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주꾸미, 여름 민어, 가을 낙지, 겨울 숭어

해암도 2013. 2. 2. 08:52

 

여름엔 개도 안 먹는다는 숭어, 지금 먹어야 딱이지요

 

바다맛 기행김준 지음|자연과생태|272쪽|1만6000원

 

그물에 갇혀 혼비백산 뛰어오르는 숭어들, 갯벌에서 눈자루만 내밀어 망을 보는 칠게, 속이 좁아 회는 마리당 딱 두 점 나온다는 밴댕이, 물질을 마친 해녀의 가쁜 숨비소리….

 

이 책에는 '바다'가 담겨 있다.

봄 주꾸미, 여름 민어, 가을 낙지, 겨울 숭어가 철철이 펼쳐지는데 읽다보면 꿀꺽 침을 삼키게 된다.

어촌사회학을 전공한 저자 김준(50·전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씨는 섬이나 갯벌에 대한 책을 여럿 펴냈다. 하지만 어민들만 성가시게 하고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낭패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를 떠올렸다고 한다.

 

31일 서울 광화문의 산낙지집에서 만난 김씨는 "밥상 위에서라면 어민과 도시민의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어느 계절에 어디에서 나고 어떻게 이름을 얻게 됐는지 안다면 먹는 행위가 생계에서 문화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뻣뻣한 진도 돌미역으로 열려 알싸한 흑산도 홍어로 닫힌다. 왜 하필 미역을 앞세웠을까."어민에게 바다는 '목숨줄'입니다. 과거엔 공동체의 룰이 엄격했는데 인구가 줄면서 많이 무너졌지요. 그런데 미역은 여전히 공동으로 채취해 똑같이 분배합니다. 요맘때 힘을 모아 바위를 닦아야 4~5월에 거기서 자연산 미역을 딸 수 있어요. 돌미역 스무 가닥 한 뭇이 70만원까지 갑니다."

 

 

(가운데 사진)숭어.

 

마을주민이 공동 관리하는 어장인 갱번은 '사적 영역'을 허용하지 않는다.

몰래 해초를 뜯거나 어업활동을 할 경우 권리를 몰수하거나 마을에서 쫓아낸다는 규정도 있다. 김씨는 "벌교의 한 마을어장에서 꼬막을 캘 때 공동 작업에 불참하면 벌금 10만원을 물어야 하고, 완도의 어느 섬마을은 거주 기간과 식구 수에 따라 마을어장을 이용할 수 있는 몫을 정한다"고 했다.

 

책은 사람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소유경계선'이 없는 바다가 만들어낸 특이한 노동, 분배 방식까지 다룬다. 팩트(사실)를 얹은 화법도 매력적인데 이런 식이다. '참숭어는 겨울에 좋고, 가숭어는 보리 이삭이 달릴 때가 좋다. 감성돔은 봄에 맛이 없고 낙지는 가을에 부드럽다….

 

' 물고기 중에 으뜸은 숭어(崇魚). "고기 맛이 달고 깊어서 물고기 중에 최고"(정약전의 '자산어보')라며 문헌과 맥락도 일러준다."자연의 섭리는 오묘합니다. 겨울과 봄 숭어는 달고 여름 숭어는 밍밍해 개도 안 먹지요. 가을 숭어는 기름져 고소합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왕성한 먹이활동을 한 탓입니다."

 

최고의 맛을 내는 시기가 다른 까닭은 산란기와 성장기 같은 종족보존 원리, 즉 생태질서와 얽혀 있다. 김씨는 물때가 핵심이라고 했다. "해와 달이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잖아요. 사리(음력 보름이나 그믐)에는 '물이 산다'고 말합니다. 물살이 세서 낚시는 안 되고 그물로 잡아야 해요. '물이 죽는' 조금(음력 여드레나 스무사흘)에는 낚시나 낙지잡이가 괜찮습니다.

 

"바닷바람 맞으며 섬과 갯벌을 돌아다닌 지 스무 해가 넘었다. 도회지에서 온 구경꾼쯤에 머물렀다면 이 책은 어림없었다. 어민을 만나면 이렇게 묻는단다. "오늘 몇 물이요? (물때가 어떻게 되나요?) " 저쪽에선 "사리여. 오늘부터 물 살기 시작허요" 같은 답이 돌아온다.

 

당장 이달에 어디로 가서 뭘 먹으면 좋을지 궁금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말했다. "전남 벌교의 꼬막, 무안 도리포에서는 숭어회, 진도나 신안으로 간다면 간재미를 먹을 수 있습니다.  " 조선 2013.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