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건축

서울 한복판 인왕산 밑에 3대 사는 집 지은 건축가

해암도 2015. 12. 12. 06:18

삶의 질에 가치를 두는 현대인이 늘면서 내가 꿈꾸던 집을 직접 짓고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주택을 단순한 거주가 아닌 삶의 가치를 반영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도 삶에 꼭 맞는 집을 찾고 있다면 '주택의 재발견'이 찾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눈여겨보기 바란다.  

홍제동 언덕위의 편안한 집 ‘강녕재(崗寍齋)’

건축가 진영관(37)·이재은씨 부부는 저녁이면 아들 이완(4)과 딸 이수(1)를 데리고 4층 자신의 집에서 2층으로 내려간다. 아랫집 3층에 사는 진씨의 남동생 영호(35)씨도 2층 문을 두드린다. 2층에는 진영관·영호 형제의 부모님이 살고 있다. 하루에 한번씩 3대(代)가 모두 모여 얼굴을 마주하고 안부를 묻는다.

홍제동 강녕재 After/사진=진영관

진씨 가족은 지난 2012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산 밑자락에 세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지었다. 날씨가 좋으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산책을 가거나 텃밭에서 채소를 가꾼다. 거실에 앉아있다가 고개만 돌리면 산이 보이고 주말이면 손님들과 함께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 아이들이 풀내음을 맡고 흙과 뒹굴며 뛰어놀 수 있는 집이다. ‘언덕위에 있는 편안한 집’이란 뜻으로 ‘강녕재(崗寍齋)’라고 지었다.

강녕재는 서울 지하철 홍제역, 무악재역과 멀지 않다. 시끄러운 대로변을 벗어나 좁은 언덕길을 조금 오르면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동네가 나타난다. 서울 한복판인데도 한적한 시골 느낌이 나는, 그야말로 숨겨진 보물 같은 마을이다.

홍제동 강녕재 Before(왼)&After(오)/이미지=진영관

진씨 가족이 지난 2010년 121㎡(36.6평) 넓이의 주택 부지를 매입한 배경도 독특하다. 서울시는 20~25년 전 이 동네에 무허가로 집을 짓고 사는 주민들에게 일정 금액을 받는 대신 주소지를 부여하고 합법적 토지 소유권을 인정해줬다. 하지만 2010년까지 이곳에 거주하던 전(前) 집주인은 소유권만 갖고 있고, 시에 돈을 거의 납부하지 못한 상태였다. 진씨 가족은 서울시에 당시 시세로 3.3㎡당 350만원, 약 1억3300만원을 납부하고 전 집주인으로부터 소유권을 이전 받았다.

원래 있던 낡은 주택은 철거하고 강녕재를 지어 2012년 가을 입주했다. 공사비는 3.3㎡당 450만원으로 총 3억8000여만원이 들었다. 건축가인 진씨가 직접 설계하고 시공과 감리까지 맡았다. 진씨는 건축설계사무소 JYK아키스튜디오(jyk.re.kr)를 운영 중이다. 덕분에 설계비와 시공 관리비를 조금 아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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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강녕재 뒷마당&텃밭(왼),뒷마당(오) /이미지=진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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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강녕재 뒷마당&텃밭/이미지=진영관

스킵플로어란 집을
한 층씩 쌓아올리지 않고
반 층씩 높여 설계하는 방식


4층짜리 건물이 들어선 건축면적은 72.5㎡(21평)으로 아주 넓지는 않다. 그러나 마당이 있고 집 바로 뒤편으로 공원에 있어 탁 트인 개방감을 준다. 1층은 자동차 4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 공간과 창고로 쓴다. 2층(49㎡·14.8평)은 부모님댁, 3층(59.4㎡·17.9평)은 남동생이 산다. 4층(59.4㎡17.9평)은 진씨 부부와 두 자녀가 머문다.

대지 자체가 편평하지 않고 경사진 언덕에 집을 짓다보니, 가족들이 사는 공간도 획일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스킵플로어’ 형식으로 꾸몄다. 스킵플로어란 집을 한 층씩 쌓아올리지 않고 반 층씩 높여 설계하는 방식이다. 한 가구 안에서도 공간이 윗층, 중간층과 아래층으로 나눠지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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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부모님 집은 현관문을 열고 발을 딛는 공간이 중간층이다. 중간층에는 거실이 있고, 계단을 내려가면 서재와 침실이 있는 아래층이 나온다. 중간층에서 계단을 오르면 주방이다. 거실과 침실이 계단으로 나눠져있어 거실에서 손주들이 노는 소리가 침실까지 들리지 않아 조용한 생활이 가능하다. 거실과 주방 역시 분리되어 있어 주방의 음식 냄새가 거실까지 퍼지지 않는다.

주방 베란다는 바로 뒷마당 텃밭과 연결된다. 햇빛이 많을 때는 주방 베란다 밖에 있는 데크에 야외 테이블을 펼쳐놓고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한다. 마당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바로 가져다가 식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


미혼인 영호씨가 사는 3층은 부모님댁과 구조가 다르다. 3층 현관문을 열면 나타나는 중간층에 거실과 서재가 있다. 오른쪽에 있는 작은 계단을 오르면 주방과 침실, 욕실, 작은 드레스룸이 나온다. 진씨는 “나중에 동생의 신혼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공간을 구성했다”며 “동생은 탁 트인 집보다, 방이 작아도 기능이 분리된 공간을 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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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은 진씨 부부가 아이 둘을 키우며 사는 공간이다. 주방에 머물며 거실에 있는 아이들을 시야에 두기 위해 주방과 거실을 넓게 만들었다. 계단을 오르면 아이의 놀이방과 부부 안방이 나타난다. 여기서 또 좁은 복도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 옥탑방이 나온다. 진씨의 서재다. 옥탑방을 통해 옥상 테라스로 나갈 수도 있다. 테라스는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차를 마시는 카페처럼 쓰기도 한다. 한여름에는 공기를 넣어 부풀리는 고무 수영장을 끌어다 놓고, 아이들과 친구들이 놀러와 물놀이를 즐긴다.

진씨는 “직접 거주하는 집인 만큼 분양 주택에서 놓치는 결로·단열·방수 부분에 각별하게 신경썼다”고 말했다. 단열재를 나란히 다닥다닥 붙이는게 아니라 서로 겹치게 배열을 하고 외벽과 내벽 사이 공간도 두텁게 만들어 단열 효과를 높였다. 겨울철 보일러 작동을 멈춰도 2~3일은 실내 온도가 20도 수준에서 유지될 정도다.

내부 마감에는 돈을 아꼈다. 집 안에 들어서면 건축에 쓰이는 재료들이 눈에 띄여, 자재 그대로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일부 벽은 노출 콘크리트로 남겨두거나, 각 방과 방 사이를 구분하는 칸막이 역할을 하는 벽은 저렴한 시멘트 벽돌로 만들어 비용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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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강녕재 단면도/이미지=진영관

시멘트 벽돌은 주로 건물의 외벽에 쓰이는 재료인데, 진씨는 한장에 120원 하는 값싼 벽돌을 구해다가 내부 마감재로 썼다. 벽지를 붙이면 몇 년에 한번씩 다시 도배를 해줘야 하고 페인트칠을 해도 벗겨지기 때문에 반영구적으로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자재를 선택한 것이다.

진씨는 “실내 인테리어에 다양한 가구나 조명으로 과하게 장식하는 것보다는 건축 현장에서 쓰이는 자재를 가져다 썼다”며 “벽돌, 시멘트 등 재료 본래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디자인 요소로 적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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