면서 소박한 손맛이 있어요. 그게 나름 아름다워요. 한국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선이에요, 그건.”

그 말을 듣고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커빙하우스’ 앞에 서서… 그냥 그렇게 꽤 있었다. 사진으로 볼 땐 곡선이 도드라졌는데 직접 보니 1만장의 벽돌들 각각이 눈에 더 띄었다. 인부들이 각도를 맞춰가며 벽돌을 손으로 쌓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고, 그들끼리 주고받은 이야기도 들리는 것 같았다. 건물이 웃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곡선은 오히려 둔탁하고 거칠고 자연스러웠다. 사진으로 볼 때 나는 이 기하학적인 선은 그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 말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조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건물이 아니라 선을, 이를테면 코끼리의 코를 만지는 장님이었구나, 라는 생각도 이제는 한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조호건축에 의뢰하는 분들은 ‘아이덴티티’를 원하세요.” 주차장을 미술관처럼 둔갑시킨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모든 건물이 똑같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건물의 아이덴티티는 도시의 품격을 좌우한다. 하지만 내 마음을 움직인 건 이 말이 아니다. 커빙하우스를 직접 보러 가도록 만든 말이 있다.

“건물의 형태는 저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땅에서 나오는 거예요. 땅에 맞는 형태를 찾아내는 거죠. 건축은 땅이 가진 가능성과 건축 재료를 버무리는 작업이에요.” 그는 숨을 길게 내쉬며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제 마음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는 않아요”라고도 말했다. 그가 한 이 당연한 말들이 아마도 나를 커빙하우스 앞에 오래 서 있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진작 그가 디자인한 건물을 직접 보았다면 나는 그를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그가 한 작업들을 하나하나 다시 찾아보았다. 2015년 5월 완공된 뫼비우스 하우스를 보면 이정훈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뫼비우스 하우스는 강원도 강릉에 지어졌다. 이 건물은 선과 면이 날카로운 형태를 띠며 이어진다. 뫼비우스 하우스를 하늘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우리가 흔히 ‘옳다’고 여겨온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이 과연 옳은가, 의심하게 된다. 건물 주변의 형태들을 관찰하면 이정훈이 만든 기하학적인 선들은 오히려 불가피한 선택처럼 보인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원래의 것을 비로소 찾아냈다는 생각도 든다. 커빙하우스를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감정도 비슷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인터뷰를 했으면 좋은 얘기만 써야 하는데…. 이정훈이 이 글을 읽고 화를 낼까? 건축이 뭔지 모르는 게 이상한 글을 썼다고 말할까? 내가 쓸데없이 너무 쿨한 척하는 걸까? 다만 이것이 내 ‘기하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우성 시인   한겨레 등록 :2016-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