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옷을 벗고 빛을 입다… 스필버그도 감탄한 '누드 쇼'

해암도 2015. 4. 6. 06:46


65년간 600만명이 본 佛'크레이지 호스' 21일부터 한국 공연

관능적이지만 야하지는 않아  하반신 겨우 가린 무용수
그 여체를 화폭으로 삼아  빛으로 그린 그림

佛 문화유산이란 자부심  "높은 미학적 완성도 추구"
라거펠트·카발리·웅가로…  새 디자인 靈感 얻기도

10개국 출신 무용수 30명  발레 등 고전무용 배운
키 168~172㎝의 여성  성형과 문신은 금지

"여성 무용수들이 다 벗고 춤을 춘다던데?" "예술성이 강하다던데?" 프랑스에서 건너오는 '19금 누드 쇼' 소식에 의견이 분분하다. 살색이 진한 홍보용 사진을 보고 "흔한 스트립쇼 아니냐"는 의문도 나왔다.

논란의 주인공은 1951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 중인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다. 현지에서는 짧게 '크레이지'(Le Crazy)로 불린다. 여성 무용수 10명이 상반신은 전부 벗고, 하반신은 '간신히' 가리고 나와 90분간 춤춘다. 저속한 누드 쇼로 치부될 법한데, 65년간 600만명이 관람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마술 같다"고 했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하루가 멀다고 찾아간 고정 관객이었다. "무용수들이 날아다닌다"며 감탄한 '팝의 여왕' 비욘세는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공연을 응용한 춤을 넣었다. 단순히 노출로만 승부해서는 얻을 수 없는 반응이다. 누드인가, 아트인가. 지난 25일 '크레이지'의 파리 공연장을 찾아가 봤다.

1951년 시작한 프랑스 파리의 ‘크레이지 호스’는 벗은 무용수의 몸이 조명을 받아 움직이며 그려지는 한 폭의 누드화다. 하이힐로 높이를 맞춘 동일한 키의 무용수들은 똑같은 분장으로 나와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다. 무대는 마술을 재현하는 공간이라 여겼던 창업자 알랭 베르나르당은 현실의 개성을 지우고 환상 속 여인을 보여주길 원했다.
1951년 시작한 프랑스 파리의 ‘크레이지 호스’는 벗은 무용수의 몸이 조명을 받아 움직이며 그려지는 한 폭의 누드화다. 하이힐로 높이를 맞춘 동일한 키의 무용수들은 똑같은 분장으로 나와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다. 무대는 마술을 재현하는 공간이라 여겼던 창업자 알랭 베르나르당은 현실의 개성을 지우고 환상 속 여인을 보여주길 원했다. / 크레이지호스파리 제공
"프랑스 문화유산을 지킨다" 자부심

공연장은 파리의 대표적 명품 거리 조지생크가(街)에 있다. 에르메스·구찌·발렌시아가 등 명품 매장이 늘어선 거리에서 거대한 입술 조형물이 붙은 공연장은 눈에 띄었다. 해가 지면 건물 앞 가로수에 붉은 조명이 환하게 켜진다.

지난 25일 오후 8시, 15분 후 시작할 쇼를 앞두고 관객들이 들어섰다. 250석 소극장을 둘러보니 예상 외로 여성이 많았다. 남녀 비율은 반반 정도. 대부분 30~50대 중장년 커플이다. 후드티를 맞춰 입은 중국 단체 관광객도 보였다. 넥타이 정장과 드레스 차림의 남녀 커플은 나란히 앉아 샴페인을 홀짝였다. 그들의 자리는 1000유로(120만원)짜리 VIP석이다. 관객의 60% 정도가 현지인, 40%가 관광객이다.

전면이 검게 칠해진 무대는 가로 6m, 높이 2m로 매우 작다. 키 170㎝가 넘는 무용수가 하이힐을 신고 서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하다. 제작진은 이 무대를 '블랙박스' 혹은 '매직박스'라고 부른다.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던 환상을 무대에서 영사기를 돌리듯 보여준다는 뜻이다.

'1분 후 시작한다'는 문구가 영상으로 안내되고 곧이어 여성 무용수 10명이 등장했다. 붉은 군복과 검은 군모를 쓴 영국 왕실근위대 복장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근위대 복장에서 면(面)을 없애고 선(線)만 남겼다. 벗은 몸에 끈을 걸쳐 군복으로 보일 법한 여지를 남겼다.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를 비튼 '신이여 누드를 구하소서'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군가에 맞춰 무용수들이 팔다리를 뻗기 시작하자 관능이라는 두 글자가 3차원으로 변신했다. 무대의 지휘자는 조명이었다. 빛은 혼합하면 흰색이 된다. 무용수의 피부도 희다. 10분 안팎의 미니쇼가 10여개 이어지는 동안, 어디서부터가 몸이고 어디까지가 빛인지 알 수 없이 몽롱해졌다.

특히 긴 다리의 움직임에 시선이 모아진다. 세계적인 구두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루부탱이 "다리는 온몸을 불꽃으로 만드는 언어"라고 말한 이유를 알 듯했다. 거의 다 벗은 여성이 코앞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야하다거나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노출을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에 능한 프랑스식 미감(美感)이 이런 것일까. 여성 신체의 특정 부분을 확대하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길고 유연한 여성의 몸을 감출 듯 드러낼 듯 훑어가는 조명을 따라, 움직이는 누드화가 그려졌다.

공연장에서 만난 안드레 데상베르그 제작사 사장은 "섹슈얼하지 않고 센슈얼한 쇼"라고 했다. 성적(性的)인 자극이 아니라 관능적인 매혹을 강조한다는 뜻이었다. 데상베르그는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쇼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표가 흔들리지 않았기에 65년간 지속될 수 있었다"며 "공연장 청소 담당도 프랑스의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일한다"고 했다. 그들이 중시하는 65년 역사는 공연장 양쪽 벽에서 확인된다. 오른쪽에는 예술감독을 비롯한 참여 아티스트의 이름이, 왼쪽에는 65년간 쇼를 거쳐간 모든 무용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무용수들 신체 치수까지 정확하게 맞춰

'크레이지 호스' 속 배우
크레이지호스파리 제공
원래 '크레이지 호스'는 노래 부르고 춤추는 파리의 유명한 살롱이었다. 호스(horse, 말)는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용맹한 인디언 추장의 이름에서 따왔다. '크레이지' 공연을 만든 전위예술가 알랭 베르나르당이 "크레이지 호스의 굴하지 않는 정신을 배워야 한다"며 지었다.

르누아르는 그려서, 아르마니는 입혀서 창조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그는 벗겨서 완성했다. 베르나르당은 "여체(女體)를 화폭 삼아 빛으로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그림'에 반한 관객들로 250석이 날마다 채워진다.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로베르토 카발리, 파코 라반, 에마누엘 웅가로가 공연에서 받은 영감을 담아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2012년 루부탱이 객원 예술감독을 맡자 현지 언론은 "파리의 두 상징이 만났다"고 떠들썩했다. 공연은 석 달간 전석 매진이었다.

여성의 몸을 화폭으로 여겼던 베르나르당은 자신의 '캔버스'에 매우 엄격했다. 무용수의 키는 168~ 172㎝를 뽑는다. 다리 길이는 상반신 대비 3대1~3대2, 양쪽 젖가슴 사이 거리는 21㎝, 배꼽에서 치골까지는 13㎝여야 한다. 현재 크레이지 무용수는 30명으로, 평균 연령은 24세다. 발레 등 고전 무용을 배운 여성만 뽑는다.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미국, 러시아 등 10개국 출신이다. 이들이 한 해 소비하는 빨간 립스틱은 300개, 인조 속눈썹은 720벌, 스타킹은 2500켤레다. 한 달에 한 번 의무적으로 체중을 재야 하며, 성형과 문신은 금지다.

의상이라 불리는 것들은 주로 끈이다. 접고 펴거나 치장할 여지가 거의 없다. 의상 디자이너 앙투완 크룩은 "무용수들이 옷을 입지 않는데, 왜 디자이너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끈으로 라인을 만들고, 그 라인을 빛이 오차 없이 채우려면 완벽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끈이 몸에 꼭 붙어 있되 옥조이지 않고, 구슬이나 반짝이를 달되 쉽게 떨어지지 않아야 하니 제작에 상당한 숙련도가 요구된다. 의상 담당 한 명이 일주일을 꼬박 매달려야 '끈' 의상 한 벌이 나온다.

크레이지는 1994년 베르나르당이 자살한 후 세 자녀가 11년간 경영하다가 벨기에 사업가에게 넘어갔다. 안드레 데상베르그 사장이 경영을 맡은 것은 2006년이다. 한국에서도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한 '태양의 서커스' 홍보·마케팅 최고책임자로 12년간 일한 데상베르그는 영어·불어 등 5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여성. "패션과 디자인에 예민한 한국이 크레이지를 보여주기에 최고의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전체 안무를 맡은 필립 드쿠플레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안무를 담당한 프랑스의 대표 안무가다. '태양의 서커스' 안무에도 참여했다.

크레이지 외에도 유명한 파리 쇼로 물랭루주가 있다. 1200석 대극장에서 저녁을 먹으며 보는 물랭루주는 과거의 화려함에 집중한다. 20세기 초반 '벨 에포크'(Belle Epoque, 아름다운 시절)로 불리는 문화의 전성기가 배경이다. 반면 크레이지는 친밀한 소극장에서 현재를 보여준다. 세계 금융위기를 풍자하거나 우주탐사를 재해석한 춤도 있다.

영화 교과서에 등장하는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프레데릭 와이즈먼은 "물랭루주가 유명하다기에 보러 갔다가 5분 만에 잠들었는데, 크레이지를 보니 정신이 맑아졌다"고 했다. 공연에 반한 그는 크레이지 공연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2012년 뉴욕 등에서 정식 개봉했다.

‘크레이지’는 프랑스 파리의 명품 거리 조지생크가(街)에서 65년째 공연 중이다. 지난 25일 오후 8시14분, 공연 시작 1분 전을 알리는 안내 영상이 무대를 비췄다. 은빛 가발은 크레이지 무용수의 상징이다. 250석은 평일인 이날도 거의 만석이었다.
‘크레이지’는 프랑스 파리의 명품 거리 조지생크가(街)에서 65년째 공연 중이다. 지난 25일 오후 8시14분, 공연 시작 1분 전을 알리는 안내 영상이 무대를 비췄다. 은빛 가발은 크레이지 무용수의 상징이다. 250석은 평일인 이날도 거의 만석이었다. / 파리=신정선 기자
"패션에 민감한 한국 관객이 좋아할 것"

국내 공연은 오는 21일부터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시어터에서 올라간다. 내한 공연팀 14명은 지난달부터 특훈에 들어갔다. 지난 25일 오후 5시 파리 외곽 생 드니의 연습장에 가보니 검정 캐미솔과 짧은 반바지를 입은 무용수들이 댄스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아냐, 아냐, 엉덩이를 주~~욱~~ 끝까지 밀어야지. 상체는 움직이지 말고. 마치 구름을 걷듯이." 유일한 남성인 코치는 의자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끝까지 미는' 시범을 해보이며 연습장을 가로질렀다.

단순한 동작 하나를 다듬는 데에도 20분이 넘게 들어갔다. 무대 중앙 커튼을 붙잡고 고개를 돌려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 때에도 지켜야 할 리듬과 각도가 있었다. 내한팀 댄스팀장 데이지 블루는 크레이지 8년차 무용수. 그는 "얼마 전부터 한국 관련 서적을 읽으며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출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무대에서 한 번도 벗은 적이 없다. 늘 빛을 입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한 공연 표값은 파리와 비슷한 수준이다. 파리에는 공연만 보는 65유로(7만8000원)부터 VIP박스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즐기는 1000유로(120만원, 3~4인석)까지 있다. 한국에서는 7만7000원부터 돔페리뇽이 제공되는 110만원짜리 VIP 부스(2인 기준)까지 있다. 2009년 세계 경제 위기를 풍자한 '위기? 무슨 위기?'와 대표 레퍼토리인 '신이여 우리의 누드를 구하소서' 등이 공연된다. 데상베르그 사장은 "한국 공연은 파리 버전보다 밝고 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19세 이상 관람가.
파리=신정선 기자 |   입력 : 2015.04.03